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인텔맨이 추락하는 왕국을 구할까

김성민 기자 2021. 1. 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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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AFP

시장 점유율 하락과 기술 개발 정체로 신음하던 ‘반도체 왕국' 인텔이 수장을 전격 교체했다. 인텔 내부에서 현재의 위기를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는 신호이다. 인텔은 13일(현지 시각) 밥 스완 현 최고경영자(CEO)가 다음 달 15일 물러나고, 클라우드컴퓨팅 기업 VM웨어의 팻 겔싱어 CEO가 새 CEO로 취임한다고 밝혔다. 2019년 1월 임명된 스완은 2년 만에 물러나면서 인텔 역사상 최단 기간 재임한 CEO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2년만에 인텔 CEO 자리에서 내려오는 밥 스완 CEO. /연합 AFP

◇AMD·엔비디아에 밀린 왕국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인텔의 잇따른 추락에 따른 문책 성격으로 보고 있다. 인텔은 매출액 기준으로는 여전히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다. 하지만 위상은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하던 과거에 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컴퓨터 CPU 성능을 수치화하는 패스마크 소프트웨어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벤치마크로 속도를 측정한 전세계 PC용 CPU(중앙처리장치) 중에 인텔의 비중은 49.8%, AMD의 비중은 50.2%다. AMD 비중이 더 높은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성능 측정을 의뢰한 비율이 전체 CPU 시장을 정확히 의미하진 않지만, 그만큼 AMD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라고 업계는 해석한다. 인텔의 13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257조원으로 미국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엔비디아(369조원)에 크게 밀린다.

특히 인텔은 기술적 난관에 부딪혀 반도체 제작에 수년째 10나노 공정(1나노는 10억분의 1m)을 활용하고 있다. 경쟁사인 AMD는 대만의 TSMC에 의뢰해 7나노로 CPU를 만들고, 삼성전자는 5나노 공정까지 상용화했다. 굳이 인텔의 반도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 고객사들이 잇따라 인텔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텔 칩을 받지 않고 자체 개발하겠다고 했고, 아마존과 구글도 탈(脫)인텔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서드포인트는 작년 말 인텔 주식을 매입한 뒤 “인텔의 위기는 미국 반도체 시장 주도권은 물론 미국 테크 산업의 위기를 초래한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공개 요구했다.

팻 겔싱어 신임 인텔 CEO. /인텔

◇기술력으로 개혁 시도할 듯

오마르 이시락 인텔 이사회 독립 의장은 “중요한 변화의 시기인 지금이 겔싱어의 기술과 엔지니어링 전문 지식을 활용할 적절한 시기라고 결론지었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스완 현 CEO가 추진했던 비용 절감 같은 개혁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겔싱어 신임 CEO는 열여덟 살이던 1979년 인텔 엔지니어로 입사해 30년간 근무했던 정통 인텔맨이다.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등 ‘무어의 법칙(반도체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을 만든 인텔 창업자 3인방 아래서 일했다. 2001년 인텔의 첫 CTO(최고기술책임자)가 됐고, 2009년엔 수석부사장을 지냈다. 이후 클라우드컴퓨팅 기업 EMC, VM웨어 등에 몸담았다. 2009년과 2019년에도 유력한 인텔 CEO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겔싱어는 “인텔에서 경력을 시작해 세 창업자 밑에서 배운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은 특권이자 영광”이라고 했다. 이날 인텔 주가는 장중 최대 13%까지 올랐고, 종가 기준 전날 대비 6.97% 상승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인텔의 CEO 교체에 대해 “끔찍한 시기를 보낸 인텔의 전망이 갑자기 밝아졌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겔싱어 CEO가 취임하면서 인텔의 기존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생산의 상당 부분을 TSMC나 삼성전자에 맡기는 방안이 유력하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인텔이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합친 차세대 메모리 ‘옵테인’을 상용화해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새로운 기술 장벽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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