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조직검사 않고도 '폐암 유전자 돌연변이' 정확하게 판별

임웅재 기자 입력 2021. 1. 14. 15:49 수정 2021. 1. 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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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
내시경 기관지·폐포 세척액으로
환자 30~40%가 가진 EGFR 변이
1~2일 안에 97% 정확도로 확인
[서울경제] 담배를 피우지 않는 40대 중반 남성 A씨. 6년 전 갑상선 유두암(갑상선암의 80~90%를 차지하며 예후가 좋아 10년생존율 90% 이상)이 발견돼 추적관찰 중 최근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서 폐 좌상엽에 2㎝ 크기의 작은 병변(폐결절)이 발견됐다.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이는 ‘간유리 음영’ 폐결절이었다.

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기존 방법은 조직검사지만 조직을 얻을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병변이 폐의 중심부나 기관지 근처면 기관지내시경으로 조직을 얻을 수도 있지만 내시경이 들어갈 수 없는 폐 말초부에 위치했다. 더구나 간유리 음영 폐결절은 종양처럼 덩어리져 있지 않고 푸석푸석해 위험을 감수하고 갈비뼈 사이로 병변에 20㎝쯤 되는 조직채취용 침을 찔러넣어도 조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는 이런 경우 기관지내시경을 병변과 가까운 곳까지 밀어넣고 식염수를 쏘아 기관지·폐포(허파꽈리)를 세척한 뒤 세척액을 회수해 폐암 관련 유전자 변이가 있는지 검사한다. 국내 폐암 환자 10명 중 3~4명에서 발견되는 ‘표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EGFR) 유전자 변이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가 대상이며 변이가 확인되면 ‘EGFR 억제 표적항암제’ 치료를 하게 된다.

이계영 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장이 기관지·폐포 세척액으로 유전자검사를 해 EGF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음을 확인한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서 폐암 병변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건국대병원
◇조직검사서 암세포 못 얻은 환자서 변이 유전자 검출도

검사 결과 A씨는 EGFR 유전자의 엑손21 변이(L858R)가 있는 1기 폐암으로 진단돼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계영 센터장은 “조직검사를 통해 폐암 세포를 찾아내지 않고도 EGFR 유전자 변이를 확인해 초기 폐암을 진단한 사례”라며 “비슷한 임상 사례가 적잖아 (갈비뼈 사이로 조직채취용 침을 폐 병변까지 찌르는) 침습적 조직검사 없이 폐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기관지·폐포 세척액을 이용한 유전자검사인데 액상검사 또는 액상생검이라고도 한다. 대한폐암학회 이사장을 지낸 이 센터장은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로 우리 센터에서 시행하는데 1~2일 안에 결과를 알 수 있고, 정확도도 성공한 조직검사의 97%(4기 환자는 100%) 수준으로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가의 내비게이션·초음파 내시경으로 조직검사를 시도해도 10~30%가량은 폐암세포를 얻는데 실패한다. 혈액 유전자검사는 EGFR 유전자 변이를 잡아낼 확률이 50%를 밑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암세포는 암 특이적 돌연변이 유전자 등을 납작한 주머니 모양의 세포 소기관인 소포체(小胞體)를 통해 세포 밖으로 퍼뜨린다. 소포체는 단백질·지질 합성, 세포 내 물질 수송과 관련 유전자 돌연변이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센터장은 폐포 세척액에 있는 소포체를 깨서 DNA를 분리, 유전자검사를 하면 폐암 관련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를 알 수 있고, 정확도가 성공한 조직검사 만큼이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꾸준히 발표해 왔다.

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 액상병리검사실 연구원이 기관지·폐포 세척액에서 분리한 암세포 유래 DNA와 EGFR 돌연변이 폐암 유전자 검출용 시약을 혼합하고 있다. 유전자를 대량복제하는 증폭(PCR) 과정을 거치면 EGFR 돌연변이 폐암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건국대병원
◇고가의 표적항암제 건강보험 적용받는 데 큰 도움

폐포세척액 유전자검사는 폐암 환자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며 빨리 표적항암체 치료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년 전 담배를 끊은 70대 중반 남성 B씨는 2016년 8월 EGFR 변이 폐선암(IB기)으로 폐 좌상엽절제술을 받았다. 하지만 2018년 10월 암이 재발, EGFR 변이 표적항암제 ‘이레티닙’을 복용하다 최근 이 약에 내성이 생겨 입원했다. 1~2세대 EGFR 억제 표적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는 3세대 표적항암제 ‘타그리소’로 약을 바꿔야 하는데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내성 관련 변이(T790M)가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기관지내시경 조직검사에선 만성 염증 소견만 보였고 혈액 유전자검사에서도 변이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반면 폐포 세척액에서는 타그리소의 적응증 가운데 두 가지 변이(T790M, 엑손19 결실)가 확인돼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며 이 약을 복용할 수 있었다.

2년 전 폐암(L858R 변이) 진단을 받고 1년간 표적항암제 ‘지오트립’ 처방을 받으며 통원치료하던 60대 후반 여성 C씨는 지난해 3월 CT 검사에서 폐병변 및 폐전이 악화로 재입원했다. 타그리소 처방을 위해 T790M 변이 확인이 필요했지만 고가의 초음파 기관지내시경 검사에서 폐암 세포를 찾지 못했고 혈액 유전자검사에서도 변이를 찾지 못했다. 다행히 기관지내시경 때 함께 시행한 병변부위 폐세척액에 대한 EGFR 유전자검사에서 두 가지 변이(L858R와 T790M)가 확인돼 가까스로 타그리소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센터장은 “1~2세대 EGFR 억제 표적항암제를 1년 정도 사용하면 내성이 발생하는데 치료로 종양이 작아져 있고 그 주변에 섬유화가 일어나 조직검사를 해도 암세포 채취에 실패, T790M 변이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 경우 타그리소에 건강보험 적용이 안돼 치료가 늦어지거나, 환자 전액 부담으로 이 약을 복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을 접목해 수백 개의 폐암 관련 유전자 변이 여부를 한꺼번에 확인하는 연구에 한창이다. 이 센터장은 “수년 안에 EGFR 유전자검사에 그치지 않고 모든 폐암 유전자로 검사 대상을 넓혀 크기가 작은 초기 폐암 의심 병변(폐결절)에 대한 폐세척액 유전자검사의 정확도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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