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장애인댄스스포츠 국가대표의 은밀한 '부캐' 생활

김승혁 2021. 1. 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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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애·비장애인의 '사이 0(제로)'를 꿈꾸는 사이영협동조합 강세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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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혁 기자]

 출처 '사이영협동조합' 홈페이지
ⓒ 김승혁
2020년 12월 21일, 이곳은 전북 정읍중학교 강당. 학생들이 모여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멋진 무대복을 입은 여성 댄서 뒤로 나타난 휠체어를 탄 남자. 학생들의 자잘한 환영 박수는 이내 큰 함성으로 바뀌었다. 함성의 주인공은 강세웅씨다.

그는 평소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이 끝나면, 그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휠체어 댄스를 춘다. 도통 '본캐'(본 캐릭터)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웅씨는 '인생 부캐'(부 캐릭터)가 있는 사업가이다. 그는 사회적 기업 '사이영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대표다. 지난해 12월 26일 그를 만나, '사이영협동조합'이 그간 펼쳐온 다양한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이를 좁히는 곳 

"'사이영(420)'.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이를 '영(0)'으로 만든다는 의미의 사이영협동조합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설립됐습니다. 우리 협동조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열고자 장애인식개선 교육 및 문화예술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이영협동조합은 전라도 초·중·고등학교의 학생과 교직원, 도내에 소재한 기업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체험형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제공한다. 또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장애인식개선 캠페인을 기획해 오프라인 체험 부스와 거리 공연, 이벤트 행사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사이영협동조합의 모든 활동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인식 차이와 실질적인 차별을 없애고, 장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췄다. 사이영협동조합은 장애인식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주로 학교에서 공연과 강연을 진행하는데 대면 수업과 외부 활동이 더는 불가능해지면서 올해 상반기 운영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다행히 작년 하반기에는 전라남·북도 교육청의 예산을 지원받아 학생 수 6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기존에 진행하던 캠페인이나 거리 공연 등은 무기한 중단됐다.

그러나 그는 "코로나로 계획이 틀어졌지만, 4차 산업혁명과 '언택트' 시대에 발맞춰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장애인식개선 수업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예술가 발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다"라고 활동 계획을 전했다.
 
 강세웅 대표와 사이영협동조합이 기획한 장애인식개선 인형극 '도담도담'
ⓒ 김승혁
 
사이영협동조합은 교육 시간마다 색다른 교육 장치를 준비한다. 지난 2019년 순천 동산초등학교에서는 장애인식개선 인형극 '도담도담'을 처음 선보이며 학생들의 함성을 자아냈다. 전남문화예술 지원사업의 도움으로 진행된 인형극은 공연형 프로그램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바꾸고 장애 또한 피부색처럼 개인 고유의 특성임을 알려준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지역 작가 지망생들과 협업해 동물 이야기 등의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를 구상하고, 협동조합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며 그 의미를 더한다. 작년에만 15회의 공연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지역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까지 교육 활동 반경을 넓혔다.

올해로 3회차에 접어든 무(無)장애 관광 토크콘서트 '모두 모여'는 시민과 대학생, 지자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장애물 없는 환경)' 관광의 개념을 소개하고, 이들과 함께 장애인의 장애물 없는 관광을 위한 환경 조성 방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토크콘서트 개막에 앞서 세웅씨의 휠체어 댄스스포츠 축하 공연과 지역 청년 예술가들의 전시 프로그램은 덤이다. SNS 해시태그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포토존을 설치해 토크콘서트의 색채를 한껏 더한다.

실제로 '모두 모여' 토크콘서트를 통해 '관광 약자를 위한 관광환경조성' 조례 제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순천시 무장애 관광지도 웹 매거진을 발행해, 한국관광공사에서 매년 지정하는 무장애 관광지에 순천 여행지가 3곳이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이나 체험 활동 등을 진행하다 보면 '앉아서만 듣는 이론 수업은 지루한데 휠체어 댄스도 볼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삶의 용기가 필요했는데 감사합니다' 등의 감사 인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힘들었던 지난 기억은 사라지고 되레 힘이 나죠."
 
 사이영협동조합이 진행한 장애인식개선 교육 '보치아 체험활동'
ⓒ 김승혁
 
특히, 반응이 좋았던 장애인식개선 활동 중 하나는 지난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보치아' 체험 수업이었다. 보치아는 장애인 스포츠 경기 종목 중 하나로, 공을 던지거나 굴려 표적 공과의 거리를 비교해 점수를 매기는 구기 스포츠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운동이지만,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과 운동성 장애인만 참가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과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장애인 올림픽 종목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경기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학생들은 '컬링'과 비슷하다며 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또한, 사이영협동조합은 3년 전부터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도 함께하는 장애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적과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파란 장미' 캠페인을 열어 '브이로그 만들기' 이벤트를 비롯해 댄스스포츠 및 치어리딩 공연 등의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들이 거리에서 함께 춤을 추며, 시민들의 장애인식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한 시민분께서 매년 캠페인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라며, "장애인식개선 캠페인이 시민들에게 전달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저도 당신처럼 될 수 있을까요?" 그가 멈출 수 없는 이유 

이처럼 세웅씨는 문화예술을 접목한 장애인식개선 교육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족한 장애인 해외봉사단에 참여해 캄보디아로 떠났다. 캄보디아 장애인 기관을 순회하며 장애인식개선 교육와 댄스스포츠 공연을 선보였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뿌듯함'이 아닌 막중한 '책임감'이었다고 전했다.

"어느 캄보디아 장애인 당사자가 제게 묻더군요. '장애인인 저도 당신처럼 휠체어 댄서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요. 그의 담담한 말이 꽤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저 또한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발걸음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댄스학원에 등록해 장애인댄스스포츠 국가대표가 됐고, 지금은 과거 '강세웅'과 같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와 잘 융화될 수 있도록 돕는 장애인식개선 사업가가 됐습니다. 진정한 장애인식개선은 장애 당사자가 직접 일궈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휠체어를 구르며 춤을 춥니다."
 
 지난 2019년 강세웅 대표는 장애인식개선 해외봉사단에 참여해 캄보디아 장애인 기관을 순회하며 장애인식개선 교육과 댄스 공연을 선보였다.
ⓒ 김승혁
 
세웅씨의 최종 목표는 '문화예술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장애인이 양질의 일자리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길 바란다. 언제 최종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체력이 따라주는 만큼 춤출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제 장애인댄스스포츠 국가대표라는 과거의 '본캐'(2018~2019 시즌까지 활동)보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바꾸고, 더 나아가 장애인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인생 부캐'에 몰두하는 청년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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