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국가서 태권도·새마을 전파한 외교관 "샘물교회 사건은 이슬람에 대한 무지 탓"
아프가니스탄서 전국 조직으로 새마을 교육
투르크메니스탄서 세종학당, 가스 직업훈련원 개설
"대한민국 외교사각지대 개척 노하우로 대구를 글로벌도시로 키우는데 일조"
중앙아시아 일대는 우리 역사의 사각지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실크로드 개척자인 혜초 스님의 흔적이 배어 있고 고려인 후손들이 살고 있는 땅이지만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몇 줄 언급되지도 않는 잊혀진 곳이다. 우리 외교의 불모지기도 한 투르크메니스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한 명도 없다고 천명해 폐쇄국가임을 자인했고, 아프가니스탄은 2007년 샘물교회 신자 납치사건으로 테러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는 나라다. 2015년 10월과 2018년 1월 각각 아프가니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해 대한민국을 각인시킨 외교관이 4일 대구시 국제관계대사로 발령받았다. "대구를 글로벌도시로 만드는데 앞장서겠다"는 진기훈(57)대사를 13일 대구시청 별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아프가니스탄을 떠올리면 샘물교회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당시 외교부 공보팀장을 했다. 우리 국민 2명이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나머지 신자들을 구출한 후 공항 비행기에 탑승해 신자들을 인솔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아프가니스탄 대사까지 했으니 세상 일은 알 수가 없다. 그 나라의 정식 국호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일 정도로 종교 색채가 강한데, 신자들이 현지 문화를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외교관 경력이 독특하다.
"지나고 보니 주로 우리나라 외교 사각지대에서 활동했다.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과 이란 사이의 이슬람 국가다. 9·11 테러 후 미국의 개입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고 친서방 가니 정부가 들어섰다. 세계 최빈국이자 최다 난민 송출국 중 하나다. 극단주의자에 의한 잦은 테러로 인해 부정적 선입관이 있지만 겪어보니 대다수 아프간 국민들은 평화롭고 순수하고, 정직하다. 투르크메니스탄에는 가부장적 전통과 소련식 전체주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4위여서 우리 기업들이 칼키니시 가스전 개발, 카스피해 정유 공장 현대화, 키얀리 폴리머 플랜트 건설 등 대규모 사업을 펼쳤다. 언어, 복식, 좌식, 어른 공경 문화 등 우리와 공통점이 많다."
-이 나라들은 실크로드 요충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수도 카불과 동의·다산부대가 있었던 바그람, 헤랏 등 유서 깊은 실크로드 도시가 많다. 투르크메니스탄도 이란과 터키, 인도를 잇는 실크로드 교차로에 있다. 고대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지만, 중세에는 메르브로 통한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현지에서는 '실크로드 심장'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스님이 1,300년 전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통일신라를 떠나 당을 거쳐 인도에 도착한 혜초 스님은 아프가니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중앙아시아 사막을 지나 중국 시안으로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오천축국전에는 바미얀 유적에 관한 기록도 나온다. 2002년 3월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얀 석불 근처에 큰 와불이 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위대한 선조다."
-아프가니스탄 대사 시절 활동을 소개해달라.
"2016년 초 가니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할 때 우리 새마을운동을 전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후 수 십 차례 건설부흥부 장관을 만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새마을교육을 펼쳤다. 여행금지국가여서 이 나라 공무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육했다. 콩 농사 보급을 위해 경북 영주의 콩세계박물관에도 갔고, 청도에서는 새마을 영상을 본 후 고향 생각에 눈물을 쏟았다는 현지인들도 있었다. 바미얀 석불 앞에 문화센터와 혜초대사 건립관도 추진했다."
-아프가니스탄에 한류가 대단하다고 들었다.
"이 나라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겨준 닉파이는 태권도 선수다. 대사관도 2016년 개천절 전후로 카불에서 국경일 행사를 열면서 한복패션쇼와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당시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여성 태권도부가 있었던 헤랏대학교에서 10여명의 선수가 비행기를 타고 와 시범을 보였다. 여성들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부르카를 입고 다니는 카불에서 여성 태권도 품새 시범은 파격, 그 자체였다. 대장금과 주몽 등 TV드라마를 통해 익히 한류를 접했던 현지인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 투르크메니스탄을 국빈 방문했다.
"우리나라 외교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차원이었다. 그해 9월 수도인 아슈하바트에는 세종학당이 문을 열고 우리말과 문화를 알리는 첨병이 되고 있다. 전세계로 문화외교를 펼치는 중국의 공자학원도 없고, 맥도널드와 스타벅스도 없는 삭막한 곳이다. 또 같은 시기 천연가스 매장지기도 한 메르브에 가스직업훈련원도 무상원조로 건립했다."
_고려인 후손들도 살고 있을텐데.
"설과 추석 명절, 삼일절이 되면 1,400여명의 고려인 후손들을 만나 재외동포 보호정책을 설명했다. 가난했던 조상의 나라가 발전해 후손들을 찾는 것 만으로도 놀라고 감사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 상하이와 청두, 타이베이에서도 근무했던데.
"2010 상하이 엑스포에서 여수 엑스포 등을 홍보했고, 청두에서는 우리 기업의 진출 기회를 넓히기 위해 '한-중국 서부지역 포럼'을 개최했다. 타이베이에서는 불법체류자 추방 시 이민국이 알몸 수색을 한다는 신고를 받고 항의한 끝에 바로잡기도 했다."
-대구시 국제관계대사로서 포부를 말해달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계기로 대구의 국제적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대구는 이제 세계를 무대로 역할을 할 시점이다. 대구의 뿌리산업과 미래첨단산업의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고 글로벌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외교관의 노하우를 모두 쏟겠다."
●약력
△안동고·서울대 외교학과 △외시 25회 △외교부 대북정책협력과장 △주 상하이 영사△청두 부총영사 △타이베이 부대표 △아프가니스탄 특명전권대사 △투르크메니스탄 특명전권대사
대담=전준호 대구한국일보 편집국장 jhjun@hankookilbo.com 정리=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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