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로 문화재 복원' 김영택 화가 별세

장재선 기자 2021. 1. 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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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한 펜화로 국내외 건축 문화재를 복원하는 그림을 그려 온 김영택 한국펜화가협회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타계했다.

1994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펜화 작품들을 본 것을 계기로 펜화가로서의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1㎜ 안에 다섯 개의 선을 그리는 세밀한 펜화로 건축 문화재를 그려냄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사진과 다른 회화적 요소를 더하고 인간 시각 특성에 맞춘 원근법을 사용한 그의 펜화는 '김영택 류'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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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한 펜화로 국내외 건축 문화재 복원한 ‘김영택 류’ 명성

- 13일 타계한 펜화가 김영택 …생애 끝까지 그림 열정 불태워

세밀한 펜화로 국내외 건축 문화재를 복원하는 그림을 그려 온 김영택 한국펜화가협회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타계했다. 76세.

고인은 대장암이 재발해 말기에 달했으나 이달에 전시회를 추진하는 등 생애 끝까지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부인 이종란 씨는 “고인이 전시회를 앞두고 몸을 추스르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폐에 물이 차는 등 합병증이 도지는 바람에 20일 개막을 못 한 채 세상을 떠났다”며 울먹였다. 마지막 인터뷰가 된 문화일보 기사(1월 8일자 19면)를 통해 김 화백은 “건강을 되찾으면 서울 중심가 풍물을 그리고 싶다”고 했으나 미완의 꿈으로 남았다.

고인은 1945년 인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미대에서 공업디자인을 공부한 후 제일기획 등 광고기획사에서 산업디자이너로 일했다. 1977년 종합 디자인 회사를 설립해 운영했으며, 1993년 국제상표센터(ITC)가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에게 부여하는 ‘디자인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1994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펜화 작품들을 본 것을 계기로 펜화가로서의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1㎜ 안에 다섯 개의 선을 그리는 세밀한 펜화로 건축 문화재를 그려냄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숭례문, 황룡사 목탑, 로마 콜로세움 등 국내외 문화재의 현재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유실되거나 손실된 부분을 온전하게 되살렸다. 사진과 다른 회화적 요소를 더하고 인간 시각 특성에 맞춘 원근법을 사용한 그의 펜화는 ‘김영택 류’로 불렸다. 서양에서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흥성했다가 현대에서 퇴조한 기록 펜화를 한국에서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 씨와 아들 김한열(사업), 김준범(회사원) 씨가 있다. 장례는 인천 청기와장례식장에서 치러지며, 발인은 15일 오전 5시 30분.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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