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위안부 합의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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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출범 직후 위안부합의 이곳저곳을 조목조목 따져 "합의 상 중대한 흠결이 확인됐다"고 결론내고 사실상 백지화했던 문재인 정부 아니던가.
그랬던 이들이 지난 8일 돌연 "2015년 12월 한일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논평(외교부)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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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중대한 흠결이 발견된 합의이므로 사문화(死文化) 하십시오.
2.합의 이행 의지가 없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화해치유재단도 해산시키십시오.
3. "정부 간 약속을 지키라"고 일본이 압박할 경우 "피해자 중심 접근이 결여된 합의"라는 점을 적극 부각하십시오.
※주의사항. 사법부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 등으로 한일 간 긴장감이 급격히 고조될 수 있음. 이 경우 즉시 "위안부 합의가 한일 간 공식 합의"라고 말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농담이 아니다. 출범 직후 위안부합의 이곳저곳을 조목조목 따져 "합의 상 중대한 흠결이 확인됐다"고 결론내고 사실상 백지화했던 문재인 정부 아니던가. 그랬던 이들이 지난 8일 돌연 "2015년 12월 한일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논평(외교부)을 냈다. 어쩔 땐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백안시 했던 합의를 이 정부 스스로 부활시킨 것이다.
일본 반발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편이었을 테다. 우리 법원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 12명에게 일본이 "1억 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현한 결정이었지만, 강제동원 문제로 가뜩이나 폭발 직전인 한일관계엔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일본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즉각 항의했고, 남관표 주일대사까지 공개적으로 초치해 "국제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따졌다. 이대로 가다간 도쿄올림픽을 통한 남북 간 훈풍 시나리오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올림픽은커녕 당장 한미일 3각 협력체제 복원을 서두를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의 외교 마찰도 불보듯 뻔하다.
일본의 노기를 달래고 누그러뜨릴 무언가가 필요했고, 정부는 고심 끝에 2015년 12월의 위안부 합의를 끌어왔다. "위안부 합의에서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 청구권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게 법원 판결이었다. 반면 정부 논평은 "위안부 합의가 한일 간 공식 합의잖아. 사법부 판단이 꼭 정부 판단은 아니야"라고 일본 귓가에 슬쩍 속삭인 셈이다. 4년 내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 배제된 잘못된 합의라고 목소리를 높여 오다 어느덧 한일관계가 아쉬워지자 관계 파탄을 예방할 방패막이로 가져다 쓴 셈이다.
위안부 운동 단체인 정의기억연대도 결국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역사적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 반응은 실망스러움을 넘어 분노스럽다"고 했다.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위안부합의가 한일 간 공식합의라고 밝힌 근거도 내놓으라" 요구했다.
꼬일대로 꼬였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결여됐다"며 합의를 백지화했는데, 이제는 그 피해자 단체가 정부 태도를 꾸짖고 있다. "위안부 합의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해왔는데, 어쨌든 "한일 간 공식 합의"란다. 공식 합의라고 인정했으니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도 인정하는 것인지 혼란 그 자체다.
문제의 논평은 지금도 외교부 홈페이지에 걸려 있다. 상황이 급박하다면 대한민국 정도되는 나라도 얼마든지 한 입으로 두 말할 수 있음을 보여준 진귀한 논평이니 시간 나면 찾아보시길.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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