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술 권하고 나선 방통위.. 청소년 건강은 생각해봤나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2021. 1. 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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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술 PPL' 6월부터 허용.. "재방송 통해 종일 노출될 것" 비판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야 시간 술 PPL 허용 법안에 각계각층에서 반대하고 나섰다./사진=KBS2 드라마 '오! 삼광빌라!' 캡처

오는 6월부터 심야 방송에서 소주·맥주 등 17도 미만 주류의 가상·간접 광고(PPL)가 가능해진 가운데, 복지부를 비롯해 전문가 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3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인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 방안’을 통해 17도 미만 주류의 가상·간접광고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정신과 전문의 등 각 층에서 방통위의 이번 정책이 주류의 미디어 노출로 인한 피해를 규제하려는 기존의 정책 방향과 엇박자를 낸다며 반대 의견을 제기하고 나섰다.

◇방통위, “심야 시간 술 PPL 허용”

현재 주류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에 의해 7시부터 22시까지 지상파·종편 채널에서 모든 광고가 금지된다. 가상·간접광고를 제외한 모든 광고는 22시 이후 심야 시간 방송이 가능하다는 뜻. 가상·간접광고의 경우 2010년부터 방송법 시행령(제59조 3제 2항)에 의해 모든 시간에 금지돼 왔다. 그러나 13일 발표된 방통위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주류의 가상·간접광고가 허용된다. 심야에 방영되는 지상파·종편 드라마·예능에서 특정 소주·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 있는 것. 방통위 관계자는 “22시 이후에는 주류 광고를 할 수 있는 시간대 임에도 불구하고 가상·간접 광고만 할 수 없어서 불합리한 형식규제를 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계각층, 방통위 개정안 반대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방통위가 나홀로 정책적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원래 시행령에 있던 주류 광고 관련 법안을 지난달 법으로 올려, 6월에 시행할 계획”이라며 “방통위와 앞으로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그냥 광고가 아닌 가상·간접 광고는 프로그램 속에 포함되기 때문에 시간대를 7시부터 22시까지 제한한다고 해도 재방송,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시간대와 무관하게 송출될 것”이라며 “이번 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불과 약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10일 ‘미디어 속 음주 조장 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통해 복지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디지털콘텐츠 크리에이터협회, 소비자시민모임 등 각계각층에서 모여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주류 광고와 음주 장면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모은 바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미디어 속 주류 광고가 2018년 50만3591건에서 2019년 70만1529건으로 증가했고, 미디어 속 음주 장면 건수 역시 2018년 1183건에서 2019년 1780건으로 증가해 음주 방송 노출의 심각성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토론회에 참가했던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상규 교수는 “이번 방통위의 주류 가상·간접 광고를 허용한다는 개정안은 문제가 있다”며 “국민들에게 정부에서 같은 의견을 줘야지 뜬금없이 주류에 대한 경각심을 더는 쪽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주류 광고, 스리슬쩍 손에 술 들게 해

수많은 연구를 통해 미디어 음주 장면을 자주 접할수록 술을 더 자주, 많이 마시게 된다는 것이 입증돼 왔다. 특히 미디어 속 가상·간접광고는 생각보다 더 음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시청자가 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공감 수준이 높아질수록 드라마를 보며 음주한 경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미디어 속 장면들이 청소년에게 노출되면 음주 시작 연령을 앞당길 뿐만 아니라 음주량을 증가시키고, 음주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또 묘사되는 음주 장면도 바람직하지 않다. 2017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 속 음주 장면은 원샷, 폭음, 병째 마시는 행위 등의 매우 위험한 음주 행동을 묘사하고 있었고, 전체 음주 장면 중 30.6%가 고성방가, 만취, 폭력 등 문제행동을 담고 있었다. 이상규 교수는 “미디어 특히 드라마 등에서 나오는 가상·간접 광고를 통해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 사람들에게 고민이 있거나 힘들면 술을 마시라는 인지를 줄 수 있다”며 “17도 이하만 허용한다던데, 도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술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자체가 술을 마시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1월에서 3월 중으로 입법 예고를 거쳐 6월 공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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