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제자리..이랜드리테일 상장 안 하나? 못 하나?

이석 기자 2021. 1. 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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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장 추진..3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

(시사저널=이석 기자)

지난해 이랜드그룹은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5월 공정위 발표 기준으로 이랜드그룹의 자산은 9조8730억원, 매출은 4조5620억원이다. 2평짜리 보세 옷가게로 시작해 패션과 유통, 외식, 건설, 호텔 및 레저, 부동산 개발, IT 등을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재계 순위는 36위로 2012년 대규모 기업집단에 재지정된 지 8년 만에 26계단이나 상승했다.

이랜드리테일이 운영하는 서울 서초구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재계 순위 26계단 상승 따른 '후유증' 커

하지만 고속성장의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무리한 M&A(인수·합병)로 그룹의 부채율이 한때 400%에 육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룹의 사업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마저 하락하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 몇 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신발 브랜드인 케이스위스(K-SWISS)와 캐주얼 의류 브랜드 티니위니, 생활용품 브랜드 모던하우스 등을 잇달아 매각했다. 돈이 되지 않는 브랜드나 매장은 과감히 축소하거나 철수했다. 심지어 이랜드리테일의 점포 주차장 운영권까지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주력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의 상장을 추진했다. 이때가 2016년 말이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상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2016년 12월 처음으로 한국거래소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청구를 했다. 예정대로라면 2017년 5월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그룹에서는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자회사 이랜드파크가 상장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이랜드파크가 오랜 기간 아르바이트생의 임금 84억원을 부당하게 착취한 사실이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파장은 적지 않았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랜드 불매운동이 일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랜드' '#불매운동' '#알바꺾기' 등 키워드가 상위권에 랭크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랜드그룹은 임직원 일동 명의의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럼에도 성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사과문'을 '사죄문'으로 바꿨다. 사과 주체 역시 '임직원'에서 '경영진 일동'으로 고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이랜드그룹은 이랜드파크의 외식사업부를 떼어내 매각을 추진 중이었다. 하지만 근로자 임금 착취 논란이 불거지면서 매각 작업이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이랜드리테일의 모회사이자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이랜드월드'발(發) 악재도 불거졌다. 상장 심사를 앞둔 2016년 12월 한국신용평가는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한 단계 낮췄다. 이랜드리테일의 기업어음이나 회사채의 신용등급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결국 한국거래소는 이랜드리테일 상장을 위한 심사를 연기했다.

거래소 상장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이랜드리테일은 프리 IPO로 방향을 틀었다. 2017년 6월 재무적투자자(FI)들이 6000억원을 출자해 이랜드리테일 지분 69%를 사들였다. 2019년 상반기까지 이랜드리테일을 상장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랜드리테일은 2018년 말 다시 한번 한국거래소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국내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이유로 또다시 상장 계획을 접어야 했다. 프리 IPO 계약에 따라 FI에게 받은 투자금 역시 돌려줬다.

상장 예비심사 청구와 철회를 반복하는 사이, 이랜드리테일의 경영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이랜드리테일은 지난 2017년 처음으로 매출 2조원대를 돌파했다. 2018년에도 매출 2조1510억원으로 소폭이지만 상승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9년 말 이랜드리테일의 연결 기준 매출은 2조1067억원, 영업이익은 2126억원, 당기순이익은 47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각각 2.1%, 10.2%, 50.9% 감소했다.

2020년 상황은 더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영업시간 단축과 임시휴업이 반복되면서 실적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랜드리테일의 매출은 2020년 상반기 기준으로 두 자릿수 역신장세를 기록했다.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송도 NC백화점 커넬워크점과 대구 동아아울렛 본점, 2001아울렛 수원남문점, 뉴코아아울렛 모란점 및 안산점 등이 지난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경영진의 입에서 '위기 상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지난 5년간 추진했던 상장 계획 역시 연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랜드 측 "상장 일정 추후 상황 보고 논의"

이랜드그룹 측도 이 같은 시각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상장 연기가 불가피하다. 결과적으로 2019년 상장하지 않은 것이 득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렇다고 상장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2019년부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사업 전략을 전환하는 것을 준비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면서 "상장 일정은 추후 상황을 보고 다시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랜드그룹은 지난 201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마무리한 상태다. 그동안 그룹을 이끌어오던 박성수 회장과 박성경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최종양 부회장과 김일규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박 회장이 회장 직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계열사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특히 최 부회장의 경우 2019년 이랜드리테일 대표로 선임된 지 1년여 만에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 이랜드월드 대표였던 김일규 부회장은 이랜드건설 대표로 옮기면서 이랜드그룹은 사실상 최종양 '원톱' 체제로 바뀐 상태다. 전문경영인으로 계열사의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해 그룹의 자생력을 확보하고, 이랜드리테일을 상장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려는 최 부회장의 계획 역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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