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牧 월급털어 함께 농사짓고, 배춧국 먹던 당신”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1. 1. 1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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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百 맞은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 후배 목사 등 15人 헌정 도서 펴내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설교하는 모습. 지난해 김 목사의 90세를 맞아 후배, 제자 목회자와 가족 등 15명이 각자의 눈으로 본 김 목사의 삶과 신앙을 적은 책 ‘목사 김선도’가 발간됐다. /광림교회

15개의 퍼즐 조각으로 맞춰본 망백(望百) 목회자의 삶과 신앙.

최근 발간된 ‘목사 김선도’(전 2권·서우북스)는 그런 책이다. 서울 광림교회 원로 김선도(91) 목사를 도와 함께 사역했던 제자들과 외국 신학자, 영국 상원의원 그리고 아내와 두 아들까지 자신의 시선으로 본 김 목사에 대해 적었다. 1권 ‘목회가 참 신났습니다’가 431쪽, 2권 ‘목회의 지도를 그리다’가 495쪽에 이른다. 무엇보다 지난해 선배, 스승의 만 90세를 맞아 후학들이 이런 헌정 도서를 썼다는 점은 개신교계에서 드문 일이다. 집필 참가자는 권병훈(상계광림교회) 김영헌(은평감리교회) 김정석(광림교회) 김홍기(전 감신대 총장) 박동찬(일산광림교회) 서창원(전 감신대 교수) 유기성(선한목자교회) 최이우(종교교회) 황웅식(신애교회) 목사와 레슬리 그리피스(영국 상원의원) 리처드 포스터(미국 아주사퍼시픽대 교수) 애덤 해밀턴(미국 부활의 교회) 등 목사·신학자(가나다순)와 가족들이다.

광림교회 김선도 원로목사

김선도 목사는 ‘군대를 네 번 간 사람’이다. 격랑의 현대사 때문. 평북 선천 출신으로 광복 후 신의주의전(醫專)과 해주의전에서 공부한 김 목사는 6·25 때 인민군 군의관으로 끌려갔다. 인천상륙작전 후 퇴각하는 인민군 대열에서 탈출해 국군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전역했다. 이후 전쟁 중에 다시 유엔 종군 경찰 병원 소속 의사로 일했고, 목사가 된 후엔 공군 군목(軍牧)으로 입대해 9년간 활동했다. 1971년 제대 후 서울 중구 쌍림동에 있던 광림교회 5대 목사로 부임해 이 교회를 한국의 대표적 감리교회로 성장시켰다. 1996~2000년엔 세계감리교협의회(WMC) 회장을 지냈다.

광림교회 부목사 출신 목회자와 외국 신학자 그리고 가족 등 15명이 김선도 목사에 대해 쓴 책 '목사 김선도'(전2권). /광림교회

책에는 ‘이력서 업적’이 아니라 디테일이 담겨있다. 김영헌 목사는 ‘가난한 농촌에 하늘과 새 땅을 보여준 젊은 군목’으로 기억한다. 군목 시절 부대 옆의 허물어져가는 교회를 보곤 박봉을 털어 새 건물을 짓고 촌로들 앉혀놓고 ‘비전’을 외치고, 농사법을 가르치고, 영화를 보여주던 김선도 중위를 기억하는 것. 마을 교회를 신축하던 1년 동안 김 목사 가족은 칼국수로 끼니를 때워 온가족이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한다. 광림교회 부목사 생활을 한 유기성 목사는 ‘철저한 청교도의 영성’ 등 김 목사의 8가지 영성을 본받고 있다. 5년 4개월간 부목사를 지낸 최이우 종교교회 목사는 6가지 배울 점 중 첫째로 ‘의자에 앉을 때 다리를 포개 앉지 않는다’를 꼽는다. 바로 이 앉는 자세에서 김 목사가 강조하는 ‘태도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말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최이우 목사의 회고 중엔 교회 부흥이 ‘민방위 교육’ 덕분이라는 뜻밖의 얘기도 나온다. 강남 신사동에 교회를 건축한 후 강남구청장으로부터 민방위 교육 장소로 교회 시설을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다. 일반 교회라면 꺼렸을 이 요청을 김 목사는 대환영했다. “나를 민방위 교육 강사로 써달라”면서. 1981년 시작된 민방위 교육에는 3000명 넘는 젊은이가 참석했고, 김 목사는 매번 “여러분 안에는 아직 쓰지 않고 남아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살아있습니다. 실패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태도”라고 강조했다. 교육받은 젊은이 중 800명이 가족을 데리고 교회에 나왔고, 그해 1600명의 새 신자가 등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2019년말 '목사 김선도' 출간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인사들. 앞줄 오른쪽은 김선도 목사 부부. 앞줄 왼쪽부터 유기성 최이우 목사. 뒷줄 왼쪽부터 이상완 황웅식 권병훈목사와 김 목사의 딸 김정신권사. /광림교회

가족의 글은 목회가 목회자만의 노력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내 박관순 여사는 서울대 간호학과 출신의 재원. 가난한 목사의 아내가 된 그는 시장 바닥에서 버려진 배춧잎을 주워 국을 끓이면서도 “목회가 참 좋았다”고 했다. 장남 김정석 목사는 “내가 많이 엄했지?”라고 물은 아버지를 기억한다. 반면 차남인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스케이트와 낚시를 가르쳐준 아버지’로 기억한다. 다만 김선도 목사가 광림교회에 부임한 이후로는 ‘목사 아들로 산다는 것’의 괴로움(?)도 토로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의 대화. “너희 아버지 목사시냐?” “예” “그런데 넌 왜 그러냐? 하하하.” 그때부터 엇나갔다는 김 박사는 “난 아버지의 그림자와 평생 투쟁했다”고 적었다.

이 책은 또한 한 목회자를 통해 ’20세기 한국 교회 성장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이우 목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목사 김선도’ 발간은 당초 작년 성탄절 직전 출판기념 행사를 가지려 했으나 코로나 확산에 따라 미뤄졌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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