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작은 일은 작게 다뤄야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2021. 1.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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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남명 조식은 이름난 학자였다. 귀정 이정도 학행이 뛰어난 선비여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아꼈다. 그들은 진주에 사는 진사 하종악과도 밀접한 사이였다. 조식의 여조카는 하 진사의 아내였고, 이정의 첩은 하 진사의 여동생이었다. 그런데 하 진사의 아내인 조씨가 일찍 죽어, 그는 함안 이씨와 재혼하였다. 일설에는 이씨가 이정의 첩과 인척이라고 하였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얼마 후 하 진사 역시 사망해 이씨는 과부가 되었다. 어찌 된 셈인지 그 행실이 문란하다는 소문이 들렸다. 때마침 조식의 친구인 이희안의 후처도 남자관계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었다.

경상도 관찰사 박계현이 이정을 만났을 때, 이정은 이희안 집안의 흉한 소문을 전했다. 감사는 깜짝 놀라서 김해 부사 양희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부사가 사위 정인홍에게 그 일을 맡기자, 정인홍은 스승 조식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조식이 분노했다. 이정이 하필 이희안의 후처를 문제로 삼은 데는 저의가 있다고 본 것이었다. 스승은 하 진사 집안의 나쁜 소문을 제자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조식의 제자들이 모두 일어나 함안 이씨의 실행을 성토하는 통문을 짓고, 이씨의 집까지 허물어버렸다. 그와 관계가 있다는 남성도 고향에서 축출하였다. 그들은 또 이정이 함안 이씨에게서 뇌물을 받고 허물을 은폐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조식은 관찰사를 움직여 함안 이씨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게 하였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아 수사를 맡았던 관리가 파면되었다. 대사헌 박응남은 상소를 올려 조식이 한양에 사람을 보내 조정 관리를 위협한 일, 그리고 그 제자들이 이씨 집을 찾아가 불을 지르고 때려 부순 것을 문제 삼았다. 훗날 실학자 성호 이익도 조식을 비판하였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소란을 일으켰다는 취지였다. 그때 만일 고봉 기대승 같은 인사들이 조식을 옹호하지 않았더라면 곤욕을 치렀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이익, 성호사설, 제7권).

사건 당시의 실록을 확인해 보았다. 선조 2년(1569) 4월29일, 기대승은 간통 사건은 본래 진상을 알기가 어렵다며 되도록 관련자를 너그럽게 용서하자고 주장하였다(기대승, 논사록, 상편 참조). 약 한 달 뒤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재론하였다. 여러 신하가 유생이 남의 집을 훼손한 것을 비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조식이 무슨 사심이 있어서 이러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변명하였다.

불행히도 사건의 후유증은 길게 이어졌다. 이정의 집안은 손자인 진사 이곤변의 대까지도 남명의 제자들로부터 심한 모욕과 공격을 당했다(허목, 기언 별집 제6권). 이곤변은 억울함을 참지 못해 조부 이정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졸변(拙辨)’을 지어 세상에 알렸다. 그러자 조식의 손자 조준명은 그 글을 반박하며 ‘반변(反辨)’으로 응수하였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영남의 풍습이 일변하였다. 선비들이 몰려가서 타인의 집을 때려 부수고, 미워하는 인사를 고을에서 몰아내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선조수정실록, 선조 2년 5월1일). 이 사건이 일어나자 이정은 친구인 퇴계 이황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딱한 처지를 설명하였다. 이황이 답신하기를, ‘친구끼리 사소한 일을 가지고 이렇게 외면하고 화해하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였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이황의 편지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자 정인홍은 이황을 심하게 비난하였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실록은, “영남의 선비들이 당파를 나누게 된 화근이 이 사건에서 시작되었다”라고 기록하였다(선조수정실록, 선조 2년 5월1일).

무서운 일이다. 작은 일도 누군가 정치적으로 악용하면 큰일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런 폐습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상장 하나를 가지고도 온 나라를 뒤집어놓을 수가 있다. 근본과 말단을 구별하기가 정말 어려워 그런 것일까.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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