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파워인물] 김홍근 ㈜드림텍 회장 "세계 최고 품질 자동차 조향장치 디딤돌, 글로벌 선도기업 도약"

이준호 입력 2021. 1. 14. 18:00 수정 2021. 1. 1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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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일체형 자동차 조향장치 부품 개발
국내 차종 70% 사용, 르노 등 납품 이어 북미 공략
늦깎이 대학입학, 박사학위 취득, 호서대서 후학 양성
세계 최초로 일체형 자동차조향장치를 개발한 ㈜드림텍 김홍근 회장

“자동차 조향장치는 단순하고 튼튼해야 운전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14일 충남 아산시 신창면 드림텍에서 만난 김홍근(61) 회장은 자사의 주력 제품인 일체형 유니버설 조인트의 특징과 품질수준을 설명하며 안전을 거듭 강조했다.

㈜드림텍은 세계 최고 품질의 자동차 조향연결장치를 생산, 연 3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자동차 부품 기업이다. 이 회사의 제품은 자동차 핸들을 통해 바퀴를 좌우로 움직이게 하는 조향장치의 핵심이다. 한 번 장착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재질이 단단해야 한다. 핸들 조작 시 장치가 위아래, 좌우로 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부품 간 빈틈이 없어야 한다.

김 회장은 “주요 부품인 파이프와 샤프트 사이에 틈이 있으면 핸들 방향 전환에 문제가 생겨 부품 간 오차 범위가 3㎛(100만분의 1m)를 넘기지 않는다”며 “문제가 생겨도 보완이 가능한 부품과 달라 튼튼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기술은 독보적이다. 두 개의 금속을 용접해서 만들던 기존 유니버설조인트를 2005년 세계 최초로 일체형으로 개발했다. 기존 제품보다 월등한 내구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관련 부품업계를 놀라게 했다. 제조공정도 대폭 줄어 공해배출 저감은 물론, 설비투자와 생산비용도 절감했다.

김홍근 회장이 차종별로 적용되는 조향장치와 관련 부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3년간 시험기간을 거친 뒤 2008년 현대자동차 납품에 이어 해외 수출 길도 열었다.

김 회장은 “180억원을 투자해 금형 생산설비를 마련, ‘세계 최초’ 제품을 줄줄이 생산하고 있다”며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소기업이지만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50여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생산 자동차종의 70%가 드림텍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GM, 르노 등 글로벌 자동차사에도 납품하고 있다. 최근 피아트크라이슬러와 3년간 1,000억원 수출 계약을 맺고 올해부터 선적을 시작했다. 드림텍은 매출을 올해 330억원. 내년 500억원, 내후년에는 650억원으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해외시장 진출도 활발하다. 2016년 중국에 기술투자만으로 49%의 지분을 확보한 공장이 가동 중이다. 국내외 자동차사와 대형부품회사들이 앞다퉈 진출한 북미시장 공략을 위해 부품의 직접 공급을 추진,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을 꿈꾸고 있다. 또한 빠르게 진화하는 자동차산업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2019년부터 단품 형태의 부품생산에서 모듈생산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김 회장은 "드림텍의 최대 장점은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한 독자적인 기술 확보이어서 해외시장 경쟁력이 높다"며 "우리 기술이 해외시장에서 꾸준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홍근 회장이 모형 자동차 운전대에 자사의 조향장치를 설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드림텍은 항상 순항한 것이 아니었다. 창사 이후 수 차례 위기를 넘겼다. 1984년 건축용 스테인레스 나사 제조사로 시작한 드림텍은 1996년 자동차부품사로 전환했다. 김 회장은 당시 주력시장이던 건설업의 시장 위축을 내다보고 경영다각화를 위해 축적된 금속소재 관련 기술을 자동차 부품 생산에 접목했다.

하지만 IMF 환란으로 거래하던 건설업체와 부품업체가 연쇄부도로 쓰러졌다. 받아놓은 어음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환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결국 서울과 김포의 5층 건물 등 사재를 처분해 경영 위기를 넘겼다.

‘신용 신념 신뢰’를 좌우명 삼아온 그의 사재 출연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경쟁사 대부분이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지만, 신용을 지켜온 드림텍만큼은 주문이 쏟아져 재기에 성공했다.

드림텍의 승승장구 이면에는 김 회장의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남 해남의 빈농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산업현장에 뛰어 들었다. 20세 무렵 현재 드림텍의 모태인 정진금속에 입사했다. 넘치는 열정은 입사 5년만에 공장장으로 승진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이 선망이던 그는 25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그러나 회사가 영업부진으로 폐업 직전에 놓이자 빚을 떠안고 회사를 인수했다. 채무자를 설득해 1년간 채무상환을 연장한 뒤 전 재산 400만원으로 회사의 재생에 도전했다.

그의 능력은 이때 빛을 발했다. 직접 영업 일선에 나선 김 회장은 남다른 열정으로 대기업 주문을 따내기 시작했다. 당시 이란 국왕 사원건설 현장에 납품을 하면서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간난신고끝에 회사 인수 6개월만에 모든 빚을 청산했다.

회사가 안정을 찾자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5세에 '대학 진학'을 실천했다. 늦깎이로 시작했지만 향학열은 끝이 없었다. 한경대를 거쳐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호서대에서 기술경영학 박사와 세종대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았다. 36년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그는 2014년 호서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기업가에서 학자로 변신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경영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 회장은 학교에서 교수와 학생의 창업을 지켜보면서 잠재력을 엿봤다. 이들의 성공을 위해 경영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건강하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 고용이 곧 복지”라는 남다른 기업철학은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드림텍에는 창업 당시부터 함께 일해온 직원이 상당수 남아 있다. 직원 140명 가운데 정년을 넘겨 근무 중인 60~70대 직원이 10여명에 이른다.

김 회장은 “수십년 동안 한 분야에서 발전시켜온 장인들의 기술이 드림텍을 키웠다”며 “돈을 좇아 한눈 팔지 않고, 내실 경영을 지속하면서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를 대비한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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