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학교의 12월을 잔인하게 만드는가

박종훈 2021. 1. 1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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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라고 해서 12월을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칠 수는 없다.

누구보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을 알기에,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성적으로 나타나진 않기에,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기에 가슴이 저렸다.

나:왜 여기에 오려고 하죠? 안:3년 동안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기 위해 학교에서 안 해본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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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대안학교라고 해서 12월을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칠 수는 없다. 정든 이곳을 떠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조금 더 방황하기로 결심하고 어떤 이는 계획을 세워서 나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여느 고3이 그러듯이 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소식을 듣게 된다. “선생님, 저 떨어졌어요… 너무 막막해요.” “등급이 생각보다 너무 안 나왔어요… 어떡하죠?”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교실 밖에서 너무나도 빛이 났던 바로 그 친구들의 힘없는 목소리다. 누구보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을 알기에,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성적으로 나타나진 않기에,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기에 가슴이 저렸다. 20년 가까운 삶을 하루 만에 수치로 보여줘야 하는 시험의 잔혹함을 원망한다.

“음, 그런데 성적이 생각보다 안 좋은데…”

성인의 문턱에서 막 실패를 겪은 학생들을 위로하다가 혼자 생각에 빠져든다. ‘만약 내가 대학의 면접위원이라면 이 녀석들에게 무엇을 물어봤을까? 무엇을 물어보고 무엇을 확인했기에 이렇게 보석 같은 아이들이 슬픔에 빠져 있을까? 아마 이런 인재들을 놓친 걸 알면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내가 그 면접장에 있었다면 안(가명)과 이런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왜 여기에 오려고 하죠? :3년 동안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기 위해 학교에서 안 해본 게 없습니다. 학생회부터 여러 동아리 활동, 밴드에 연극까지…. 그런데 이 모든 활동은 결국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과 관련이 깊다고 느꼈고, 그러려면 이 학문을 조금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좋은 공동체가 뭔가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본인은 무엇을 했나요? :저는 늘 서로가 사랑하는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랑이 뭘까. 무조건 이해해주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너를 위한다는 말로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이 사랑일까. 어떤 친구에게는 분리수거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했고, 어떤 친구에게는 페미니즘과 인권의 문제가, 또 다른 친구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게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다른 친구는 그런 것을 하나하나 지켜가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그 갈등의 중심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모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도록 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음, 그런데 성적이 생각보다 안 좋은데, 그런 활동에만 너무 치중했던 것은 아닌가요? :학생으로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많이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반 학교에 진학했던 중학교 친구들이 모든 걸 제쳐놓고 수능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모든 게 나중에는 결국 다 후회로 남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아마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여기의 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저의 10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여기서 거짓 없이 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제가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 이렇게 가상의 면접장에서 행복한 상상을 펼치는 사이, 서울의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 ‘학생들의 진학과 생활지도에 역점을 두고 대학입시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입시 전략은 물론 진학지도 역량 강화와 학력 향상에 최선을 다해온 학교와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이유로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공문을 교육청에 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은 ‘혁신학교 지정이 한없이 펼쳐질 수 있는 우리 아이들 미래를 꺾는 불행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12월이 잔인한 이유는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에 있었다.

박종훈 (산청 간디학교 교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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