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유모차 ‘타는’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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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나오셨어요?” ”응, 힘에 부친께 여그 앞이나 왔다 갔다 하고 있네.”
석양이 질 무렵 마을 어귀에는 몇몇 할머니들이 돌에 앉아 도란도란 말씀 나누는 걸 볼 수 있다. 보통은 저녁 바람 맞으며 해가 산을 넘어가는 끝자락에서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이 두 군데 있는데 산 끝자락인 초입은 강과 맞닿아 있어서 느티나무가 아름드리 우거진 정자에서는 산과 강이 풀어놓은 바람을 몸 안에 담을 수 있다.
다른 한 곳은 마을 허리로 난 길이다. 산을 조금 오르면 세 군데로 갈리는 길이 난다. 위로 쭉 뻗은 길 따라 산마을로 들어가던지 양옆으로 난 길 따라 산 속에 움푹 안기든지 한다.
그 갈림길을 서성이며 산책하는 할머니들을 종종 만난다. 거기는 언덕이라 서봉들판이 훤히 내다보인다.
할머니들은 풀벌레 울음이 한 뼘씩 차올라 무릎까지 적신 것도 아랑곳 않고 날마다 무에 새로운 이야깃거리라도 있는 양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한 할머니가 일어서면 주섬주섬 다른 할머니들도 일어선다. 어떤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어떤 할머니는 유모차를 짚는다. 허리가 굽거나 몸이 막대기같이 뻣뻣해져서 맘대로 걷기 힘든데 유모차 덕을 본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마을에 유행처럼 유모차가 늘었다. 어디 어린 아기가 있나 싶었다. 젊은 사람은 죄다 빠져나가고 점점 나이 들어가는 마을에서 갑자기 유모차가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을 보았다.
코로나가 없던 때만 해도 심심하면 회관에 모이던 할머니들은 자가용처럼 유모차를 끌고 와 담벼락 곁에 줄줄이 세워두곤 했다. 어느 땐 다섯 대 정도가 일렬로 선 모습이 사뭇 새롭기도 하였다.
“손주들만 타는 것인 줄 알았는디 이것이 지팡이보다 효자여. 몸을 이라고 기대면 쫌이라도 걸을 수 있당께.”
문득 유모차가 연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어는 넓은 바다로 나가 살다가 산란을 위해 회귀를 한다.
노년의 삶은 무엇을 향해 회귀하고 있을까? 할머니들은 유모차에 몸을 기대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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