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린 '유퀴즈', 이런 잘난 척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1. 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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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의 방향성을 제시한 소명의식 가진 직업인들의 세계
'유퀴즈', 돈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엔터미디어=정덕현] "진짜 지쳤을 때 집에 와서 집어 들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좀 따뜻하고 내일 일어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가로 잘 알려진 정세랑 작가는 자신이 쓰고픈 책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유독 좋아했고, 또 글 쓰는 걸 좋아해 매일 샐러리맨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고 일이 끝나고 나면 타인의 글을 잃거나 작품을 보며 논다는 정세랑 작가. 책 판매부수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그의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것.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겨울방학 탐구생활'이라는 부제를 달고 어떤 분야를 탐구함으로써 그것을 직업이 된 이들을 담은 이야기는, 직업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 직업이라고 하면 먼저 '밥벌이'에 '생계'를 생각하고 그래서 현실적인 '돈'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 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소명의식 같은 것들은 그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당장의 선택기준이 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정세랑 작가는 '어떤 질문이든 답을 알려주는 사전이 있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뭐냐는 물음에,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고 했다. 가장 시급하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알면 다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정세랑 작가는 "지금까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주의를 기울여야할 사회 문제나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걸 은연 중에 말하고 있었다.

<조선잡사>를 쓴 강문종 교수는 조선시대를 연구하다 가장 궁금했던 게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가 였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직업을 탐구한 그는 <의궤>라는 책에만 160개에서 200개의 직업이 있다고 했고, 가장 큰 돈을 번 직업이 사쾌(부동산 중개업자), 수모(웨딩플래너) 같은 직업도 있었지만, 매품팔이(매를 대신 맞아주는) 대장자 같은 불법이지만 살기 위해 대신 맞는 일까지 했던 직업도 있었다고 했다.

막힘없이 조선시대 직업에 대해 다양한 정보들을 풀어내주는 강문종 교수에게 조세호가 놀랍다고 말하자, 그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며 '잘난 척 하는 것'이 그 동기라는 소탈한 이야기를 내놨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방송사에서도 개그맨 공채를 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유재석이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건 아니냐고 묻자, 강교수는 즐거움을 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며 직업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을 들려줬다.

그는 이 탐구를 통해 "아주 사소하지만, 아주 지저분하지만 본인의 생계를 위해 또는 본인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며 분뇨를 처리하던 '똥장군'을 연암 박지원이 <예덕선생전>에서 '선생'이라 표현했던 대목을 들려줬다. "좀 더러운 것 또는 뭐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수많은 직업들이 끊임없이 유지가 되고 거기에 종사하면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갔을까"하는 스스로 드는 의문에 대해 그는 '자기만의 문법과 자기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그 힘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2개국의 참전용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전달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일을 사비를 들여 하고 있는 사진작가 라미는 바로 그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직업인이었다. 2017년부터 개인작업으로 시작한 이 일로 그가 찍은 참전용사의 수만 1400명. "사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무언가를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은사가 말해준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그는 빚을 내서도 하게 된 그 일을 통해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영국의 참전용사였던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불편한 몸에도 군인으로서 서서 찍겠다 말하며 아내의 부축을 받고 사진을 찍었는데, 라미는 그 사진을 전달하러 갔을 때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결국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라미가 말한 사진의 가치 그대로 '기록'을 통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직업이 단지 생계를 위한 돈의 차원을 넘어 소명의 가치를 갖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직업 선택에 있어서 현실적인 '밥벌이'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 자체가 힘겨워진 현실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돈만이 가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유퀴즈>는 에둘러 보여줬다. 최근 출연자 논란으로 질타를 받은 뒤 "제작진의 무지함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며 공식 사과문을 내놓은 <유퀴즈>가 프로그램 내용으로 그 사과의 진정성을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야말로 코로나로 인해 '직업의 세계'를 주로 다뤄왔던 <유퀴즈>가 향후 계속 추구해야할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그저 연봉이나 수입 그리고 그 수치로 얘기되는 성공에 경도될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살아도 저마다의 소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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