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동이사제 환영했던 한전..이젠 한발 빼
한전 사장의 도입 의욕 불구
"법개정되면 추진할것" 후퇴
올핸 연료비연동제 안착 집중
수자원公·기업銀도 속도조절
국회는 방만경영 우려 신중론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한국전력공사의 노사협의안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달 15일 '노동이사제 등 근로자 참여 제도'를 주제로 노사협의회를 열었으나 모든 절차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이후 논의하는 것으로 협의했다.
노동이사제의 과도기적 제도인 노조추천이사제의 선제적 도입도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의무적으로 이사회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한전의 이번 보류 선언은 법 개정과 상관없이 선제적 우회 도입을 권하고 있는 정부 입장과는 대비되는 흐름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법 개정 전이라도 노동조합이 노동이사 후보자를 추천하면 현행법에 따라 노동이사를 비상임으로 선임 가능하다"며 공공기관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이에 따라 최대 공공기관인 한전은 도입 1번 유력 후보로 꼽혀왔다.
특히 김종갑 한전 사장이 지난해 8월 본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기업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고려한다면 한번 손들고 해보고 싶다"며 "성공 사례가 되든 실패 사례가 되든 한번 그 길을 가보고 싶다"고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의지는 실제로 2018년 맺은 노사 단체협약서에 '공사와 조합은 노동이사제 등 근로자의 경영 참여 확대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고 명문화되기도 했다.
한전은 이사진 14명 중 7명이 올해 상반기 임기가 종료되는 상황이다. 김 사장 본인도 임기가 4월 말 종료되기 때문에 이번 선제적 도입 보류로 노동이사제 선두 주자로서의 동력은 약화됐다. 특히 관련법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투명한 상황이라 실제 도입은 더 요원해졌다.
한전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등 선제적 조치 없이 법 개정 이후로 한발 물러선 데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으로 경영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변동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측은 "법 개정이 이뤄지고 정부의 도입 지침이 명확하게 나온 뒤 도입에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연구를 충분히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전이 동력을 잃은 노동이사제 1호 자리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눈치 보기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도 최근 노동이사제를 추진하겠다는 협약을 실시했지만 선제적 조치인 노조추천이사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
IBK기업은행 노사는 오는 2월 퇴임하는 사외이사 자리에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 선임 과정을 밟고 있다. 노조는 은행 정관에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까지도 제안한 상태다.
정부 압박에 공공기관들은 공을 국회로 넘겼지만 국회에서는 신중론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노조가 지나친 권한을 가지게 될 경우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한층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양금희 의원은 "노동이사제의 경우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기업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개혁에 대한 전제 없이 일방적인 과속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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