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많은 사람 죽었는데 무죄라니"

정성조 2021. 1. 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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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에.."살균제 6개월 써보고 얘기하라"
"피해 아이들은 학교서 '가습기살균제'라 불려"
살균제 피해자 피해 증언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피해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1.14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6·25전쟁 이후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게 가습기살균제 참사인데 무죄라니요. 판결 선고한 판사, 제조사 경영진, 검찰, 국회의원에게 '너희도 우리와 똑같이 6개월만 써보라, 죽나 안 죽나 써보고 얘기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폐질환을 13년 앓던 아내를 지난해 8월 떠나보낸 김태종(66)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대한민국이 싫어서 떠난다는 말을 요즘엔 실감한다"며 "언제까지 기업 편에만 설 것인가. 언제까지 없는 사람들을 죽여야 하나"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은 14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무죄라는 가습기살균제가 우리를 이렇게 파괴했다"고 했다.

이틀 전인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은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등 관계자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동물실험·역학조사 결과 이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속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것이 판결 이유다.

김씨는 2007년 10월 이마트에서 990원짜리 기획상품으로 나온 가습기메이트를 샀다고 한다. CMIT·MIT 성분이 함유된 애경산업 제품이다.

폐활량이 좋고 성가대에도 열심히 참가하던 아내는 이듬해 7월 호흡 곤란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가습기살균제와 접촉한 지 1년도 안 돼 폐 상태는 나빠질 대로 나빠져있었다.

목 절개를 하고 인공호흡기를 단 아내는 지난해까지 총 21차례 병원을 오갔고 16번째로 중환자실에 들어간 뒤 결국 나오지 못했다.

피해 증언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피해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1.14 scape@yna.co.kr

아이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선택한 부모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수원에 사는 김선미(36)씨 가족은 남편과 두 아들까지 네 식구 모두 천식과 폐쇄성 환기장애 등을 앓고 있다. 김씨는 판결 소식을 듣고도 믿기지 않아 "누군가 심한 장난을 친 줄 알았다"고 했다.

김씨는 첫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인 2008년 11월 이마트에서 가습기메이트를 샀다. 제품 뒷면에는 '10㎜씩 물에 넣으라'고 돼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절반만 썼다고 한다.

명시된 사용기간인 '개봉일로부터 6개월'이 흐른 뒤 제조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자는 "효능은 떨어질 수 있지만 안 넣는 것보다는 낫다. 저희 제품은 친환경이라 인체에 무해하다"며 계속 사용을 권했다고 김씨는 기억했다.

집에 흡연자도 없고 둘째가 태어난 뒤로는 생선도 굽지 않은 집에서 '외부요인'을 찾던 의사는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했다. 태아 때부터 생후 6개월까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13살 둘째 아이는 "지금까지 편하게 잔 날이 하루도 없다"고 했다.

업체들을 고발하자 대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변호사가 없는 듯하니 소를 취하하라. 그러지 않으면 봐 드리지 않겠다"고 협박조로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기업들이 먼저 사과하게 한 뒤 엄마가 너희에게 사과할게'라고 한 약속을 무죄 판결로 지킬 수 없게 됐다"며 "제가 미안하다고 아무리 해도 책임질 사람이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연합뉴스TV 제공]

부산에 사는 김미향(39)씨의 쌍둥이 딸들은 생후 3개월이던 2012년 초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에 처음 노출됐다.

동생은 생후 6개월 무렵, 언니는 돌이 지났을 때 호흡 곤란이 시작됐고 2015년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1등급 판정을 받았다. 또래보다 키나 몸무게 모두 현저히 작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딸은 목에 구멍을 뚫었다가 최근 메웠으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아이더러 '가습기살균제'라고 부른다"며 가슴 아파했다.

김씨는 법원 판결에 대해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며 "이렇게 몸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데,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는 '유령사건'이란 말인가"라고 물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재판부는 동물실험을 근거로 CMIT·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데, 동물에서만 반응이 나타나는 물질도 있고 인체에서만 나타나는 물질도 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19일 이번 가습기살균제 재판에 전문가 증인으로 참여한 환경보건·독성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무죄 선고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간담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학회 차원의 비판 성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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