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한의 住土피아] 정부의 근거없는 '금리 탓'

2021. 1. 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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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집값 상관관계 따져 보니
역대 금리 인상시기에 더 올라
하락기엔 반대로 집값 떨어져
정책·수급상황 등이 더 큰 영향

정부가 연초부터 ‘저금리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내놓았다. ‘금리가 인하되면 대출가격(기회비용)이 낮아지므로 주거 이동 수요가 촉진되며, 주택시장으로 유입되는 투자수요가 늘어나 주택매매, 전세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골자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법한 기초 경제 상식을 굳이 3장이나 되는 분량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몇몇 언론에서 최근 부동산값 급등 원인을 진단하면서, ‘저금리 보다는 정부 정책이 문제’라는 식으로 보도한 데 대한 해명이다.

금리가 떨어지면 집값 상승에 유리하다는 건 기본적인 경제 상식에 속한다. 돈을 빌리기 쉬워지기 때문에 돈을 빌려 집을 사려는 수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도 대출 부담이 줄어 굳이 팔지 않고 버틸 여력이 생긴다. 이걸 정부는 집값 상승 원인으로 지속적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현실 경제는 이론처럼 움직이진 않는다는 게 함정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5.25%였던 기준 금리는 2009년 절반 이하인 2%까지 떨어뜨렸음에도 집값은 하락했다. 특히 2%대 저금리 상태를 유지했던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마이너스 집값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반대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3.25%였던 금리는 2007년 5%까지 매년 꾸준히 올랐지만, 집값은 역대급으로 뛰었다. 금리가 오르면 집값이 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큰 폭으로 뛰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집값을 결정하는 변수가 금리 외에 많기 때문이다. 모든 조건이 그대로인데, 금리만 움직인다면 이론대로 집값은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집값은 금리 외에도 다른 경기 여건이나, 주택 수급 상황, 정부 정책, 매수 심리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된다.

아무리 금리가 내려가도 다른 변수가 나빠지면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 금리 인하보다 경기 여건 등 다른 변수가 집값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더 많다.

문재인 정부에서 금리와 집값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할까?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5월 기준금리는 1.25%로 이미 역대 가장 낮은 상태였다. 이를 2017년 11월 1.5%, 2018년 11월 1.75%로 두 차례 연속 높였다. 경기가 회복되고 집값이 오르자 금리를 높인 것이다. 금리 인상 시기였지만 당시 서울 아파트값은 2018년 13.56% 폭등했고, 2019년엔 2.91% 올라갔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크고, 주택 수요가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9년부터 경기 상황을 고려해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2019년 7월 1.5%, 2019년 10월 1.25%, 2020년 3월 0.75%, 2020년 5월 0.5%까지 4번 연속 기준 금리를 떨어뜨렸다.

금리 인하 효과 때문인지, 집값 상승세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값 상승폭은 9년만에 최대치인 10%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있다. 한국은행과 시중 은행 간 거래에 적용되는 ‘기준금리’ 인하가 일반 수요자에게 적용되는 ‘시장금리’ 인하로 바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는 0.5%까지 떨어졌지만, 은행들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금리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별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들어 2020년 3월 기준금리가 1.25%에서 0.75%로 크게 떨어졌을 때 시중 평균 주담대 금리는 2.52%에서 2.48% 정도로 소폭 조정됐을 뿐이다. 그해 5월 기준금리는 0.5%까지 더 내려갔지만, 주담대 금리는 2.52% 수준이었고, 6월 2.49%, 7월 2.45%, 8월 2.39% 수준의 미미한 변동만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집값이 많이 뛴 9월 이후엔 주담대 금리가 다시 올랐다. 9월 2.44%, 10월 2.47%, 11월 2.56% 순이다.

주택 매매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담대 금리는 지난해 내내 2.39~2.56% 수준으로 변동폭이 적었다. 정부가 강조해온 것처럼 지난해 갑자기 금리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주장은 별 근거가 없는 이야기인 셈이다. 되려 주택 공급엔 별로 신경쓰지 않으면서, 전세 거래를 어렵게 하며, 규제 일변도로 수요를 잡겠다는 정부 정책이 지난해 집값을 자극한 요인이지 않았을까?

건설부동산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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