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재하다 서로의 글에 반해 "이젠 부부 소설가입니다"

한소범 2021. 1. 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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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주말이면 한 책상에 마주앉아 각자의 책을 읽었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한 여자는 마담 보바리 이야기를, 러시아문학을 공부한 남자는 안나 카레니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줬다.

서로의 작업실에서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를 들으면 "나도 소설을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게으름 피울 수 없게 된다는 이들에게, 아내와 남편은 가장 든든한 동료이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독자,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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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등단한 강보라·박세회 작가 인터뷰
2019 중앙신인문학상과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박세회(왼쪽) 강보라 부부를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자택에서 만났다. 강 작가는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박 작가는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남자와 여자는 주말이면 한 책상에 마주앉아 각자의 책을 읽었다. 현관문을 열면 방 전체가 훤히 들여다보이던 여자의 작은 반지하 방에서였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한 여자는 마담 보바리 이야기를, 러시아문학을 공부한 남자는 안나 카레니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줬다.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함께 문학세계를 넓혀가는 것이 좋았다.

몇 년 뒤 남자는 소설가가 됐고, 그 이듬해 여자도 소설가가 됐다.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자인 강보라(40) 작가(당선작 '티니안에서'')와 2019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자인 박세회(41) 작가 이야기다. 지난 8일 서울 원서동 자택에서 만난 부부는 “말하자면 둘만의 문학대학원을 다녔던 셈인데,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함께 문학을 공부하는 게 좋았던 그 시간에 대한 보답 같아 기뻤다”고 등단 소감을 말했다.

강 작가는 등단 전 공연잡지, 영화잡지, 패션잡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8년 12월 마지막으로 다니던 잡지사가 폐간되며 일을 쉬게 됐다. 잡지 기자로만 13년을 일했으니 마흔 살이 되기 전 한번쯤 다른 걸 해보고 싶었고,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허핑턴포스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박 작가가 그런 아내를 보고 소설을 따라 쓰기 시작했다.

강보라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남편을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유일한 독자이자 편집자"라고 썼다. 실은 남편의 수상소감에서 똑같이 따온 문구다. 홍인기 기자

“제가 소설 쓰는 걸 보더니 남편이 ‘나도 해볼래’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1년을 쓰고 같이 공모전에 냈는데 남편이 당선되고 정작 저는 떨어졌죠.”(보라)

박 작가가 데뷔한 중앙신인문학상은 그 해를 마지막으로 상이 폐지됐다. 이듬해 같은 공모전에 내려던 강 작가는 좀 더 묵혔다 신춘문예에 투고했고 역시 당선됐다. 남들은 평생을 준비하고 몇 번이나 떨어진다는 문학 공모전에 첫 도전만으로, 그것도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당선됐으니 여러모로 문학의 기운이 이 가정에 깃든 셈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당연히 문학이 둘을 연결시켰을 것 같지만, 실은 '술'이 다리를 놨다. 2012년 각자 잡지의 술 담당 기자로 일하며 위스키브랜드 행사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당시 세회가 전국 술도가를 찾아 다니며 전통주를 마시는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었거든요. 글을 너무 재미있게 잘 쓰길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죠.”(보라) “저는 2~3년차, 보라는 7~8년차였는데 그 당시 제가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보라였어요.”(세회)

술을 취재하다 서로의 글에 반했으니, 데이트는 자연스레 집에서 술 마시며 책 보고 얘기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아 2014년 결혼까지 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에는 여기에 각자 쓴 소설 이야기가 더해졌다.

“소설을 쓰긴 했는데, 보여줄 사람이 남편밖에 없었어요. 이 유일한 독자를 어떻게 해서든 만족시키고 싶어 더 열심히 쓰게 됐죠.”(보라)

“보라가 쓴 첫 소설을 읽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 사람의 평소 습관, 생각이 이렇게 소설로 표현되는구나 싶었죠. 물론 소설이 너무 좋기도 했고요. 그걸 보고 있자니 저도 자연히 소설을 써보고 싶어지더라고요.”(세회)

박세회 작가는 "아내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작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부부 소설가로서의 목표도 "내조를 잘 하는 것"이라 했다. 홍인기 기자

낭만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글로 밥벌이를 해온 둘에게 소설 습작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일’이었다. “이 시간에 다른 원고를 썼으면 돈이 얼마야”라는 생각이 자연히 뒤따랐다. 게다가 회사에 다니며 소설을 쓰던 박 작가와 달리 강 작가는 고정수입이 없었다. 남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일을 찾으려던 강 작가를 “네가 끝까지 써봤으면 좋겠다”며 말린 것은 박 작가였다. 박 작가는 “소설이 너무 좋아서 당연히 잘 될 줄 알았다”며 웃었다.

아무리 한 몸 같을지라도 ‘부부 작가’로 엮이는 게 마뜩찮을 수 있다. 뭘 쓰든 매번 배우자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쓸 것 같다”며 반겼다. 부부가 함께 쓰는 소설도 기획 중이다. 물론 자신만의 작가적 야심도 있다. 강 작가는 ‘인기없는 고충’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계속 탐구해갈 생각이고, 박 작가는 한 동네를 배경으로 한 연작 소설을 구상 중이다.

서로의 작업실에서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를 들으면 “나도 소설을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게으름 피울 수 없게 된다는 이들에게, 아내와 남편은 가장 든든한 동료이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독자,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다. 이 모든 게 한 사람일 수 있다니, 이제 막 시작한 소설가들에게 이만한 행운도 없을 것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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