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의 푸드로지>쩡한 육수·짱짱 면발..'이냉치냉' 한사발

기자 2021. 1. 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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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 넘는 내력을 지닌 인천 경인면옥의 냉면
왼쪽부터 서울 마포의 무삼면옥, 서울 강남의 진미평양냉면, 서울 남대문의 부원면옥, 인천 백령도의 사곶냉면, 서울 마포의 동무밥상, 강원 태백의 태백평양냉면의 냉면. 다 같은 평양냉면이지만 위에 올리는 꾸미는 물론이고, 육수와 면의 색깔도 다르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겨울 별미 ‘냉면’

면발, 가을 수확 메밀이 기본

육수에 쓰던 꿩도 겨울이 제철

달달한 월동무 써야 맛 제대로

무삼면옥, 메밀면에 표고 올려

경인면옥, 육수·동치미 컬래버

사곶냉면, 까나리액젓 감칠맛

동무밥상, 북한식 ‘랭면’ 인기

이 한파에 냉면이라니. 코로나 블루에 정신줄 놓은 이 취급을 과연 받을 만하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시내 유명 면옥(麵屋)을 가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쩡’한 한파를 뚫고 찾아든 손님들의 파란 입술마다 드리운 ‘짱짱한’ 국수 가락을 보면, 냉면이 본디 겨울 음식이었음을 다시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다. 냉면은 겨울 음식이다. 물론 여름에도 맛있다. 시원하니까. 그 맛에 주르륵 빨아들인다. 하지만 맛은 겨울에 더 있다(냉면집에서 대우도 받는다).

가게마다 다르겠지만 냉면의 기본 구성요소는 면과 육수다. 전분을 쓰는 함흥냉면(농마국수)을 예외로 치고, 냉면 면발은 메밀이 기본이다.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기억한다면 메밀이 언제 영글고 수확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여름 저물어 꽃이 피니, 일러야 가을 초입이다. 국내 최대 메밀 재배지역인 제주에서는 11월 중순이나 돼야 수확할 수 있다.

먹을 게 늘 모자라던 시절, 가을에 수확한 메밀을 이듬해 여름까지 남겨둔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늦가을에 거둬 갈아낸 메밀가루를 겨울에 두고두고 먹었다. 여름 냉면이야말로 배부른 소리였다. 국물은 더욱 그렇다. 동치미를 담가놔야 냉면을 말아먹을 수 있다. 여름 동치미라니. 담그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최 무가 맛을 내지 못한다. 동치미는 단맛이 제대로 든 월동무를 써야 한다. 육수에 썼다는 꿩도 마찬가지. 꿩은 보통 겨울 농한기에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잡는다.

‘증언’도 수두룩하다. ‘냉면은 겨울 계절 음식으로 평양이 으뜸’이라며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다’는 글이 1849년 편찬된 동국세시기에 적혀 있다. “평양 사람이 타향에 가 있을 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한 힘이 있으니, 이것은 겨울의 냉면 맛이다. (중략) 꽁꽁 언 김치죽을 뚫고 살얼음이 뜬 김장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이요! 상상이 어떻소!” 김소저가 1929년 잡지 별건곤(別乾坤)에 적은 ‘사시명물 평양냉면’의 구절이다. 자, 냉면이 겨울에 먹는 음식이란 증거가 모두 나왔다. “이제 당장 냉면을 체포(?)하러 가겠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그래서 새삼 소개 따위는 필요 없는 이른바 ‘국가대표급 냉면집’은 제외했다.

◇무삼면옥 서부본점 = 설탕, 색소, 조미료를 넣지 않아서 무삼(無三)이다. 제분기를 두고 메밀 순면에다 표고버섯을 올린 특별한 외양의 냉면이다. 육수도 여느 평양냉면보다 짙은 색을 낸다. 눈을 가리고 육수를 음미해도 구별이 된다. 독특한 표고 향이 묻어난다. 볼끈 물기를 짜낸 오이지를 냉면 무와 곁들여 먹는다. 순면이라 입술로도 톡톡 끊어지는 면에서 메밀 향이 소록소록 솟아난다. 50% 메밀면과 적은 양도 선택할 수 있으며, 목이버섯과 들기름, 간장에 비벼 먹는 간장 비빔냉면 메뉴도 있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12길 50. 1만1000원.

◇경인면옥 = 원래 광복 전인 1944년 서울 종로통에서 창업했다고 하니 무려 70년이 넘었다. 1946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틀고 인천 냉면의 맹주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집이다. 동치미만 쓰는 본래의 평양냉면과 달리 고기가 풍족했던 인천에서 진화한 고기육수 평양냉면이다. 간은 슴슴하지만 육향은 짙다. 여기다 시원한 맛을 더하는 동치미의 적절한 배합이 이 집 맛의 비결이다. 순면은 아니지만 적당하게 끈기와 향기를 유지하는 면발도 좋다. 불고기와 녹두전, 만두 등 이북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인천 중구 신포로46번길 38. 1만 원.

◇진미평양냉면 = ‘강남냉면’의 인기를 주도하고 있는 집. 유명 냉면 노포 주방에서 근무한 셰프가 각 메뉴의 장점을 모아 차린 집이다. 얇지만 씹을수록 숨어 있던 메밀 향이 마지막까지 풍기는 면발에다 육향을 숨긴 투명한 이른바 ‘수돗물’ 육수, 진한 맛을 뿜는 수육과 계란, 무, 오이 등을 올린 꾸미까지 21세기 개업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내공이 있다. 특히 가슴이 뻥 뚫릴 정도의 시원한 국물이 인기라 사방에서 ‘냉면 해장파’가 몰려든다. 물론 저녁에 고기소 가득한 만두와 어복쟁반 등으로 선주후면하는 주객도 들끓는다. 서울 강남구 학동로 305-3. 1만1000원.

◇부원면옥 = 서울 시내 평양냉면집 중 가장 저렴한 가격대로 대대로 인기를 끄는 집. 개업 연수도 반세기가 넘었다. 약간은 낯설게도 뽀얀 국물에 굵은 면을 말고, 꽤 두툼한 돼지 수육을 올려준다. 달달한 동치미와 구수한 육수에 씹는 맛 좋은 면발을 똬리 틀어넣은 냉면은 맛도 좋고 푸짐해 남대문시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거뜬한 끼니와 장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시장냉면’답게 꾸미 인심이 좋다. 냉면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매콤 새콤한 닭 무침도 물리칠 수 없어 대부분 곁들이게 되는 메뉴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4길 41-6 부원상가 2층. 8500원.

◇사곶냉면 = 백령도 사곶에서 상호를 딴 냉면집이다. 이름하여 백령도 냉면이다. 우리 영토 서북 끄트머리 섬 백령도는 인천 옹진군이지만 사실 황해도와 바싹 붙어 있다. 냉면의 한 줄기를 이루는 황해도 냉면의 맥이 흐른다는 뜻. 냉면에 까나리액젓을 곁들여 감칠맛을 즐기는 독특한 방식이 특징이다. 새까맣고 쫄깃한 면을 사골육수에 말았다. 뽀얀 사골국물은 차가워져도 고소한 맛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육수에 까나리액젓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면 풍미가 한층 진해진다. 비빔냉면과 물냉면 중간쯤인 반냉면도 선택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인기 메뉴다. 인천 남동구 논고개로 253-2. 8000원.

◇동무밥상 = 정통 북한식 냉면을 표방하는 집. 북한 현지에서 고위층 대상 요리사로 지냈던 윤종철 오너 셰프가 차린 집이다. 일명 ‘북한냉면’이라 불리는 ‘랭면’이 인기다. ‘쩡’한 백김치 국물과 고기육수, 청장(淸醬)을 섞은 국물에 순면에 가까운 메밀 면을 말아낸다. 여기다 북한식 김치, 반찬이 국내의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새큼한 맛을 내는데 식욕을 돋우기에 딱이다. 꾸미로 얹은 소고기 수육은 고소하고 진한 육향이 일품이다. 이북식 순대 등도 곁들이로 좋은 메뉴. 서울 마포구 양화진길 10. 1만1000원.

◇태백 평양냉면 = 평양만큼 추운 태백에서 즐기는 냉면도 감탄을 자아낸다. 해외여행 갔다가 뜻밖에 친구를 만난 듯 아주 반가운 메뉴다. 고기를 삶은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붓고 거뭇한 면을 삶아내 탈탈 털어 말아준다. 비교적 진하고 구수한 육수지만 거기에 섞인 시원한 동치미 맛을 숨길 수 없다. 절묘한 조화를 이루도록 잡아주는 것은 간을 적당히 한 덕택인 듯하다. 평양냉면은 밍밍해 도무지 적응할 수 없다는 이들에게도 대부분 만족을 주는 맛. 목을 타고 넘는 시원한 육수에 달달하고 아삭한 무김치, 그리고 탄성을 살짝 간직한 면발이 충성도 높은 단골 무리를 이끌고 있다. 강원 태백시 보드미길 17. 8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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