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고 하는 장사 그만 하고 싶다"

최우리 2021. 1.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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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인권]④경남 스키장 김홍규 팀장·스키장 레스토랑 김선경 대표
"3개월 벌어 9개월 먹고 산다는 말은 옛말..제설비용 증가"
⑤문경 떠나 정선으로..기후변화로 고향 떠난 농민 김종하
"기존 농사법 달라져야..새로운 변화에 적응 힘들어"

우산장수, 짚신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는 쨍쨍하게 해가 뜬 날이 싫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날도 싫다고 했다. 그래도 그런 날들이 적당해서 우산장수도, 짚신장수도 살아갈 수 있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극한의 폭우, 극한의 가뭄, 극한의 한파가 장기간 몰아친다. 누구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

<한겨레>는 기후변화와 이상기후가 불러온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평생 배우고 익힌 것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어도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은 불안해했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이들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4. 포근해도, 너무 추워도 스키장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는다

대표적 겨울스포츠였던 스키는 예전만큼 인기가 없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는 국내 스키 인구가 2011~12년 정점(686만명)을 찍은 뒤 해마다 10% 이상 줄어 2019~20년 376만명으로 줄었다는 자체 분석을 내놨다. 경기침체, 다른 레저·쇼핑 산업 발달이 스키 인구를 줄였다.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한해 40만~50만명씩 찾아와 버텨왔다. 하지만 포근하거나 지나치게 추운 이상기후,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태백산맥 끝자락, 경남권 유일의 스키장인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 개장일은 지난해 12월24일이었다. 예년엔 11월 말~12월 초 개장이 일반적이었다. 점점 따뜻하고 습해지는 초겨울 날씨가 개장을 미루게 했다. 개장 뒤에는 영하 20도 최강한파가 닥쳤다. 김홍규(54) 에덴밸리 스포츠영업팀장은 “너무 추워도 영업이 안된다. 평년 평일 2천명이 왔는데 오늘(1월5일)은 200명 정도 왔다”고 했다. 스키장 직원들은 코로나19 국내 발생 이후 1년째 월급의 70%만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12일 찾은 스키장은 녹색이었다. 듬성듬성 제설기로 만든 눈덩이가 없었다면 나무 없는 민둥산으로 보일 정도다. 경기 포천 베어스타운에서도 일한 김 팀장은 스키장 근무 경력이 28년이라고 했다. “겨울 3개월 벌면 9개월은 쉬어도 됐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120억~130억원 벌던 이곳의 매출도 유독 따뜻했던 지난해에는 80억원에 그쳤다.

스키장의 자산은 눈이다. 양산 겨울철 평균기온이 영상 4~5도로 강원·경기보다 높지만, 스키장은 해발고도 800m 높이 협곡을 바라보고 있어 찬 바람이 정통으로 분다. 2007년 개장 당시 전문가들로부터 경제성 평가를 받고 스키장을 지었다. 하지만 기후가 변했다. 5천만원짜리 제설기를 돌리려면 영하 3도, 습도 50% 이하가 돼야 하는데 온난화로 겨울 기온이 올랐다. “눈을 못 만들어 영업일수가 짧아졌고 손님들은 많이 떠났죠. 3일에 만들 눈을 5일 동안 만드니 전기세도, 인건비도 올랐어요. 1억5천만원짜리 신형 제설기는 영상 기온에서도 눈을 만든다는데….” 골프장을 겸하는 스키장 직원은 160명에서 95명으로 줄었다. 김 팀장은 “체대 졸업한 학생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스키장에서 일을 많이 시작한다. 이곳이 없어지면 다른 분야로 전직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12일 경상남도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에서 만난 김홍규 스포츠영업팀장. 스키장은 스키 인구가 줄고 겨울 기온이 오르자 눈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루지 썰매장을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비가 오면 운영을 할 수 없다. 양산/최우리 기자

스키장만으로는 장사가 안 되니 골프장·리조트 사업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이 스키장도 2018년부터 눈이 없어도 탈 수 있는 루지 썰매 슬로프와 클라이밍장을 따로 만들었고 골프장도 운영한다. 하지만 지난 여름같이 긴 장마가 이어지거나 비가 온 뒤 안개가 끼면 이곳을 찾는 손님도 없다.

이 스키장이 운영하는 콘도와 골프장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김선경(52)씨도 스키장 영업에 생계가 달렸다. 스키장이 호황일 때는 직원이 35명이나 됐고 새벽까지 영업을 했다. 스키장 손님이 줄어 15명으로 줄어든 직원 월급이 걱정이다. “장사를 접고 싶은데 넘길 사람이 없어요. 하늘 보고 하는 장사는 정말 그만하고 싶어요.”

스키장 근처 도로에는 ‘임대’ 펼침막이 내걸리거나 간판만 남은 스키숍 건물이 많았다. 모성은 한국지역경제연구원장은 “스키장은 지역의 큰 기업이다. 스키장 종사자는 지역 주민인 경우가 많다. 이들의 소득이 없어지면 소비가 줄고,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고 했다. 또 “스키용품판매·대여업 등 관련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파급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2일 경남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에서 업무 중인 김선경 사장. 김씨는 스키장 영업이 어려워지자 덩달아 소득이 줄고 있다. 양산/최우리 기자

#5. 고향 문경 떠나 정선에서 사과 재배하는 3세대 농부

기후변화로 지난 40년 동안 주요 농산물 주산지는 북상했다. 사과의 경우 대구 주변 재배면적은 줄고 강원 정선·영월·양구 등은 늘었다. 포도는 경북 김천에서 충북 영동과 강원 영월로, 제주가 중심인 감귤은 전남 고흥, 경남 통영·진주로 바다를 건넜다.

서울에서 10년간 통신회사를 다닌 김종하(42)씨는 2011년 경북 문경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1970년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가 고향 문경에서 사과나무를 가꿨다. 김씨는 “온라인을 통한 직거래에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사과 재배 농민이 많아 기술지원이 활발한 것도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정작 김씨는 문경이 아닌 그보다 북쪽인 강원도 정선에서 과수원을 시작했다. 문경을 떠날 것을 권유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사과는 밤 기온이 떨어져 일교차가 커야 잘 익는다. 이상기후로 기온이 올랐다. 문경에선 “씹었을 때 아삭한 맛”을 내기 점점 어려워졌다. 김씨는 “문경에선 태풍도 겹쳐 낙과도 많이 발생했다. 부모님도 농사를 접고 정선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낙담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정선 고랭지 배추 재배는 줄고 있지만 사과 재배가 늘고 있듯이 살아갈 방법은 있다고 믿는다.

김경훈 전 문경시농업기술센터 소장은 기후변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농업의 새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그 길이 쉽지 않아 낙오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김종하씨처럼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대다수 고령의 농민들이 기존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양산/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강원도 정선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파파스팜 대표 김종하(42)씨와 그의 딸. 김씨는 고향 경상북도 문경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은퇴한 부모님과 정선에서 함께 살 계획이다. 김종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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