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동안 아시아 여배우 단 한차례.. '미나리' 윤여정은 오스카를 손에 쥘 수 있을까
파죽지세다. 연말연초 영화상 발표될 때마다 이름이 오른다. 영화 ‘미나리’(2020)로 미국에서 받은 여우조연상만 지금까지 11개. 추가 수상까지 점쳐진다. 한국에서만 활동해 온 노장 배우 윤여정(73)이 이룬 성과라 더 놀랍다. 관심은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연기상을 거머쥘 수 있느냐다.
①오스카까지는 아직 먼 길
윤여정은 로스앤젤레스(LA)와 보스턴, 샌디에이고, 오클라호마, 노스캐롤라이나 등 주로 미국 지역 영화평론가협회들로부터 상을 받았다. 이들 중 세계 영화산업의 심장인 LA를 근거지로 삼은 LA영화평론가협회(LAFCA)는 전미영화평론가협회, 뉴욕영화평론가협회와 함께 미국 내 주요 평론가 단체로 꼽힌다.
LAFCA상은 권위를 인정 받지만 아카데미상과의 연관성은 적다. LAFCA에서 연기상을 받은 배우 대부분이 오스카를 수상하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LAFCA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중 콜린 퍼스(‘킹스 스피치’)만 2011년 오스카 트로피를 안았다. LAFCA상과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은 이는 올리비아 콜먼(‘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과 케이트 블란쳇(‘블루 재스민’), 제니퍼 로런스 3명뿐이었다. 김혜자(‘마더’)와 윤정희(‘시’)는 LAFCA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지만 오스카 후보에조차 들지 못했다. 남우조연상 수상자와 여우조연상 수상자가 일치한 경우는 각각 세 차례다. 스티븐 연(‘버닝’)과 송강호(‘기생충’)는 LAFCA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나 오스카 후보에 포함되지 않았다.
상을 주최하는 단체 성격에서 비롯된 결과들이다. LAFCA상은 미국 밖 영화와 외국 배우들에게 상을 곧잘 준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보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등에 더 관심을 쏟는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미나리’는 비주류에 속한다. 한국인 가정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뤘다. 윤여정은 이민 가정의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②아시아인에게 유난히 높은 벽
오스카는 백인과 남성 위주 잔치로 악명 높다. 최근 여성 회원과, 백인이 아닌 회원을 늘리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으나 주류는 여전히 백인 남성이다. 연기상은 특히나 백인 중심이다. 지난해까지 시상식이 92회 열리는 동안 흑인은 단 4번 남우주연상을 가져갔다. 시드니 포이티에(1959년 ‘흑과 백’)와 덴젤 워싱턴(2002년 ‘트레이닝 데이’), 제이미 폭스(2005년 ‘레이’), 포레스트 휘태커(2007년 ‘라스트 킹’)가 희귀한 영광을 누렸다. 여우주연상은 단 한 차례(2002년 ‘몬스터 볼’의 핼리 베리) 흑인이 받았다. 흑인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그나마 많은 편이다. 흑인이 8차례 수상했다. 남우조연상은 6번이었다.
아시아인, 특히 아시아 여배우에게 연기상 장벽은 높고도 높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아시아계는 율 브린너(1957년 ‘왕과 나’)와 벤 킹슬리(1983년 ‘간디’) 밖에 없다. 둘 다 아시아인 피가 선대에서 섞였을 뿐 러시아와 영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아시아계는 아예 없다. 1936년 인도ㆍ마오리계인 메를 오베론이 후보에 올랐을 뿐이다. 남우조연상은 캄보디아인 행 응고르가 1985년 ‘킬링 필드’로 유일하게 수상했다. 여우조연상은 1958년 일본계 우메키 미요시(‘사요나라’)의 수상이 유일하다. 아시아계가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건 5차례뿐이다.
③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기세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은 4월 25일 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지난해보다 2달 넘게 미뤄졌다.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는 2월 28일 골든글로브상 시상식과 함께 시작된다. ‘어워드 시즌(Award Seasonㆍ시상식이 몰려 있는 시기)’을 거치며 승자가 가려진다.
가장 주목해야 할 상은 미국배우조합(SAG)상이다. SAG상을 받으면 오스카 연기상은 떼놓은 당상이다. 아카데미상을 주최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15%가 배우다. 오스카 수상자(작)는 회원 투표로 결정된다. 지난 10년간 SAG상 여우조연상 수상자 중 9명이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SAG상 시상식은 3월 15일 열린다.
“실전은 기세야.” 영화 ‘기생충’(2019)의 대사 중 하나다. 지난해 여러 상을 수상하며 오스카 4관왕에 오른 ‘기생충’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윤여정에게도 해당한다. 김효정(수원대 영화영상학부 객원교수) 영화평론가는 “코로나19로 개봉 작품 수가 줄어 여우조연 쪽에서 윤여정을 압도하는 배우가 눈에 띄지 않는다”며 “평론가협회 상 잇단 수상을 AMPAS 회원들이 의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일단 지난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이 가진 부정적인 공식이 깨진 점”도 윤여정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봤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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