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의 아이러니] 천국의 이웃사촌

조광희 변호사 입력 2021. 1.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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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년 전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첫 부분을 읽다가 모골이 송연해졌다. 프랑스의 대역죄인 다미앙에게 가해진 형벌의 묘사가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살점을 떼어내고, 유황불로 태우며, 몸을 조각낸다. 인간의 신체적 약점을 이용해 고통을 극한까지 미분하는 형벌을 준 것이다. 책의 집필 의도와 달리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것은 저런 운명에는 놓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은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의 아들인 홍천귀복의 최후다. 열다섯 살에 불과한 이 소년도 다미앙처럼 고통을 극대화시킨 형벌을 받았다.

조광희 변호사

신체적 고통이란 아이러니하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이 진화 과정에서 신체적 고통을 발명하지 못했다면 멸종했을 것이다. 더 심한 신체적 고통을 발명한 종이 상처와 죽음을 더 잘 회피함으로써 결국 진화의 승자가 되었다. 그러한 고통이 동시에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 된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총칼로 권력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문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치적이 있었다고 한들 이들의 통치를 용인하는 것은 결과론이거나 개소리이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이 주요 7개국(G7) 중 이탈리아를 추월한 것으로 추정됐다. 최초로 G7 국가를 넘어선 것이다. 양적인 번영을 냉소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질적인 변화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날이 심각해지는 양극화는 이런 성과를 무색하게 한다.

나라의 번영과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피라미드의 위쪽에 사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천국에 들어갔다. 길어진 수명, 질병의 퇴치, 정보통신이 선물한 편리함, 그리고 한없이 풍요로운 자원은 옛사람이 상상한 천국의 풍경을 이미 넘어섰다. 당신이 할렘을 기대하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피라미드의 아래쪽에는 여전히 지옥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일을 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기계에 끼여 삶을 마감한다. 해결할 수 없는 생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사회의 방치 속에 묵시론적인 범죄와 재해에 노출되어 있다.

그 와중에 ‘타인의 고통이 나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한계상황을 더 비참하게 만들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출소한 범죄자의 집 근처에 나타난 무례한 인간들, 학대로 죽은 아이를 빙자해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 생색용 법안을 제출하는 정치인들. 양극화가 심화되는 대한민국이지만, 적어도 고통의 양극화만은 해결해야 한다. 같은 하늘을 이고서 누구는 천국에 살고, 누구는 지옥에 살면 안 된다. 적어도 그들을 연옥에는 머물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사용할 자원이 있고,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능력도 있다.

그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리과정과 결과는 실망스럽다. 어떤 정치적인 선택과 입법은 불가피하게 구성원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고, 죽음과 삶을 나눈다. 이 사회의 부담능력과 이해관계자에게 미칠 영향을 세심히 살피자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거대한 사회를 온정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벌이 능사가 아닌 것도 맞다. 그러나 약자의 극단적 불행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애타게 연구했는가. 검찰개혁과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일사불란했던 모습은 무엇인가. 타인의 목숨과 고통보다 자신들의 안위와 높은 지지율이 절박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힘센 사람들이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준 선택들은 그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거래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는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 점에서 대다수 정치인들은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작가 김훈보다도 오른편에 서고 말았다.

개인의 절대적인 고통을 사회적으로 소멸시키려는 노력은 고귀한 연대의식의 바로미터이고,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없는 의제다. 정치는 개인적 고통의 사회적 적분을 다루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힘없는 타인의 고통에 무정하다는 비난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심증이 점점 굳어진다. 당신들은 매일같이 서로 싸우는 척하지만 사실 천국의 이웃사촌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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