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장 표지만 위조한 검사 유죄받았다, 그럼 출금서류 조작은

박국희 기자 2021. 1. 13. 21: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9년 5월 9일 오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서울동부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이날 취재진에게 “검찰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고 말한 뒤 검찰청사로 들어갔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진한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막기 위해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2019년 3월 가짜 내사번호로 허위 공문서를 만들어 불법 출국금지를 했다는 의혹 관련, 검찰 내부에서는 “고소장을 분실해 사건 기록 표지만 위조했던 검사도 사표를 내고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다”며 “불법출금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지검 형사부 소속이었던 A검사는 2015년 11월 부산지검에 접수된 고소장을 배당받은 뒤 의도치 않게 이를 분실했다. 이 일로 징계를 받을 것을 우려한 A검사는 지휘 라인에 고소장 분실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채 실무관에게 “고소인의 이전 고소사건 고소장을 보니 분실한 고소장과 내용이 동일하고, 같은 내용의 고소장을 받은 것이 기억난다”며 “고소장 표지만 새로 만들어서 처리하면 되겠다”고 했다.

A검사는 이렇게 새로 만든 고소장 표지와 고소인의 이전 고소사건 고소장을 합쳐 고소장을 분실하지 않은 것처럼 결재를 올렸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A 검사는 사표를 냈고 공문서 위조와 위조 공문서 행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까지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이 범행은 피고인이 법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검사로서 일반인들보다 더욱 엄격하게 절차 등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고소장 분실이라는 자신의 업무상 실수를 감추기 위해 고소인으로부터 고소장을 다시 제출 받는 등의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공문서인 사건기록표지를 위조해 행사한 것으로써 그 죄질이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분실한 고소장의 경우 다수의 고소·고발을 반복한 민원인이 제출한 것으로써 기존 고소들이 모두 각하되거나 취하된 사정들에 비춰 보면, (분실한) 고소장에 기재돼 있는 고소내용에 유의미한 내용이 있거나 고소인으로부터 다시 동일한 고소장을 제출 받아 사건을 처리했을 경우 각하 처분 이외의 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며 “이 사건은 피고인이 분실한 고소장 자체를 위조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 문서인 사건기록표지가 위조된 것으로써 그 사건기록표지 자체가 어떠한 권리·의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서에 해당한다거나 형사절차와 관련한 중요한 문서라고 볼 수도 없다”며 징역 6월의 선고유예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2심을 거쳐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건기록표지만 위조해도 유죄를 받았던 사건과 비교하면 김학의 불법출금 문서 위조 의혹은 훨씬 심각한 사안”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정유미 부천지청 부장검사는 12일 페이스북에 “몇년 전 어떤 검사가 고소장 표지 한장을 분실했는데, 마침 그 사건이 반복 고소건이라 같은 내용의 다른 고소장 표지를 복사해 붙이고 사건처리 했다가, 결국 들통나 사직한 일이 있었다”며 “그 검사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 건은 검사가 자기 잘못을 은폐하려고 편법을 사용한 것이었을 뿐 누구의 인권을 제약하거나 침해한 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검사들은 그 일이 알려진 후 그 검사의 일처리 행태에 다들 어처구니 없어 했다. 우린 그 따위로 일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다.

정 부장검사는 “근데 공문서를 조작해서 (김학의) 출국금지를 해놓고 (법무부가) 관행이라 우긴다”며 “난 그런 짓이 범죄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쪽 무리에선 그런 짓거리를 관행적으로 했었나? 내 불법은 관행이고 니 불법은 범죄냐?”고 했다.

‘추미애 라인’으로 꼽히는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고소장 표지를 분실했던 검사를 징계하지 않고 사직서를 수리했다는 이유로 당시 지휘부와 감찰 라인을 형사 고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