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배양 고기, 도심 농장.. '내일의 식탁'이 벌이는 사투

강윤주 입력 2021. 1. 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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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시작된 음식물 쓰레기 축제 '피딩 더 5000(feeding the 5000)'. 버려진 식재료만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참가자 5,000명과 함께 나눠 먹는 음식 축제다.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형 농업 시스템을 고발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고민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세종서적 제공

“우리는 지금 사람 수십억 명과 동물 수조 마리의 삶을 바꾸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배양육은 세포 수준에서 동물과 마찬가지로, 영양과 맛 모두 그 이상이 될 수 있어요.”

세계 최초의 고기 배양육 스타트업 업체인 맴피스미트의 공동대표 우마 발레티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식사를 권했다.

목장이 아닌 실험실 ‘생물반응기’란 낯선 기계에서 특수한 액체를 먹고 자란 세포, 아니 오리고기는 놀랍게도 ‘아는 맛’ 그 자체였다. “제조 과정이 특이하다는 사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익숙한 맛, 진짜 고기 같은 지극히 평범한 맛이 났어요.”

배양육으로 만든 프라이드 치킨. 일반 닭고기 요리와 다를 바 없는 외형이다. 저자 아만다 리틀이 먹은 건 오리고기였다. 세종서적 제공

환경 저널리스트이자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인 아만다 리틀이 경험한 배양육 식사 후기는 의외로 싱겁다. 동물을 도축하는 대신 살아 있는 동물 세포를 키워 생산하는 배양육은 곡물로 만든 대체육(가짜고기)과 다른 진짜 고기를 말한다. 감염병의 온상이 되는 공장식 축산의 부작용은 피하면서, 사육고기에 비해 탄소 배출량과 토지, 물 사용량은 훨씬 적은데다, 비식용 부위를 생산하지 않아 음식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 미래 먹거리로도 뜨고 있다. 60g에 수백 달러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가격은 문제지만 말이다.

‘먹는 문제’는 문명이 탄생한 이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숙제다. 한쪽에선 먹지 못해 목숨을 잃고, 한쪽에선 칼로리 폭탄에 오염된 식품을 폭식하는 식량의 양극화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기후위기는 기름을 부었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지금의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 경향이 지속된다면 2050년에 식량 가격이 거의 두 배로 뛸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한정된 식량 자원을 놓고 국가, 계층간 갈등이 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다. 먹거리 시스템이 이상기후나 팬데믹 사태로 셧다운 됐을 경우, 전 세계 80억명의 인구가 비축 식량으로 버틸 수 있는 건 고작 70일뿐란 전망도 암울하다. 식량위기는, 결코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닌 셈이다.

세계 최대 수직농장 업체인 에어로팜스가 운영하는 가장 큰 규모의 작물 재배 시설이다. 과거에 제강소였던 건물을 개조해 실내 농장으로 만들었다. 작물들은 햇빛과 바람 대신 분홍색 LED조명과 자동환기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다. 온도와 습도, 영양 흡수,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 등 성장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가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 세종서적 제공

그럼에도 저자는 절망과 공포 대신 희망을 이야기한다. 책엔 기후위기 시대, 인류의 식탁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분투가 담겼다. 케냐의 옥수수밭, 중국의 유기농 농장, 노르웨이 양식장 등 전 세계 곳곳을 돌아보며 지속가능 한 먹거리 기술 개발의 현주소를 소개한다. 농작물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양식장에서 기생충을 없애는 로봇과 가뭄을 견디는 슈퍼푸드를 찾기 위해 잉카 시대 곡식을 되살리려 애쓰는 농부를 만나고, 대도시 한복판 고층건물에서 물과 흙 없이 채소를 기르는 세계 최대 수직농장도 찾아간다. 개인 건강상태에 맞춰 영양소와 재료를 넣고 3D프린터로 출력해낸 음식도 맛본다.

흙에서 햇빛과 물, 바람을 자양분 삼아 쑥쑥 자라나는 작물과 과일, 그걸 사료로 먹고 자란 가축들의 먹거리 생태계가 아직은 자연스러운 이들에겐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GMO(유전자조작식품) 논란에서 보여지듯 진화하는 기술이 반드시 안전한 먹거리를 안겨다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 저자 아만다 리틀. 유튜브 화면 캡처

하지만 ‘음식의 모험가’들은 자신한다.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고. 극심한 가뭄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굶주림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케냐의 식량연구자는 “자급자족할 수 없는 사람에겐 진보란 없다”며 유전자 품종이 개량된 옥수수 씨앗 도입에 적극 찬성한다.

수직농장 대표는 고층건물의 온실 재배 에너지 소비량을 문제 삼자, 도심 농업으로 남아돌게 되는 농지를 자연에 돌려주는 길이라 반박한다. 도심 농업의 연간 생산량 역시 전통적인 농업의 390배에 달한다는 통계를 제시하면서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100% 들어맞는다고 볼 순 없다. 저자 역시 우리의 불안을 대신해 기술의 위험성을 끊임 없이 물고 늘어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내일의 식탁을 고민하지 않고선, 인류와 지구의 미래는 없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아만다 리틀 지음·고호관 옮김·세종서적 발행·436쪽·2만원

세계 온실가스의 20%가 산업형 농업 단지에서 배출되는 현실이다. 교통과 에너지 배출량과도 맞먹는 수치다. 더 이상 인간은 환경을 망가뜨리는 대가로 풍족한 음식을 누리려는 사치를 버려야 한다.

2050년 당신의 식탁에 갈아 넣은 채소와 고기를 동결 건조 시킨 ‘생존식량’만 올라오지 않기를 바란다면, 기술혁신으로 지속가능 한 먹거리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먹는 문제’에서 한국 역시 수입 의존도가 적지 않다며, 환경 위협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먹거리 시스템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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