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야구공 대부분 여성들 손에서 탄생..그분들이 없다면 야구는 존재할 수도 없죠" ['유리천장' 뚫은 킴 응, 한국 야구에도 있다 (4)]
[경향신문]
한국 야구 메카 동대문운동장 앞
오빠의 부성스포츠 이어 받아
1982년 프로야구 창단으로 특수
야구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빅라인스포츠 유부근 대표(61)는 “여성이 없으면 야구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전 세계 야구가 사용하는 공 대부분이 중국, 스리랑카, 코스타리카의 여성들이 일일이 꿰매서 만든다. 그분들이 없으면 야구를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한국 야구용품 업계의 대부이자 홍일점이다. 1970년대 오빠가 시작한 부성스포츠를 이어 받아 빅라인스포츠로 성장시켰다. 스카이라인 단일구 사용 이전, KBO리그 6개 구단이 빅라인스포츠 공을 썼다. 빅라인스포츠 공은 현재 리틀리그 공인구로 사용된다.
열아홉이던 1979년,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서울에 있는 오빠에게 갔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서울로 향하던 때였다. 부모님은 오빠에게 “3년만 데리고 있다 시집 보내라”고 엄명했다. 유 대표는 “그 3년이 30년 넘어 40년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스포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동대문운동장 앞에 스포츠용품 유통업체인 부성스포츠가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 창단은 특수였다. 유 대표는 “6개 구단 어린이 회원 선물 상당수가 우리 손을 거쳐 납품됐다”고 떠올렸다. 그때 그 ‘잠바’들은 유행의 최첨단이었다.
“동대문운동장 앞에 신호등이 없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무단횡단을 수시로 했다”고 말했다. 1982년 3월27일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시구가 비밀리에 진행됐다. 뒤늦게 ‘대통령 시구’ 사실을 알게 된 한 구단 담당자가 당일 오전에 부랴부랴 ‘현수막’을 발주했다. “현수막 문구는 잘 기억 안 나는데 ‘그것도 못합니까’라며 재촉하던 게 생생하다”고 말했다. 동대문 현수막 제작사를 뛰어다녀 간신히 맞췄다.
지금은 대형 브랜드 업체와 계약하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구단 유니폼도 부성스포츠를 거쳤다. “해태 몇몇 선수들이 유니폼에 불만을 드러내면 고참 선수들이 ‘야구나 잘하지 왜 옷 타박을 하냐’고 막아주곤 했다”고 말했다.
전설이 된 선수들과 ‘오빠·동생’
사재 털어 여자야구연맹 만들어
장비 산업 여성 참여 늘어났으면
스무 살 때부터 납품하러 야구장을 수시로 다녔다. 한국 야구의 전설들이 다 오빠였고, 유 대표는 그들의 여동생이었다. “다들 ‘유양아’라고 부르던 때였다. 많이들 아껴줬지만, 요즘말로 하면 ‘철벽녀’로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비선출에, 여성이었다. 더 옛날에는 더그아웃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야구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도 금기였다. 요즘도 ‘인필드 플라이 얼마 전에 알았어’라고 눙친다”며 “그렇게 처신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야구 참여는 야구 종목 자체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다. 유 대표는 “야구의 저변이 심각한 수준이다. 엘리트 선수가 줄고 있는 것은 물론 야구장이 없어 사회인 야구도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2007년 이광환 당시 KBO 육성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사재 1000만원을 털어 한국여자야구연맹을 만들었다. 유 대표가 부회장을 지냈고 여러 여성 정치인들이 회장 자리를 거쳤다. 현재는 부회장직을 내려놓고 고문으로 돕는다. 유 대표는 “이제 정치인 아닌 선수 출신 회장이 연맹을 이끌면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여자야구가 더 활성화되고 더 많은 여성들이 야구를 하면 그 자녀들이 야구를 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야구산업에 참가하는 여성들의 숫자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크게 밀리는 야구 장비 산업은 여성들의 참여를 통해 오히려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게 유 대표의 생각이다.
유 대표는 “여자 야구선수 출신들이 야구 장비, 용품 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나는 오랜 세월 무뎌지고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처음에는 힘들지 모른다. 그래도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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