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전 조선일보 혁신 기념한 그림, 제자리 찾았네요”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1. 1.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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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화가 이도영 작품 本紙에 기증한 저술가 석한남씨
“10년 전 인사동서 구한 이 그림…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 게 맞죠”
석한남씨가 2020년 12월 18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관재 이도영 선생의 일제시대 조선일보 낙성 축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독립운동가 신석우(1894~1953)는 1924년 9월 13일 조선일보 판권을 인수한 뒤 ‘조선 민중의 신문’을 내걸고 혁신에 나섰다. 갓 서른인 신석우는 민족의 스승으로 존경받던 월남 이상재를 사장으로, 민세 안재홍을 주필로 영입했다. 그 자신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 의원과 교통총장을 지낸 쟁쟁한 이력이 있었지만 부사장으로 한 발짝 내려앉았다. 신석우가 이끈 조선일보 혁신팀은 일제시대 최대 민족 협동 전선인 신간회를 이끌고 문자 보급 운동을 주도하면서 민족지의 전성기를 열었다.

관재 이도영의 1926년 조선일보 혁신 2주년 기념 축화. ‘신축(新築) 조선일보 기(紀), 병인(1926년)9월13일 낙성(落成)’이라고 썼다. /김연정 객원기자
1920년대 최고 화가로 꼽혔던 관재 이도영. 화가 등용문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 초대 심사위원을 맡은 것을 비롯, 연속 4차례 선전 심사를 맡았다.
제5대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신석우.
1924년 조선일보 주필로 들어온 민세 안재홍.
1924년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뒤 사장으로 영입한 월남 이상재.

신석우의 조선일보 혁신 2주년을 기념해 당대 최고 화가로 꼽히던 관재(貫齋) 이도영(李道榮·1884~1933)이 그린 축화(祝畫)가 공개됐다. 한지(가로 40㎝, 세로 90㎝)에 먹으로 그린 대형 종으로 아랫부분에 ‘신축(新築) 조선일보 기(紀), 병인(1926년)9월13일 낙성(落成)’이라고 썼다. 안재홍 당시 주필은 1926년 9월 13일 자 조선일보 사설에 ‘오인(吾人)은 9월13일로써 2종의 기념을 축복하게 되었다’면서 ‘혁신 2주년’과 견지동 사옥 낙성을 들었다. 조선일보는 그해 7월 서울 종로구 견지동 111번지에 1920년 창간 이후 처음으로 번듯한 사옥을 지었다. 2층짜리 벽돌식 건물이었다. 관재는 혁신에 나선 조선일보가 조선 민중에게 경종을 울리는 공기(公器)가 되라는 뜻을 담아 축화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관재 이도영은 구한말 한국화 대가 안중식과 조석진의 제자이자 청전 이상범, 이당 김은호의 선배 화가다. 구한말 애국계몽지 ‘대한민보'에 만평을 그린 신문 시사 만화 개척자로 교과서와 소설, 잡지의 표지화·삽화도 그린 계몽적 지식인이었다. 1922년 화가 등용문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선전·鮮展)’ 초대 심사위원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4년 연속 심사를 맡았다. 1920년대 조선·동아일보가 새해를 맞을 때마다 그의 그림을 실었을 만큼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다.

관재 이도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관재는 스승 안중식의 화풍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근대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 화가였다”면서도 “근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평가절하됐다”고 했다. 이동국 서울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는 “신문과 잡지, 책 표지와 삽화를 통해 계몽에 앞장선 관재의 역할이 저평가됐다”고 했다.

관재 그림을 공개한 고문헌 연구자 겸 소장가 석한남(63)씨는 지난 12일 이 그림을 본지에 기증했다. 석씨는 “10여년 전 인사동에서 그림을 구했지만, 신석우와 안재홍, 이상재 같은 선각자들이 민족지를 일으켜 세우던 시기와 관련된 줄은 몰랐다”면서 “조선일보와 관련 있는 작품인 만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석씨는 2018년 고문헌 168점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탁했고, ‘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 ‘명문가의 문장’ 같은 책을 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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