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성 골목 식당에서 알래스카·외계까지..갈 수 없다면 읽고 상상하기

김종목 기자 2021. 1. 1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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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 4명이 추천하는 코로나19 시대, 책으로 떠나는 여행

[경향신문]

후지와라 신야는 “(인도는) 자연 속의 생명들이 저마다 독자의 강한 개성을 갖고 자기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 ‘무엇을 찍지 않을 것인가’ 하는 마이너스 작업”을 거친 뒤 갠지스강 등 인도 풍경을 촬영했다. ⓒ후지와라 신야, 작가정신 제공
인도에서 만난 ‘시각 충격’ 속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생각하고
알래스카의 대자연을 느끼며
집콕·방콕 시대의 ‘위로’를 찾아
주변의 ‘미시적 세계’ 돌아보면
팬데믹 속 일상의 행복이 그 안에

알래스카와 갠지스에서 출발해 하와이·뉴욕을 거쳐 외계로 향했다. 여행가 4명에게 추천받은 책의 무대다. 코로나19 2.5단계 여행 자제의 시기 여행기와 여행에 영감을 주는 책을 추천받았다. 시선을 낮춰 주변의 미시적 세계를 찬찬히 바라보는 일,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최소주의 추구도 책에서 건져낸 삶의 방식이다.

후지와라 신야가 촬영한 서양인의 명상 모습. 다만 그는 “인도나 티베트를 다녀와서 신비를 팔아먹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말없이 좌선을 하는 게 명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명상은 자신도 모르 는 사이에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후지와라 신야, 작가정신 제공

#고전이자 필독서

고전·필독서 다시 보기 - 인도방랑, 김남희·전명윤 추천

김남희와 전명윤이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기를 꼽았다. 김남희는 “여행 분야 고전이랄 수 있어 언제 읽어도 좋다”고 했다. 전명윤은 <인도 방랑>(작가정신)을 콕 집어 “남아시아에 관심이 생겼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독서”라고 했다. 전명윤은 평을 좀 더 붙였다. “그럴듯한 모험담도, 이리 살거나 저리 살라는 흔한 조언도 없다. 풍경과 사람에 대한 묵직한 관조, 요즘 책에서는 보기 힘든 끝없는 허무함에 핀 안 맞는 사진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 고전을 오랜만에 다시 들춰본다. 인도 여행 열풍을 끌어낸 책인데, 인도나 인도인에 대한 환상을 배제한다. 이 특정 지역에서 보편의 인간 문제를 끄집어냈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화장(火葬)과 시신을 다룬 ‘죽음의 풍경’은 지금 봐도 강렬하다. 인간의 육신이 개나 까마귀에게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당해야 한다. 불투명 시트를 덧대 인화한 듯한 사진에서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모호하다. 흐릿한 사진 톤은 사유를 끌어내 풍경을 더 선명하게 각인한다.

스물네 살 때인 1969년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3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1972년 이 책을 냈다. 후지와라 신야는 한국어판 서문에 “젊은이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을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조언을 실행에 옮길 시간은 언제나 올까.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산맥 아래 무스(사진) 같은 큰 피사체를 주로 찍었다. 15년차 때 시선을 내려 작은 물망초 같은 “실로 장대한 알래스카의 작은 세계”에도 주목한다. 청어람미디어 제공

#장대한 작은 세계로

이럴수록 자연으로 -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긴 여행의 도중·야생의 위로, 김남희 추천

김남희는 호시노 미치오의 책도 고전으로 꼽았다. “알래스카의 강인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사랑”한 여행가다. 1996년 불곰에 습격당해 죽은 뒤 ‘알래스카의 신화’가 됐다. 대표작인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는 알래스카에 대한 헌사다. 근작이 <긴 여행의 도중>(북하우스 퍼블리셔스)인데 유고집이다.

이 책에서 시선의 변화를 확인한다. 그는 “그리즐리, 늑대, 카리부, 무스, 혹등고래 같은 야생동물이나 땅을 뒤덮는 빙하의 흐름, 끝없이 펼쳐지는 툰드라, 남알래스카의 울창한 원시림, 겨울밤 하늘을 춤추는 오로라” 같은 큰 피사체에 주목했다. 정착 15년 차에 이렇게 말한다. “잠깐 멈춰 서서 시선을 내리고 알래스카의 땅 위에서 몇십 센티미터까지 눈을 가져가니,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식물의 세계가 있다. 또 그들이 살아남는 법을 알면 알수록,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듯한 기쁨으로 내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호시노 미치오가 촬영한 해질 무렵 호수에서 수초를 먹는 무스. 뒤쪽 석양에 물든 산이 맥킨리산이다. 청어람미디어 제공

뺨을 어루만지는 북극 바람, 백야의 희뿌연 빛,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물망초는 “실로 장대한 알래스카의 작은 세계”였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오감의 기억 속에 남겨놓으려 했다. “경황없는 세상의 삶과 평행을 이루며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마음 어디에선가 항상 느끼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에마 미첼은 반려견 애니(사진)와 함께 집 주며을 산책하며 식물을 관찰했다. 우울증을 치유하는 일이기도 했다. 푸른숲 제공

<야생의 위로>(푸른숲)의 저자 에마 미첼도 집 주변의 미시 공간을 들여다봤다. 호시노 미치오가 알래스카에서 깨달은 ‘장대한 미시적 자연’의 세계와 일맥상통한다. 에마 미첼은 “나의 정신 상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연의 거대한 요소들을 체험하는 일, 그리고 시선을 내려 나무 그루터기나 풀잎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미묘하고 작디작은 세계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했다. 25년간 우울증에 시달린 그는 자신을 다그치며 반려견 애니와 집 주변을 산책하고, 식물을 관찰했다. “무기력과 부동 상태, 이에 따른 기분의 급락과 더욱더 길어지는 정지, 피할 수 없는 하강 나선”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방법이다.

에마 미첼은 “시선을 내려 나무 그루터기나 풀잎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미묘하고 작디작은 세계를 탐구”했다. 사진은 영국 서퍽주 칼턴 그린 근처에서 촬영한 도깨비산토끼꽃과 석양. 푸른숲 제공

코로나19 시대 ‘집콕’ ‘방콕’의 대안은 넷플릭스일까. “실내에 처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넷플릭스를 보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진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면 우울함이 조금이나마 걷히리라는 것, 밖으로 나가 오두막집 뒤의 숲을 거닐면 어두운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분명 옆으로 비켜나리라는 것은 안다.” 김남희는 지난봄 가장 많이 위로를 받은 책이라고 했다.

김민향은 다큐멘터리 공부를 하러 갔다 20년을 머문 뉴욕의 사람과 장소, 개인사와 예술사를 결합한 기록물을 내놓는다. ‘비 내리는 브로드웨이 풍경’(사진) 일상도 담았다. 아모르문디 제공

#하와이와 뉴욕으로

지금 하와이·뉴욕은 - 시선으로부터·뉴욕, 기억의 에스노그래피, 김남희·박준 추천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도입부는 주인공 심시선의 토론회 발언으로 시작한다. “본인 사후에서도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0주기를 앞두고 자녀들은 심시선의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그 장소가 의외다. 바로 하와이. 한국과 미국에 흩어져 살던 가족 12명이 하와이로 모여든다.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는다.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물건이든 경험이든 공유하기로 한다. 한 자녀는 제사상에 서핑하면서 채집한 파도 거품을 올렸다. 다른 자녀는 심시선과 함께 마시고 싶은 커피를 구해 내놓았다.

김남희는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하와이에 가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하와이 역사가 궁금해졌다고도 했다. ‘서핑’이나 ‘훌라춤’ 같은 하와이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나온다. 하와이 ‘사진 신부’, 한국전쟁 때 국군의 민간인 학살 같은 역사가 녹아든다. 협력 업체 사장의 폭력, 남자 동창의 SNS 성폭력 같은 현재의 상처와 고통 등도 담아냈다.

김민향은 <뉴욕, 기억의 에스노그래피>에 여러 예술가를 만난 기록도 담았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공연하는 이 피아노 연주자도 그중 하나다. 김민향은 2015년과 2019년 두 차례 만났다. 2019년 만났을 때 피아노에 ‘This machine kills fascists(이 기계가 파시스트를 죽인다)’ 글귀가 새긴 것을 발견한다. 밥 딜런 등에 큰 영향을 끼친 우디 거스리가 자기 기타에 새긴 메시지다. 아모르문디 제공

박준이 추천한 책은 김민향의 <뉴욕, 기억의 에스노그래피(1995~2019)>(아모르문디)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러 갔다가 20년을 머문 작가가 기록한 뉴욕의 시공간이다. 김민향은 낙천적인 홈리스와 홀로 늙어가는 할머니, 가난한 사진작가에 유명한 영화음악가를 만난다. 그리니치빌리지와 첼시, 브루클린 거리 같은 뉴욕 공간에서 개인 역사와 영화와 음악, 시와 소설의 연대기를 기록했다. 다음 카피는 이 기록을 압축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현대 뉴욕에 살았다면, 아마도 감자를 먹는 사람들 대신 피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렸을 것이다.”

박준은 “그녀의 뉴욕은 종종 황량하고, 심연의 어둠에 빠지고, 숨을 곳을 찾아 헤맨다. 그녀의 하루하루는 순례자의 여정 같다. 난독증의 시대, 인스턴트 텍스트와 예쁜 이미지가 횡행하는 시대에 이런 책을 읽어낼 이는 얼마나 되려나. 고이 간직하겠다”고 했다.

#티끌 같은 존재

주변의 미시적 존재 - 루시와 다이아몬드, 박준 추천

책 여행의 무대는 외계로, 존재로 확장된다. 이승연의 <루시와 다이아몬드>(나는책)는 하늘과 땅, 바다가 지구와 똑 닮은 ‘창백한 푸른 별 X’에서 탄생한 외계인의 진화 스토리를 담는다. 아무도 없이 고요하던 세상에서 태어난 외계인은 점점 똑똑해진다. 언어를 고안하고, 문명을 만들어낸다. “다른 생명체의 몸을 기이하게 바꾸고 그들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는 단계로 나아간다. 외계인들은 결국 다이아몬드로 진화해 우주를 전전한다. 인간의 모순과 한계를 반영한 이야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박준은 이 ‘사이언스 픽션 그림책’을 두고 “여정의 끝이 환희에 가득 차든 서럽든 여행가가 지구의 비밀을 찾아 나서듯 외계인 루시도 업인지 축복인지 알 수 없는 길을 살아간다. 루시가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과 닿아 있다”고 말한다.

루시의 존재론은 다음과 같다. “ ‘나는 누구인가’ 같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 하나쯤 갖고 살아도 괜찮아요.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우리는 살아가요. 모든 존재의 업이자 축복이에요. 그러니 그저 즐겁게 살아요. 내 모든 얘기조차 결국 우주의 티끌 같은 별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렇다고 누가 이를 덧없다 할 수 있나요?”

#버리기와 소박한 맛

최소주의로 돌아가기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혁명의 맛, 박건우·전명윤 추천

박건우는 100개 이하의 소지품만 지닌 채 아내와 함께 제주 숙박 시설을 집 삼아 살아간다. 그에게 영감을 준 책이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비즈니스북스)이다. 그는 “답답한 코로나 시대에 육신만큼은 얽매일 것이 없으니 비관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절대 짐을 늘리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게 살고 싶거든요!”.

책은 미니멀리즘의 구체적인 실천법을 제시한다.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라”에서 시작해 “자신에게 맞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라”는 조언으로 나아간다. 1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 버리기, 필요한 물건과 갖고 싶은 물건 구분하기다.

전명윤은 가쓰미 요이치의 <혁명의 맛>(교양인)도 추천했다. 부제는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전명윤은 “문화혁명 시기 중국을 엿볼 수 있었던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의 중국 요리 이야기다. 쓰촨음식에 대한 도발적인 내용도 흥미롭지만, 중국 쪽에서 지금까지 별 반박조차 없다는 게 더 흥미롭다”고 했다.

권력이 사람 입맛도 좌지우지한다. 덩샤오핑의 고향 쓰촨의 요리는 원래 맵지 않았다. 매운맛을 유달리 좋아했던 덩샤오핑 때문에 매운맛이 대세가 됐다. 마오쩌둥 고향 후난은 원래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으려고 기름과 고추를 많이 썼다. 마오쩌둥은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다. 홍군(紅軍)에 몸담은 이들 중에 고추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매운맛을 장려했다.

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요리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중국 요리를 섭렵한 저자의 후기 아닌 후기도 되새길 만하다. 그는 ‘후기를 대신하여’에서 베이징 민요로 글을 갈음한다. ‘먹방’의 시대에 음미할 대목이기도 하다. ‘술지게미와 비둘기알 소스로 삶은 곰 발바닥, 눈처럼 하얀 제비집과 비둘기 수프’를 두고 톈차오 예인 궈바오탄은 노래한다. “돈 많은 한량에게 한마디 하자면, 지금 누리는 호사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진다네. 농가의 식사는 그렇게 맛있지는 않지만, 채소 뿌리처럼 소박한 것은 질리지 않고 오래간다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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