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시인 서홍관 "의술도 詩도 다 사랑의 일"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1. 1. 14. 07: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목이 계속 컹컹거린다며 찾아온 마흔두 살 먹은 남자, 두 번째 진료를 왔다. 스트레스가 없는가 하고 넌지시 묻자, 그는 감추고 싶었던 사실을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한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던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치료를 넘어 ‘인간의 사랑’으로 교감한다.

“그러나 병원은 바보입니다. 내가 오늘 환자와 나눈 이야기는 모릅니다.//…우리가 진료실에서 비밀스럽게 나누었던 이야기는 어느 의학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 않은 말입니다. 더구나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비 산정할 때도 반영되지 않는 것이고, 국립암센터 의사 업적평가에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의사의 업적 1’)

최근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선임된 서홍관(63) 시인이 의사의 ‘일’과 시인의 ‘작업’을 농밀하게 조화시킨 네 번째 신작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를 상재했다. 10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 그는 인간의 사랑이라는 ‘바늘’을 사용해 의술이라는 이성의 영역과 시작(詩作)이라는 감성의 영역을 교직했다. 이는 그가 서울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제의대 교수를 거쳐 17년간 재직한 국립암센터에서 최근 원장에 부임한 베테랑 의사인데다가 동시에 1985년 등단 이래 시집을 3권이나 펴낸 시인이었기에 가능했다. 11일 오후 세계일보 사옥에서 서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제2부에서 의료 현장과 의사의 삶을 오롯이 담았다. 특히 ‘의사의 업적’ 연작은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와 소통을 진솔하게 기록한 시편이다. 고혈압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외래를 오는 환자는 한참 신세타령을 늘어놓곤 “아이고, 제가 이런 말을 어디서 하겠어요. 선생님한테나 하지. 이제 이런 말 하고 나니 조금 시원해요”(‘의사의 업적2’)라며 툴툴 털고 일어선다. 심지어 배에 가스가 차서 빵빵하다고 찾아온 서른여덟 살의 여성과는 노후와 출산에서부터 기후변화까지 온갖 이야기를 소재로 소통한다.

“서른여덟 살 노주희 씨는 배에 항상 가스가 차서 빵빵하다고 찾아왔어요. 위내시경 결과는 정상이었고, 간기능에 이상이 있는데 비만 때문에 지방간이 생긴 것 같았지요. 나는 채식 위주로 식사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권했지요./...운동에서 기후변화에서 노후와 자녀출산 문제까지 중요한 화제가 너무 많아 이십분 넘게 이야기 나눴지만, 진찰비 말고는 청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의사의 업적 5’)

시집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등장한다. 학교도 못가고 앙코르와트에서 팔찌 앵벌이를 하는 캄보디아 소녀(‘앙코르와트 소녀’), 학교에 가고 싶어 허드렛일을 감내하는 네팔 소녀(‘네팔 소녀 돌마’),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책 뒤에 적어놓은 초등학교 친구(‘옥수수 식빵’) 등등. 개인들은 저마다 고통을 가진 힘겨운 존재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따스하기 그지없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함께 애정이 없으면 이르지 못할 경지다. 급기야 보이지 않는 존재의 고통에까지 이르고야 만다.

“히말라야의 아침을 맞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돌로 담을 쌓던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어디서 왔소?’/ ‘한국이오.’/ ‘아 그렇다면 우리 아들이 한국에서 돈 벌고 있는데/ 갸가 보낸 돈으로 집을 이렇게 짓고 있다고/ 사진을 보여줄 수 있겠소?’/ ‘아 그러다마다요’// 집을 짓는 여인네와 집터를 잘 찍고/ 아예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더니/ 여동생은 물까지 묻혀서 머리를 다시 빗었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라줄 라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 전화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랑탕 계곡에서 생긴 일’)

귀국 후 라줄 라마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따뜻한 밥 한 끼 사주려 했지만, 전화번호는 결번이었다. 시인은 이후 몇 차례나 더 통화를 해봤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닿지 않는 전화, 라줄 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 2014년쯤이었을 겁니다. 라줄 라마를 만나 랑탕 계곡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와 동생을 만난 얘기도 하고 밥도 사주려고 했는데, 결번이라고 하더군요. 너무 허무했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나중에 합법적인 여건이 됐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인 지위로 남을 수 있다고 하는데, 혹시라도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의 시들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요즘의 시들과는 거리가 멀다. 덧붙이고 빼고 자시고 할 게 없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얘기하는 미덕”(신경림)을 갖췄다. 오죽하면 방민호는 시집 뒤편의 ‘해설’에서 톨스토이의 ‘전염 문학론’을 거론하며 “어떻게 하면 이 시들을 되도록 어렵게 풀이할 수 있느냐” 하는 “해설 초유의 곤란”을 겪었다고 토로했을까.

“저는 모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독자도 기쁨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슬픈 일이 있으면 독자 역시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써야지요. 사람들이 알아먹지 못하는 시는 잘못된 시입니다.”

전북 완주 출신의 그는 서울대 의대 문예부 시절 틈틈이 시를 쓰다가 우연히 시인 신경림의 눈에 띄어 시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의대 본과 3학년이던 1981년, 문예부의 문학의 밤 행사에서 시인을 포함해 각자 자신이 쓴 시를 낭송했다. 행사에 초대를 받은 신경림은 그의 시를 칭찬하며 “집으로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 졸업하고 인사하러 갈 때, 그는 자신이 쓴 시 27편을 인쇄해 가져갔다. 가져온 시를 다 읽은 신경림이 한 마디 툭. “홍관이도 이제 등단하지?”

시인은 신경림의 추천으로 1985년 창작과비평사의 ‘16인 신작시집’에 ‘금주 선언’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등단 당시, 의사의 세계와 시인의 세계가 너무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져 스스로 당황했다고 한다.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은 완전히 상반된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의사는 많은 지식이 필요해 다른 분야에 눈 돌릴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처럼 느껴졌지만, 시는 가끔 무모하거나 비이성적인 것도 용납하는 감정의 세계처럼 느껴졌지요. 그런데, 실제로 의사가 돼 환자를 진료하다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질병을 가진 인간을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좋은 의사가 되는 과정이 바로 휴머니즘을 간직하는 과정인 것이고, 휴머니즘이야말로 좋은 시를 쓰는 근본 아니겠습니까. 의사로 37년을 살다보니, 의사와 시인의 길은 다른 길이 아니란 걸 알게 됐지요. 좋은 의사가 되는 것도, 시를 쓰는 것도 모두 인간의 사랑으로 통일되더군요. 지금은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등단 이후 시집 ‘어여쁜 꽃씨 하나’, ‘지금은 깊은 밤인가’, ‘어머니 알통’, 산문집 ‘이 세상에 의사로 태어나’ 등을 펴냈다. 의료 이야기는 첫 시집부터 꾸준히 담겼고, 세 번째 시집 ‘어머니 알통’엔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시가 여러 편 담겼다. 시간과 함께 그의 시 세계는 조금씩 곰삭아졌다. “시대를 풍자하거나 비판적인 시들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직설적인 표현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삶에 잘 녹아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국내 시단에는 의사 출신 시인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마종기, 서울에서 활동 중인 나해철, 대구의 치과의사 송재학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진료실, 의료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시인으론 그가 꼽힌다. 예컨대, 첫 시집에 결핵성 늑막염으로 죽은 아이를 그린 시 ‘어여쁜 꽃씨 하나’를, 두 번째 시집엔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 이야기인 ‘인창이’ 등을 담은 그였다.

“의사로서 살아왔기에 진료현장은 굉장히 중요한 공간입니다. 이번에는 더 많아졌다고 할 수 있지요. 의사로서 많은 절실한 환자들을 만났는데, 사실 질병이나 고통, 죽음은 인생의 가장 절박한 순간 아니겠습니까. 이 대목이 바로 문학과 의학이 만나는, 또는 만나야 하는 접점이지요. 이런 절실한 현장이 시로 표현되는 건 너무 자연스럽지요.”

의사의 삶은 화려한 외양과 달리, 바쁘고 번다하고 고달프다. 더구나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을 맡아 오랫동안 금연운동을 펼쳐왔다는 점에서 시작 활동은 녹록치 않았을 터다. 시작의 어려움을 물었더니, 그는 “번잡”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의사만으로 번잡한데, 사회적으로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다가, 지금은 국립암센터 원장까지 돼서 너무 번잡하게 삽니다. 시를 제대로 쓰지를 못했죠. 시가 생각이 날 때마다 틈나는 대로 핸드폰에 메모를 해놓았어요. 그동안 메모만 해오고 정리를 못했지요. 그러다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모든 약속이 취소되고 환자들도 무서워 진료를 오지 않으면서 기회가 온 거죠. ‘코로나19는 조심은 하되, 벌벌 떨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외부 못나갈 때 좋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겠다’고 지난해 초 페이스북에 썼는데, 생각해보니 저부터 그래야겠더라고요. 메모만 돼 있던 것을 추려서 정리하니 시 140편 정도가 나왔고, 다시 70편을 가려 뽑은 것이죠.”

앞으로의 계획이나 활동 방향을 묻자, 시인은 ‘솜다리꽃’의 마지막 대목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었다”는 시구를 꺼냈다. 솜다리꽃은 오스트리아에서 ‘에델바이스’라는 나라꽃이고, 설악산에선 기념품으로 팔린다. 하지만 몽골에선 말의 간식거리에 불과했다. 그는 이를 서늘하게 노래했다.

“몽골에 갔다가 솜다리꽃을 보았다./ 들판에 숱하게 깔려 있었다./ 거기서는 나라꽃도 아니고 기념품도 아니었다./ 말들이 짓밟다가 뜯어 먹는 간식거리였다./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었다.”(‘솜다리꽃’)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다’는 의미나 맥락을 조금 설명해달라고 하자, 시인은 “우리도 결국 우주의 찰라 속에서 먼지처럼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아름답고 대단하고 부귀한 것만 생각하는데, 우린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 자체가 지나친 자의식이죠. 아무리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우주의 찰라 속에서 먼지처럼 돌아갈 존재인데, 그런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대한 우주와 장구한 역사에 비교해 먼지처럼 비루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인식에 이르면 그 순간 또다시 새로운 문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깨달음의 뒤에 도저하게 몰려오는 허무를 어떻게 이겨내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시인은 이때 한없이 보잘 것 없고 비루한 먼지 같은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사랑할 줄 아는 존재라는 인식만이 허무를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짧고 보잘 것 없는 우주의 먼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사랑할 줄 아는 먼지라는 사실 역시 중요하고, 삶의 고귀한 부문이죠. 보잘 것 없는 먼지이지만, 허무감을 이겨내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사랑할 줄 아는 먼지라는 것을 자각할 때이죠. 허무를 이기는 고귀함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위의 호랑이가 포효를 멈추지 않던 그날 오후, 그의 눈빛은 점점 빛나갔고 목소리는 더욱 진지해져 갔는데. 허무를 초극한 뒤 삶과 생명의 새로운 의미를 퍼올리고야 말겠다는 시인의 꿈과 의지가, 바야흐로 추위의 옆구리를 은은하게 파고들던 찰라였다.

“오늘도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따라/ 해가 진다.// 지구에 올 때 화진포의 청둥오리나/ 선유도의 산나리꽃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무거운 짐은 없었으련만.// 내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고,/ 다시 돌아갈 희망도 없다.// 그래,/ 지구에 내려서 행복했던 순간도 없진 않았지.//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나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별을 기다리며’)(2021. 1. 13)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 남제현 선임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