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인구 소멸, 10년 전의 경고

조현숙 2021. 1. 1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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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2010년 4월 연구보고서 하나가 관가를 발칵 뒤집었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성원 당시 수석연구원이 쓴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긴급 제언’이다. 25쪽짜리 보고서 내용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2100년 한국 인구가 현재 절반인 2468만명으로 축소된다. 2500년 33만명으로 줄어 민족이 소멸할 수 있다.” 강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생색용 단기 대책보다는 새로운 발상을 통해 장기적 실질적 성과를 추구하는 입체적 대책이 필요하다” 꼬집으며 대안을 제시했다. 보고서가 공개되자 호응과 함께 비판이 빗발쳤다. ‘제발 저린’ 경제부처의 불만이 컸다. 전망은 “지나치게 비관적”, 대책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내용”이란 반발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보고서에서 나열한 대책을 복기해봤다. 국민연금·실업급여 소득대체율 자녀 수 연계, 교육비 세액공제 전환, 다자녀 가구 상속세 감면, 전 소득계층 양육수당 신설, 다자녀 고등학교 무상 교육과 대학 학비 경감, 결혼 소득공제, 신혼부부 대상 저가주택 공급 중산층으로 확대, 유연근무제 도입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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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보던 내용이다. 2013년부터 양육수당은 전 계층에 지급됐다. 2014년 교육비 소득공제는 세액공제로 전환됐고, 상속세 자녀 공제는 2015년 확대됐다. 결국 무산됐지만 2017년 정부는 혼인 세액공제도 추진했다. 고교 전면 무상 교육, 연봉 1억 이상 고소득 신혼부부 특별공급 대상 확대, 영아수당 등 보고서가 제안한 수준을 넘어선 대책까지 실현되는 중이다.

뒷북 대책으로 바뀐 건 없다. 아니, 더 나빠졌다. 당시 보고서가 전제로 삼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아이 수)은 1.2명대다. 지금은 1명대를 뚫고 0.72명(2022년)으로 추락 중이다. 10여년 전 전망보다 더 빨리, 더 큰 폭으로 인구가 줄어들 것이란 뜻이다.

현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있는 강 선임연구위원에게 저출산 현실을 다시 물었다. “10년 전보다 상황은 좋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강 연구위원은 당시 기억을 얘기했다. “당시 저출산 대책 간담회를 많이 다녔는데 참석자 중에 언제나 내가 가장 어린 축이었다. 유학도 다녀오고 박사까지 한 나이였는데 말이다. 참석자 한 명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애들이 아이를 안 낳는다’. 저출산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 당사자인 젊은층이 배제된 문제는 여전하다. 젊은층이 적당한 집에서 적당히 안정적 소득을 올리며 살게 못 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인구가 감소한다’며 뒤늦게 호들갑 떠는 지금보다 10년 후가 더 두려운 이유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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