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 정인아, 진짜 미안해
[경향신문]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인이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학대를 당한 끝에 처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몸서리를 치고 있던 순간 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OO이에요. 전화기 안에서 울려오는 밝고 활기찬 소년의 음성은 가슴속에서 천둥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그 아이는 몇 년 전 부모의 체벌로 심한 상처를 입고, 동생과 함께 가정에서 분리가 되었던 아이다. 자녀들을 낳은 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던 부모는 아이들을 양육시설에 맡겼다 학령기가 되자 다시 데려와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부모는 스스로도 제대로 된 양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상처투성이였고, 그런 과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언제부터 깔려 있었는지 모를 더러운 이부자리 밑에서, 방구석에 널브러진 옷더미나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 속으로 바퀴벌레들이 거침없이 오가는 집에서 아이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숟가락을 내리찍어 머리가 찢어지고, 날아오는 몽둥이를 피하려다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학대 신고를 했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악착같이 매달렸다. 그래도 우리 엄마고, 우리 아빠라면서 아이들은 자기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며 부모들 곁을, 그리고 자기 집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3층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기어서 오르내릴 만큼 처참하게 매를 맞은 날, 부모를 신고하겠다는 말에 아이들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면 또 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아이들은 비로소 집을 떠날 용기를 내었다.
그렇게 가정에서 분리를 하고 얼마간은 아이들이 잘 있는지를 보러 다녔다. 하지만 시설의 아이들을 보며 이제는 모든 걸 잊기만 하면 되겠다고, 다시는 돌아올 생각 따위는 하지 말길 바라며 발길을 끊었다. 그리움에 몸서리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으나, 조금만 지나면 이 모든 게 훨씬 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서로를 잊고 살자 그랬다.
그래도 그 모든 걸 감당할 만큼 잘 자란 것인지 할머니를 방문해서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전화를 해주었다. 잘 계시냐고? 자기는 잘 있다면서 눈물겹도록 고마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부모만 자식을 지극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때렸다고 얼떨결에 털어놓다가도 그걸 신고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리면 아이들은 황급히 가로막고 나선다. 자신을 돌봐주는 어른들이 행여 화를 입게 될까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니 제발 신고만은 말아 달라 애원을 하고 나선다.
물론 아이들의 애원이 신고를 멈추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안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대신고를 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학대신고가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마는지 이번 정인이 사건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학대를 신고하라 강조하기 이전에 부모와 교사들을 포함한 모든 성인들이 아동들에게 일체의 체벌 등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먼저 법제도를 만들어 달라. 때릴 수도 있도록 해놓고 신고만 하라고 하지 말고, 때릴 수 없도록 해놓고 신고할 수 있게 해 달라, 그게 진짜다.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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