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권일용] 아동학대 사건의 책임자

한겨레 2021. 1. 1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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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권일용ㅣ전 경정·범죄학 박사

2016년 3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한 아이가 실종되었다. 실종신고를 받고 수사를 시작하였지만 수사팀은 아동학대의 징후를 발견하였고 아이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필자는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프로파일러와 함께 부모의 심리분석을 하고 자백을 받기 위해 투입되었다. 결국 엄마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암매장하였다고 수사관에게 자백하였다. 아이의 온몸에 락스를 퍼붓고 화장실에 감금하였고 아이는 추위에 떨다가 사망한 것이었다. 자신이 계모라서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어서 체벌을 시작하였고 점차 체벌의 강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사망한 아이 남매가 다니던 아동센터는 수차례 아동들과 면접을 하였지만 전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5년 8월 입양원에 있던 3살의 은비(가명)는 한 가정에 구두상 입양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상과 심하게 폭행당한 상처를 입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의료진은 아동학대 의심으로 신고를 하였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동행한 경찰은 부모와 병원의 다른 관계자 말만 듣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3개월 뒤 다시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아이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 상황에서 입양원은 양부모를 대신해 법원에 은비의 입양허가를 신청하였고 대신 신청한 사실을 법원은 확인도 하지 않고 허가하였다. 아이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다수의 보도에 의해 이 입양모가 강박적인 사고, 지나친 집착, 분노조절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더불어 모든 관련 기관이 직무를 유기했음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아(self)의 모습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적 자아(ought self)의 모습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불안이 야기되고, 불안은 당위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동기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문제는 자아와 당위적 자아에 대한 지나친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잘 키우는 어머니’라는 당위적 모습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혹한 체벌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기적이고 왜곡된 심리에 의한 선택이다. 물론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나 폭력적 성향, 성장기 학대 경험 등 다양한 심리적 원인도 동반되어 있지만 아동학대를 저지른 유사한 사건의 가해자들에게서 비교적 공통되게 나타나는 심리 특성이다.

경찰이 ‘정인이 사건’의 부실수사로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다. 경찰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수없이 아동학대 수사에 대한 어려움과 실패를 겪었음에도 한계 극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책임과 일선 수사관의 업무 수행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도록 여건을 만들지 않은 지휘관의 책임도 있다. 검찰 역시 모든 수사권한을 가지고 경찰 수사에 대한 법적 검토, 인권보호의 역할을 하며 아동학대를 전담하는 검사까지 있음에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세번이나 최종 무혐의 판단을 하였다. 당장 지금,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 뒤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회피하고 있는 검사의 책임 또한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인이 사건’에 대한 공분의 본질은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일이 왜 반복되고, 예방과 수사, 피해 아동 보호 수용, 가해자 처벌을 담당하는 여러 국가기관의 기능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있다.

아이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첫번째 책임은 가해자인 부모에게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검찰, 국회 등등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 줄진 않는다.

경찰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다 갖출 수는 없다. 경찰이 전문분야를 최대한 활용하고, 민간 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수사의 한계’는 극복되어야 한다. (※아동학대 가해자 비율은 친부모가 훨씬 높다. 이 글에선 최근 사건과 유사하거나 비교될 만한 사건의 특징을 짚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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