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칼럼] 기로에 선 미국 민주주의

2021. 1. 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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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함 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의사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폭도들에 의해 점령당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대선 결과를 최종적으로 공식화하는 상하 양원 합동 회의장에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과격 시위대가 난입한 것이다. 1789년 미국 헌법이 비준된 이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미 의사당이 폭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이 사건은 진주만 공격과 9·11 테러에 버금갈 정도로 미국 역사에 충격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 의사당 점거 사태는 5명의 사망자를 내고 4시간 만에 끝났으나 그 후유증은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이미 양극화된 미국 사회는 사태 처리를 놓고도 여전히 분열된 모습이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폭동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반란 선동 책임을 물어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 사임과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트위터가 트럼프 계정을 영구 폐쇄하고 애플, 아마존, 구글이 극우 소셜미디어 팔러를 퇴출한 것에 대해 환영했다. 진보 성향의 언론들은 의사당 폭거 관련 책임과 대통령 탄핵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 다수와 그 지지자들은 의사당 점거에 대한 의법조치를 강조하면서도 트럼프의 대선 불복에 동조적이며 임기가 며칠 남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과 팔러 소셜미디어를 폐쇄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공룡 SNS대기업들이 민주당과 결탁해 보수파를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선택적'으로 시행되고 '좌파에 의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FBI는 오는 20일 미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연방의회 및 50개 주의회 의사당에 대한 극우집단의 무장공격 계획이 있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에 대한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다. 사실 의사당 폭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단순한 트럼프 지지 시위대가 아닌 극우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 반유태주의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서도 '큐아논'(QAnon)은 트럼프의 재선을 광신적으로 도모하는 극우음모론 신봉 집단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세계적 어린이 성매매망을 움직이는 비밀결사조직이 트럼프 대통령을 해치려 하는데, 트럼프가 '폭풍'(Storm)을 일으켜 그들을 제거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정치인, 헐리우드의 진보적 배우, 조지 소로즈(유태인) 등과 같은 사업가, 일부 고위 정부인사들을 비난 대상으로 삼는다.

큐아논은 2017년 10월 온라인에 등장했고, 이듬해 8월 트럼프 재선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한 주요 인물이 2019년 7월 백악관 '소셜미디어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트위터는 2020년 7월 음모론 확산을 막기 위해 이미 수천 개의 계정을 금지했고 이들의 활동을 제한한 페이스북은 추종자 수가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의 음모론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0월 현재까지 이들 계정에 265회 댓글을 달고 152회 글을 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 7500만명(투표자의 47%)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사실을 폄훼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문제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 진영에 극우주의자들이 가세해 결국 평화적이어야 했을 시위를 폭력적으로 변질시켰다는 사실이다. 사전에 수많은 트위터를 통해 의사당 앞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운집한 수천명의 시위대에게 선거를 도둑 맞았다고 강변하는 장본인이 바로 현직 대통령이라면 과연 미국이라는 국가는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미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상징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취임식이 트럼프 대통령의 불참 속에서 테러를 우려하며 열리게 됐다. 패자가 승자에게 축하 전화를 하여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경쟁자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아름다운 민주적 관행이 사라졌다. 트럼프식 백인우월주의 선동정치가 궁극에는 극단적인 당파적 양극화를 초래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양승함 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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