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서 눈물 흘린 정인이 양모, 방청객 "운다고 애 죽인 인간이.."

김영준 기자 입력 2021. 1. 13. 21:12 수정 2021. 1. 1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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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재판 열려.. 검찰 공소장 변경

[법정 안]

검찰이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養母)에게 적용한 혐의를 살인죄로 변경했다.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던 상태에서 위력을 가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양모 측은 “고의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3일 오전 서울 남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신혁재) 심리로 열린 정인이 양부모의 첫 공판에서 검찰은 살인죄 적용을 위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검찰은 살인 혐의를 ‘주위(主位)적 공소사실’, 기존의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돌렸다. 먼저 살인 혐의에 대한 판단을 구하고, 입증이 되지 않으면 아동학대치사를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살인죄는 아동학대치사보다 형량이 2배 이상 높다.

검찰은 ‘전문가 의견’과 ‘양모 심리 분석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법의학 전문가·단체 등 4곳에 의견을 구한 결과, 발로 밟는 등 복부에 넓고 강한 외력(外力)이 가해져, 췌장 파열 등 복부가 손상됐고 이로 인해 과다 출혈이 발생했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사망한 정인이의 복부에선 600mL가량의 출혈이 발견됐다. 뒤늦게 살인죄를 적용한 것에 대해, 검찰은 “수사 당시 양모에 대한 프로파일링(범죄 심리 분석) 수사를 진행했는데, (양모가 수감된) 구치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구속 기간 내 결과를 받지못해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여러 사정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하다”고 했다.

정인양을 입양한 후 수개월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가 13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아동복지법위반(아동유기‧방임) 등 첫 공판을 마치고 법원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2021.01.13 박상훈 기자

재판에 출석한 양부모 측 변호인은 기존의 아동학대치사와 살인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변호인은 “사망 당일 피해자가 밥을 먹지 않아 양모가 배와 등을 세게 밀듯이 때렸고, 아이의 양팔을 잡고 흔들다 가슴 수술 후유증으로 떨어뜨렸다”며 “배를 발로 밟는 등 췌장이 끊어질 정도의 강한 둔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때리고 떨어뜨린 것과 사망 간)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날 법원은 공판이 진행되는 본 법정 외에 추가로 2개 법정에서 공판을 중계했다. 전국 각지에서 총 813명이 재판 방청을 신청했으나 추첨을 통해 선발된 51명이 3개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연두색 수의를 입고 출석한 양모는 재판 내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얼굴을 가렸다. 간간이 눈물을 닦기도 했다. 중계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본 최민혜(36)씨는 “본인(양모)은 정인이가 운다고 그렇게 때리고 학대해놓고 법정에서 우는 모습을 보니 분노가 차오른다”고 했다. 검찰이 양부모의 구체적 학대 사실을 언급할 때마다 방청객들은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렸다. 공판이 끝나고 재판관들이 법정을 떠나자, 한 중년 여성은 양모를 향해 “악마 같은 죽일 X아”라고 소리를 질러 퇴정 당하기도 했다.

[법정 밖]

법원 울타리 주변에는 70여 개의 조화와 학대로 숨진 다른 아동들의 영정 사진 12개가 놓였다. 사진마다 ‘정인아 미안해 ‘달래야 미안해’와 같은 글귀가 붙었다. 재판 시각은 오전 10시 30분이었지만, 이날 새벽 6시쯤부터 부산,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정인이 엄마·아빠’를 자처하는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는 김영신(34)씨는 “둘째 아이가 정인이와 동갑이라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방청권을 받지 못했지만, 어른들이 나서야 아동 학대 가해자들이 엄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법원에 왔다”고 했다.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인천에서 왔다는 이정은(35)씨는 “결혼 전엔 이런 사건이 있어도 안타깝다는 생각에 그쳤는데, 자식 가진 엄마가 되니 더 분노가 치밀어오른다”며 “이번에 처음으로 국민청원에도 참여했고 직접 피켓도 만들어 왔다”고 했다.

정인이 양모 호송버스에 눈덩이 던지는 시민들 - 13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 생후 16개월 된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가운데, 분노한 시민들이 양모를 태운 호송버스에 눈덩이를 던지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양모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양모는 “화가 나 때렸지만, 고의로 죽게 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박상훈 기자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과 시민들은 ‘장OO(양모) 사형’ ‘악마를 보았다’ 피켓을 든 채 “(정인아) 우리가 지켜줄게”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판에서 검찰이 정인이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원 밖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전 11시 50분쯤, 양모가 탄 호송차가 법원을 빠져나가자 시민들은 차창을 두드리고 길가의 눈을 던지기도 했다. 일부는 차 앞을 막으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아동학대 혐의를 받는 양부는 법원에 신변보호 조치를 요청해 경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법정에서 나왔다. 점퍼 모자를 뒤집어써 얼굴을 가리자, 모자를 벗기려는 시민들과 이를 말리려는 법원 관계자들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양부가 법원에서 외제차를 타고 빠져나가자 시민들은 차에 발길질을 했다. 양부모의 다음 재판은 2월 17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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