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65] 멘도사 국도의 푸드 트럭

박진배 교수 2021. 1. 1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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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멘도사(Mendoza) 지역, 40번 국도의 푸드 트럭.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와인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멘도사(Mendoza) 지역. 시내에서 와인 생산 지역으로 향하는 40번 국도 풍경은 다소 지루하다. 이 도로의 중간 지점쯤, 상행선과 하행선 사이의 다소 넉넉한 공터에 낡은 푸드 트럭이 한 대 서있다. 하몬(스페인 햄) 샌드위치를 판다. 젊은 셰프는 손님이 말을 시켜주면 언제나 맑게 웃고, 기분이 좋으면 와인도 한 잔씩 무료로 건넨다<사진>. 휴게소에서 파는 간식들이 마땅치 않아 운전자들은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 당연히 수입도 꽤 좋다. 국도 변에 푸드 트럭을 차리고 장사를 하는 데는 특별한 허가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독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누가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로 성공을 했다면 근처에 유사 업종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길 법하다. 그러면서 원조 경쟁이 붙고, ‘무슨 거리’가 되고 하는 등의 그림이 쉽게 상상된다. 그런데 몇 년째 이 국도에 다른 어느 푸드 트럭도 보이지 않는다. “장사가 잘되는데 왜 경쟁자가 없느냐?”고 물어봤다. 고개를 저으며 “아무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소 충격적인 답이다.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의 생각과 정서를 잘 대변하는 듯하다. 일은 하기 싫고, 그저 정부가 주는 돈으로 생활하며 세월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진 지 이미 오래된 것이다.

와인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멘도사(Mendoza) 지역, 40번 국도의 푸드 트럭.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아르헨티나는 넓은 국토, 가스⋅석유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춘 나라다. 한참 잘나갈 때는 남미의 유럽이라 불리며 주변국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하지만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의 전환이 늦었고, 연달아 3차⋅4차 산업의 준비도 뒤처지며 경제적 쇠퇴가 다가왔다. 그와 더불어 1940년대 노동자 권익 보호, 사회 정의 등을 내세운 페론주의 정권 이후, 국민을 상대로 ‘더러운 전쟁’을 했던 군부독재도 겪었다. 이런 격변 속에 국가는 정치적·사회적으로 타락했고 여러 차례 국가 부도를 겪었다. 하지만 지금도 선거 때면 후보자들은 페로니스트임을 자처한다. 그러면서 과도한 복지와 포퓰리즘을 표방한다. 그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아르헨티나 경제의 몰락이다. 잘살고 싶지만 일하기는 싫고 그저 놀고 싶다? 게으름이 당당한 이곳에 미래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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