中 현대미술 거장들 작품 속 '개혁개방의 상흔'

김예진 입력 2021. 1. 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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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중국 동시대 미술 3부작 : 상흔을 넘어'
주진스 '자유의 상흔'
기성권위 도전·창작의 자유 의지 담아
전시작품 '남과 북', 우리민족 상흔 표현
쑹둥 '자본의 상흔'
저항정신 드러낸 '물도장 찍기' '입김' 등
통제·억압적 사회에 대한 절박한 몸짓
포스트 마오세대 류웨이
사회 비판적 풍자·유머 담은 작품 활동
남성들 엉덩이 찍은 '풍경' 으로 유명세
주진스, ‘남과 북’(2020)
피로 물든 광장 위에서 예술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989년 중국 천안문 6·4항쟁 6년여 후, 쑹둥은 엎드려 땅에 몸을 붙인 채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따뜻한 날숨을 내뱉었다. 영하 19도의 혹한에 꽁꽁 언 바닥은 끄떡 없었다. 그 역시 40분간 숨 불기를 멈추지 않았다. 희생자 숫자조차 아직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는 항쟁의 실패 후, 중국의 억압적 현실 앞에 개인의 좌절을 드러냈다. 1996년 1월 쑹둥이 벌인 행위예술 ‘입김’은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지금 봐도 여전히 울림이 크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동시대 작가들이 대거 구미(歐美)로 망명한 가운데 쑹둥은 국내에 남아 6·4항쟁 이후의 심리적 실어상태를 행위예술을 통해 풀어나갔다”고 설명한다.

◆중국 거장 3인방 예술 속 현대사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중국 동시대 미술 3부작 : 상흔을 넘어’ 전시가 한창이다. 주진스와 쑹둥, 류웨이 시기별 대표작가 3명의 대표작과 신작 38점이 선보인다. 1950년대생, 1960년대생, 1970년대생 각기 다른 세대의 대표 작가들이 천안문 6·4항쟁이라는 역사적 배경 하에 형성된 중국 동시대 미술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후반까지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보내며 극심한 억압을 경험했고, 덩샤오핑 집권 후에는 국가주도로 급속히 현대화됐다. 1989년 6·4항쟁 전후 중국 현대사가 세 작가의 작품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양은진 학예연구사는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약 10년간 중국미술분야는 서양에서 150년 동안 이뤄진 변화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면서 빠른 변화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중국 현대미술을 1979∼1984년 후문화혁명기, 1985∼1989년 85미술운동 시기, 1990년대로 구분한다. 후문화혁명기에는 형식미와 추상미를 추구하는 경향과 문화혁명 이후의 상처를 드러내는 ‘상흔미술’과 ‘향토회화’ 등 사실주의 회화가 주류를 이뤘고, 중국 아방가르드의 시초라고 하는 ‘싱싱화회’ 등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자발적 예술가들이 출현했다고 설명한다. 85미술운동시기에는 전형적인 중국식 전위예술운동이 혁명적 변화를 주도했다. 1990년대에는 정치적 팝아트, 냉소적 사실주의 등 현재 세계 미술시장에 가장 많이 소개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주진스와 쑹둥은 1세대 개념미술 대표이며, 류웨이는 ‘포스트 마오 세대’ 대표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기혜경 관장은 “중국동시대미술의 거장 3인의 대표작품을 동시에 감상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자유의 상흔 드러내는 주진스

1954년생인 주진스는 싱싱화회 참여 작가로 중국개혁개방 1세대다. 기성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창작의 자유, 민주화를 요구하며 중국미술관의 철제 담벽에 시위 성격으로 펼친 전시였던 ‘싱싱미전’은 중국 미술사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주진스는 바로 그 일원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독일 베를린 유학시절 중국 전통 화선지를 재료로 제작해 선보인 ‘팡전 프로젝트’와 2000년대 이후 엄청난 두께감을 가진 특유의 회화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가 이번 전시에 내놓은 신작들은 그의 대표적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쇠락하던 시대의 도약’은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해 질감 효과를 내는 회화기법인 임파스토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그의 독창적 스타일의 정수다. 대형 캔버스 위에 두껍게 얹은 물감 덩어리들을 두고 양 학예사는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고, 오랜 시간 마르지 않는 특성으로 회화에 시간의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4m가 넘는 대작 ‘남과 북’은 한국 상황을 주제로 해, 이번 전시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그는 시골 제지공장에서 느릅나무 껍질, 쌀, 또는 대나무를 이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종의 한지를 만들고, 이 쌀종이를 하나하나 구긴 다음 다시 펴서 형태를 구성한다. 이번 작품은 쌀종이 1만3200장으로 만들었다. 남과 북이 겪고 있는 민족의 상흔을 표현했다.
쑹둥, ‘입김’(1996)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자본의 상흔 드러낸 쑹둥

1966년생인 쑹둥은 서민들이 살아가던 후통에서 나고 자랐으며 부친은 반혁명분자로 몰려 핍박을 받았다. 가족에 대한 향수에서부터 정치 권력의 억압, 급격한 도시화 속 소외된 사람들의 상처에 내내 시선이 꽂힌다. 격렬한 저항정신과 순수성이 전위적 개념미술로 승화됐다.

6·4항쟁 넉 달 전, 갓 미대를 졸업한 쑹둥은 강렬한 사회 비판메시지를 드러낸 중국현대미술전에 참가했다가 전시를 강제 폐막당한다. 6·4항쟁 후 중국현대예술전 참여 작가들이 대거 망명했지만, 그는 국내에 남아 현실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후 그가 벌인 행위 예술 ‘물로 쓴 일기’, ‘물도장찍기’, ‘입김’ 등은 그가 중국에 남아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겪어내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을 명작들이다.

‘물도장 찍기’는 물 수(水)자가 새겨진 도장을 물 위에 반복적으로 찍는 행위예술, ‘물로 쓴 일기’는 붓에 먹이 아닌 물을 묻혀 돌 위에 3년간 일기를 쓴 행위예술이다. 물도장은 아무리 세게 여러 번 내려쳐도 물 위에 도장을 찍을 수 없고, 물로 쓴 일기 역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억압적 중국 사회상, 작가의 허무주의를 절박한 몸짓으로 표현한 것이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인 신작 ‘상흔’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동이 제한되고 통제가 극심한 상황에서 지난 50년간 살아오며 느꼈던 사회적 억압이 다시 떠오른 것을 계기로 제작했다고 한다.

전시장 밖 로비 공간 바닥에 거대한 장기판이 그려졌고 그 위에 말들이 세워졌다. 말들은 찌그러진 전등갓과 낡은 소파, 흠집난 가전제품과 장식장들을 모아 만든 것으로, 묘하게도 제각각 아름다운 설치작품처럼 보인다. 도시개발에 밀려 이주한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수집한 것인데 떠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배어 있다. 전시장 내에 따로 마련된 평범한 장기판에서 관람객이 말을 움직이면, 미술관 직원이 쑹둥의 작품을 따라 옮긴다. 제3자가 보기에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거대한 장기판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제3자는 말을 움직이는 실제 의사결정권자를 볼 수 없는 게임이 되는 셈이다. 중국 사회를 은유한 것이다.

◆포스트 마오 세대 류웨이

류웨이는 문화혁명시기 교육 공백기를 경험하고 서양미술을 배우러 망명이나 유학을 가야 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1990년대 대학에서 정식으로 서양미술을 공부했다. 앞선 세대의 개념미술로부터 분리를 목표로 즉흥적이고 파격적 작품을 제작했던 ‘후감성(Post Sense Sensibility) 그룹’으로 활동했다. 사회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정치팝, 냉소를 드러내면서도 풍자와 유머를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작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04년 상하이비엔날레 측이 작품 수정을 요구하자 항의의 의미로 출품한 작품인데, 오히려 호평을 받고 류웨이라는 이름을 중국 미술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벌거벗은 남성들이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이다. 관람객들은 ‘이것은 수묵화인가’ 하며 작품을 들여다보지만 한참 후 수묵화 속 산이 아니라 엉덩이임을 눈치채게 된다. 류웨이만의 재기발랄함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다음 달 28일까지.

부산=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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