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현대 제휴설에 숨겨진 '넥스트 삼성'의 기회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2021. 1. 1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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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지난주 금요일 애플과 현대차의 제휴설이 나오면서 자동차 업계가 시끄럽습니다. 제휴설이 불거진 직후 현대차가 공시에서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 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애플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았지만 일단 ‘협력'에 대해 인정함으로써, 시장이 이것을 애플과의 제휴가 진행되고 있다는 쪽으로 해석했습니다. 이후 난리가 났지요. 아시다시피 현대차 주가가 급등했고, 해외 경쟁업체 주가에도 영향을 주고 미국·일본 언론까지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애플과 현대차의 협상에 대해선, 아무것도 확정된게 없다는 것이 현 상황에서 유일한 사실일겁니다. 다만 최근의 여러 업계 사건과 애플·현대차의 현재 상황, 그리고 아이폰에 이어 이른바 ‘애플카’ 제조까지 맡겨달라고 애플에 끈질기게 구애해 왔던 대만 홍하이(아이폰 수탁제조사인 폭스콘의 모기업)가 애플·현대차 제휴설 이후 보여준 변화 등을 토대로 애플·현대차의 제휴 가능성, 제휴가 될 경우 어떤 형태가 될지 추정해 보겠습니다. 우선 3가지 포인트를 말씀드리고 설명 이어가겠습니다.

1. 애플·현대차의 제휴가 성사된다면, 아이폰처럼 애플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완결된 제품을 현대차가 하청생산하는게 아니라, 현대차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애플의 운영체제(OS)와 칩을 탑재하는 ‘파워드 바이 애플(Powered by Apple)’ ‘애플 인사이드(Apple Inside)’ 형태의 현대 브랜드를 단 자동차가 될 가능성이 있다.

2. 애플은 자동차 자체를 직접 생산할 생각이 별로 없다. 아이폰 생태계를 지금까지 잘 확장해 온 것처럼 생태계의 연장선으로 자율주행·AI·인포테인먼트 등을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애플이 지금 자동차업계의 테슬라처럼 하드·소프트의 수직 통합구조를 이뤘지만(위탁생산은 하더라도), 자동차에서는 스마트폰 시장의 구글 안드로이드처럼 운영체제(OS), 그리고 (구글은 제공 안하지만) 칩을 제공하고 자동차는 각자의 고유 브랜드로 만드는 것을 용인하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테슬라가 완전 자율주행을 위한 AI 개발과 모빌리티서비스에 대비한 전기차 시장을 선점해나가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애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라는 최종 디바이스에 자신들의 소프트웨어를 얹어 애플 생태계를 전파할 ‘레퍼런스카’를 애플이 추구하는 높은 완성도로 빨리 만들어줄 완성차 업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3. 현대차는 전기차의 빠른 판매 확대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에 매력을 부여해 줄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자동차 이외의 사업 확대를 위해 제조업 중심에서 테크놀러지 중심으로의 획기적인 브랜드 가치 향상을 원하고 있다. 애플과의 협업이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 향상에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애플의 OS와 칩을 탑재한 ‘애플 인사이드’ 현대차를 만드는 것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

팀 쿡 애플 CEO.

◇애플이 현대차에 제안한 것은 아이폰의 전기차 버전을 하청생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애플 인사이드’ ‘파워드 바이 애플’ 개념의 현대 브랜드 전기차를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모든 것이 ‘뇌피셜’이므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다만 현 상태에선 현대차와 애플의 협상 당사자들도 확정한 것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아직 협상의 변화 여지도 꽤 많을 것 같습니다. 다만 추정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애플·현대차 협상의 본질이 이른바 ‘애플카’ 즉 아이폰처럼 애플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인 ‘제품’을 현대차가 대신 만들어주는 형태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아이폰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플’임을 과시하는 제품을 현대차가 단순히 대신 만들어주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폰을 대만의 폭스콘이 수탁생산(하청생산)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는 거죠. 애플과 현대차가 협력해 만들어낼 수도 있는 ‘애플카’는 애플 마크를 달고 나오는 아이폰의 자동차 버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애플 브랜드 대신 현대 브랜드의 자동차로 나오되, 애플의 OS(운영시스템)와 칩을 탑재한 형태라는 거죠.

쉽게 말씀드리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처럼 삼성이나 다른 회사들이 각자 브랜드로 만들지만 구글 OS가 들어가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물론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구글은 OS만 제공할 뿐이고, 칩(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은 미국 퀄컴이나 대만 미디어텍이나 한국 삼성 등이 만들죠. 애플과 현대의 협업은 굳이 비교하자면, 삼성이 구글 OS를 받아 스마트폰을 만드는데, 칩까지 구글에서 통째로 제공받는 것과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노트북에 비교하면요. 세상에 아주 많은 노트북 브랜드가 있지만, 운영체제는 대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를 쓰고, 칩은 인텔 등의 것을 쓰지요. 기존과 컨셉이 다르고 성능도 뛰어난 새 노트북을 만드는데, 애플이 OS와 칩을 제공하고 현대가 그것을 받아 자체 브랜드로 노트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논란의 여지는 많습니다. 애플·현대차 제휴설이 뜬 뒤 월스트리트저널이 컬럼에서 ‘자동차회사에 애플과의 제휴는 독이 든 성배를 받는 것과 같다”고 썼지요. 현대차 입장에서 독이 분명 있지요. 보기에 따라서는, 핵심은 애플이 쥐고 현대는 껍데기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게다가 현대차 내부적으로 산적한 난제에 대해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현대차의 논의는 일반적으로 추정하는 수탁·하청생산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현대라는 브랜드가 살아있는 ‘애플 인사이드’ ‘파워드 바이 애플’의 자동차 될 공산이 커보이기 때문입니다.

◇'애플카' 수탁생산을 맡겨달라고 애플에 끈질기게 구애했던 대만 홍하이가 애플·현대차 제휴설 직후, 중국 바이두·지리자동차 연합에 합류한 것은 의미가 크다

물론 이러다가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도 크지요. 협상 내용 역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여지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왜 이런 추정이 가능한지를 최근 며칠간 중국·대만 등에서 벌어진 일을 근거로 말씀 드리고, 그 다음으로 테슬라의 약진 이후 애플과 현대차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상황을 통해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이번 협상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중국·대만에서 나온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플·현대 협상설이 처음 나온 것이 1월 8일 금요일이었는데요. 주말을 넘긴 11일 월요일에 중국에서 빅뉴스가 터졌습니다. 중국 인터넷 검색 최대기업인 바이두와 중국 최대 토종 자동차기업인 지리자동차가 자율주행 전기차를 공동 개발해 판매한다고 밝힌 것이었죠.

한국에선 애플·현대차 제휴설 때문에 이 뉴스가 묻힌 감이 있지만, 미국으로 치면 구글과 GM이 자율주행 전기차를 함께 만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의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바이두는 2019년부터 중국 내 일부 도시에서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 4’의 자율주행 택시를 시험운행하고 있지요. 3~4년 뒤에는 자체 기술을 탑재한 자율주행차를 100만 대로 늘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바이두·지리차는 자율주행 전기차의 연구개발·설계·제조·판매·AS를 총괄하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바이두가 과반을 출자해 독자 브랜드의 승용 전기차를 판매하는 형태입니다. 지리는 새 회사의 전략적 파트너로 출자하게 됩니다. 차량은 지리가 개발한 전기차 전용의 플랫폼을 활용해 지리 공장에서 만듭니다.

이를 통해 지리는 바이두의 IT 노하우를 흡수하고, 바이두 독자 브랜드 차량의 제조를 하청받음으로써 전기차 생산 규모 확대를 노린다는군요. 지리는 2010년에 볼보 승용차 부문을 인수했기 때문에 이 관계가 볼보로 이어져 세계시장과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수 있다 치죠. 바이두·지리의 자율주행 전기차 연합이 큰 뉴스이긴 하지만, 언제든 나올만한 얘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틀 뒤인 1월 13일 나온 뉴스는 또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대만 홍하이가 지리자동차와 절반씩 지분을 출자해서 전기차 회사를 새로 만든다고 한 것이었죠. 양사는 설계에서 생산까지 전기차 사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중국 최강의 자율주행차 연합(바이두·지리)이 탄생한지 불과 이틀만에 대만 최대의 IT제조 기업과 중국 최대 토종 자동차기업의 강력한 연합이 탄생한겁니다. 홍하이가 몇 년간 전기차 플랫폼 개발에 주력해 오긴 했지만, 어떤 파트너와 제휴할지는 철저히 함구해 왔었죠.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밝힌 것입니다.

이로써 대만 홍하이와 중국 지리·바이두의 3각 구도가 형성된 것이지요. 중국의 미래자동차 업계 구도가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그런데 왜 지금 홍하이가 포함된 이 엄청난 연합이 공개됐느냐는게 의문입니다. 추정 중 하나는 애플·현대 제휴설이 단순한 떠보기 정도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홍하이·지리·바이두 연합의 깜짝 공개는 이에 대한 선제적 견제 성격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죠. 특히 홍하이는 애플 제품 대부분을 수탁 생산해주고 있죠. 현재는 단순 생산을 넘어 IT와 전기차 전반에 대한 제조·개발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하이는 “애플카도 우리가 만들게 해달라”고 애플에 엄청나게 구애를 해 왔습니다. 그것을 위해 연구개발 투자도 많이 해 놓은 상태였지요.

하지만 미·중 관계가 변수였던 것 같습니다. 홍하이는 대만 회사이긴 하지만 중국에 생산·부품공급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애플로서도 껄끄러웠을 수 있죠. 결국 홍하이가 여러 수를 그려본 결과, 애플과 잘 안될 수 있으니 바이두·지리에 붙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을 확률이 있습니다. 애플·현대차 제휴설이 불거진 며칠 뒤에 이런 큰 발표를 했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지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

◇애플은 아이폰에서와 달리 자동차 제조에 관심 없어...완성차 업체들을 iOS 생태계에 끌어들이기 위해, 첫번째 제휴 상대에 혜택 몰아줄 가능성

애플의 입장에선 어떨까요? 애플은 2014년 이후 자율주행 기술을 본격 개발해 왔지요. 그 사이에 자동차까지 직접 만드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 같지만, 현재로서는 자동차 자체를 애플이 직접 만들거나 아이폰처럼 완결된 형태의 제품을 홍하이에 위탁생산하듯이 하는 방식은 사실상 접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팀 쿡을 포함한 애플의 고위임원이 애플 ‘카’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도 없고, 특히나 자동차라는 제품 자체를 직접 만들겠다고 말한 일이 없습니다. 팀 쿡은 2017년 6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애플의 자율주행 혹은 이른바 애플카 개발계획인 ‘프로젝트 타이탄’에 대해 처음 언급했었는데요. 그때도 자동차를 직접 만든다(위탁생산이든 뭐든 말입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애플은 자율주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이다. 우리는 자율주행시스템이 모든 AI프로젝트의 모태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아이폰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자율주행기술을 연구한다는 거였죠. 이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을까요? 애플의 목적이 아이폰처럼 외형적으로도 애플임을 과시하는 제품을 자동차에서도 만들려는게 아니라, iOS 생태계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iOS의 자동차 버전과 그에 맞는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사용자 체험, 그리고 칩을 제공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라는 제조업은 여전히 크고 또 협업을 통해 또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아직 많습니다. 애플이 아이폰에서처럼 소프트·하드웨어를 모두 자신들이 제공해 그 이익의 대부분을 혼자 먹는 일을 자동차에서 똑같이 벌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애플이 자신들의 생태계를 자동차 쪽으로 확대할 수 있을까요? 자동차는 직접 만들지 않는데 말입니다. 애플이 추구하는 수준의 차를 만들려면 완성차 중에서도 제조능력이 뛰어나야 할텐데요. 그런 회사들은 애플의 단순하청으로는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애플의 파트너가 되어줄 업체가 제안에 응했을 때 그들에게 이익을 많이 줘야겠지요. 그래서 애플이 ‘애플 인사이드’ ‘파워드 바이 애플’을 현대차에 제안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애플 마크 단 아이폰의 자동차 버전을 만들 테니 현대차는 생산만 대신 해달라’라고 한다면, 아무리 현대차가 애플과의 협업에 전향적이고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 해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요.

또 하나 관심사는 애플이 이런 협업을 다수 혹은 복수의 완성차·부품업체와 할 것이냐입니다. 물론 제안을 여러군데 했을 수는 있죠. 하지만 실제로 협업이 성사된다면 우선 한 곳에 몰아주고 거기에 많은 혜택을 제공하려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와 제휴해 현대 브랜드의 애플 인사이드 자동차를 만든다고 치죠. 빨라야 2024년은 돼야 제품이 나오게 될텐데요. 그 때 가서 현대차가 얻은건 없고 공은 애플이 다 가져갔다고 쳐보죠. 어떤 다른 완성차 업체가 애플 인사이드를 받아들이려고 하겠습니까. 만약 현대차와 제휴한다면, 처음에는 다른 완성차를 더하지 않고 현대차와 단독 협업으로 상당 기간 끌고갈 공산이 있다는 겁니다. 현대차가 애플과의 제휴로 득을 봤다는게 널리 알려져야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애플의 우군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라도 애플이 자기 실속만 챙기는 일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애플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집니다. 테슬라가 전기차라는 ‘디바이스’를 선점해가면서 결국 소프트웨어·자율주행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장악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죠. 일론 머스크는 2030년 테슬라 전기차를 연간 2000만대 팔겠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이것은 테슬라 자체 생산 분만이 아니라 외부에 소프트웨어와 핵심 시스템 공급을 해서 저변을 넓히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머스크 뜻대로 된다면, 애플은 아이폰에서 보여준 최고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자동차로 확대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겁니다.

◇애플의 고민을 현대차가 잘 건드려줄 수만 있다면, 현대차 브랜드가치 향상의 돌파구 될 수도

그럼 현대차의 입장은 어떨까요? 애플과의 제휴는 성사된다 해도 걱정거리가 많지요. 하지만 협상 내용에 따라서는 제휴에 수반된 많은 단점·우려에도 불구하고 전향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현대차 브랜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상당기간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이렇게 딱 두가지만 관철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앞서 애플 상황을 설명드린대로, 현대차가 애플과 협의만 잘 한다면 불가능한 요구 사항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현대차로서는 애플을 활용해 현대차그룹 전체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도 있죠. 현대가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 시대에 과연 소프트웨어로 자립·성공할 가능성이 있냐는 것입니다. 냉정히 따져 독자생존은 어렵습니다. 미국 전장전문업체 앱티브와 조인트벤처로 만든 ‘모셔널’을 통해 자율주행을 연구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플랫폼 경쟁이 될텐데요. 월드 톱클래스들과 겨뤄 승리할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건 소프트웨어 기술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강대국들의 자국 중심주의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정의선 회장 체제로 들어오면서 일단 그룹 수장부터 70년대생일만큼 비교적 젊은 세대 중심이라는 것, 자동차의 비중을 50%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로보틱스나 개인 비행체 등 미래지향적 분야로 이동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애플과의 협업에서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구체적 셈법을 따지는건 이르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현대차가 애플의 고객이 될 수도 있겠죠. 오히려 현대차가 전통적인 자동차에 대한 무게를 가볍게 함으로써, 애플 등 IT업체와의 제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현대차가 전통적 제조 개념의 자동차에서 탈피하려는 것에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서울 양재동의 현대차 본사 전략기획 부문과 자동차 분야의 실제 전문가들이 포진한 남양연구소(자사 연구개발 부문) 간에 연계나 소통이 부족하거나 단절돼 있다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것이 심각해지면, 전략 실행의 실리를 도모하는 측면에서 패착을 둘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 연구개발 부문 등 내부 여러 조직의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결국 기존의 기업문화나 레거시코스트 측면에서 내부 역량만으로는 혁신이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리스크가 크더라도 ‘외부’의 혁신 역량을 끌어와 조직에 자극을 주고 생동감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전략의 첫번째 파트너가 애플이 된다면 엄청난 일이 되겠지요.

‘독이 든 성배’일 수는 있지만, 독을 들이킨 것인지, 아니면 5년 10년 뒤 현대차가 성배를 쥐었다고 평가 받을지는 아직 모르죠. 지금은 정 회장도 모르고, 팀 쿡도 모를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경영 판단은 리스크 테이킹입니다. (현대차·애플 모두) 현명한 판단을 통해 멋진 결과를 내주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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