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미래] 작가는 가도 캐릭터는 남는다

김태권 만화가 2021. 1. 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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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고도 하고 <지와 사랑>이라고도 하는 헤세의 소설을 읽으며 궁금했다. 골드문트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제 이름 석 자(?) 남기는 일에 집착할 줄 알았는데, 사람은 잊혀도 자기가 만든 조각만 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는 신기했다. 골드문트는 노느라 바빠 그 작품이나마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김태권 만화가

세상 물정 모르던 소싯적 나의 감상이다. 죽은 후 남는 작품이라도 있으니 골드문트가 부럽다. 작가가 살아 있는 동안 작품이 놓여 있던 성당이 문을 닫지 않고 작품들이 실종되지 않는 것만도 부럽다. 오늘날 작가들은 자기 책이 절판되고 자기 작품이 실린 플랫폼이 서비스를 종료하는 상황을 자주 겪으니 말이다. 골드문트는 작가, 작품이 놓인 성당은 플랫폼이다.

골드문트는 자신의 방랑벽과 싸우면 그만이었다. 오늘날의 작가는 겨뤄야 할 상대가 많다. 우선 자기 작품을 실어주는 플랫폼의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플랫폼과 팀을 이뤄 다른 플랫폼에 맞서는 셈이다. 그렇다고 플랫폼이 하자는 대로 마냥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가도 살아야 한다. 브랜드의 주도권을 놓고 플랫폼과 경쟁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나는 최근 두어 번 칼럼으로 다루었다. 그러면서 작품 속 캐릭터에 힘을 쏟는 것이 좋겠다고 썼다. 작가 대신 캐릭터 이름을 기억시키는 쪽이 낫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질문. 페요와 슐츠와 매컬리의 작품을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스머프와 스누피와 쾌걸 조로를 독자님은 좋아하는가? 답이 금방 나올 것이다. 똑같은 질문인데도 말이다. 작가의 이름 대 캐릭터 이름. 19세기 이래 유명 작가와 유명 캐릭터가 영어로 된 출판물에 몇 번씩 언급되었는지 찾아보았다. 구글 엔그램뷰어를 통해서다. 결과는 흥미롭다. 셜록 홈스가 코난 도일보다 훨씬 유명하다. 미스 마플과 에르퀼 푸아로의 명성을 합치면 애거사 크리스티를 살짝 넘어선다. 물론 카프카와 도스토옙스키와 러브크래프트처럼 작가가 더 유명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분들의 작품을 대중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작가보다 캐릭터가 주목받는 추세다. 흥미로운 예가 있다. 안나 카레니나 대 톨스토이. 옛날에는 톨스토이가 더 유명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부터는 안나 카레니나가 더 많이 언급된다. 러시아 사람 톨스토이의 이름은 영문 알파벳으로 여러 가지로 옮길 수 있는데, 그 각각의 경우를 합해도 그러하다. 차이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이 시대에는 작가 대신 캐릭터가 남는다. 작가는 죽어도 영화는 해마다 나오는 도라에몽 시리즈가 좋은 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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