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LAGER가 LAGAR로 둔갑, 신의 한수?
일본어를 공부하다 보면 기본문법이 비슷해서 다들 영어보다 쉽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입문할 때의 이야기일 뿐이고 역시 외국어인지라 상위레벨로 올라갈수록 어려움에 부딪히곤 하는게 현실이다. 그 중에서도 쉬운듯 하지만 절대 쉽지않은 부분이 외국어의 일본어식 표기와 발음이다. 일본어의 기본모음은 아, 이, 우, 에, 오 등 총 5개다. 이 5개의 모음만으로 모든 외국어를 표기하고 발음한다. 다들 오래전부터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방송은 물론이고 일본인들끼리 대화할때 오리지널 외국어 발음을 섞어서 사용하면 매우 어색하게 들리거나 느껴지곤 한다.
34년 전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때 그 당시 한국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글로벌 햄버거 브랜드 매장을 가서 간단한 영어로 치즈버거를 시켰는데,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치즈바가'로 확인멘트를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영어의 '~er'를 '아' 모음으로 표기하고 발음한다. 예를 들어 연인을 뜻하는 'lover'를 일본식 발음으로 'ラバ'(라바)로 쓰고 읽는 식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규칙과 습관이 최근 사회적으로 큰 사건과 이슈를 일으켜 일본 내에서 연일 화제다.
일본에서 가장 큰 맥주회사인 삿포로맥주와 패밀리마트가 공동으로 야심차게 준비해온 일본의 가장 오래된 라거맥주를 그대로 재현해서 한정 판매한다는 프로젝트가 출시 나흘 전인 지난 1월 8일 전격 중지한다고 발표됐다.
맥주 캔에 인쇄된 내용중에 알파벳 철자 하나가 잘못 표기된 것이 공식적인 이유다. 한국에서는 시원한 목넘김을 자랑하는 'lager 공법'의 맥주를 '라거'라고 쓰고 읽지만 일본에서는 위에 언급했듯이 '라가'로 불려진다. 이 부분에서 대형사고가 난 것이다. 패밀리마트 1만6300개 점포에 일시에 뿌려져야할 35만 캔에 'LAGER'가 아니라 'LAGAR'로 인쇄된 것이 중지발표 전날 발견되면서 일파만파의 일이 터졌다.
'E'를 'A'로 잘못 사용한 것인데, 이 프로젝트는 업계 최대 규모의 두 대기업이 같이 진행했기에 많은 인원들이 투입돼 다수의 검수절차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시 5일 전에야 발견된 점이 매우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에서의 외국어 사용의 특수성을 떠올려보면 "그럴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또 하나 웃지않고 넘어갈 수 없는 사실은 이번에 재현된 제품이 창업 이듬해인 메이지 10년(1877년)에 발매된 아카보시라는 '삿포로 라거맥주'인데, 1877년 첫 라벨에는 'SAPPORO LAGER BEER'라고 올바르게 표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내 포털에서 대서 특필되면서 아직까지 이슈가 되고 있다. 단순실수로 일어났던 이 사건이 이번에는 새로운 사회적 운동으로까지 판이 바뀌면서 번지고 있어서 해당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발매중지 발표가 나자마자 포털에는 폐기하지 말고 판매해달라는 내용으로 수백건 이상의 댓글들이 달렸는데 이 배경으로는 일본에서 수년전부터 지속해 온 '푸드로스 줄이기' 캠페인의 영향이 컸다. 이후 푸드로스 전문 저널리스트인 이데루미(井出留美)씨가 칼럼을 통해 "E가 아니면 어때?"라는 의미로 "#E가 아니어도 A쟎아"라는 약간 어설픈 해시태그 캠페인을 주창했고, 이게 SNS 세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급기야는 국세청과 소비자청까지 나서서 이번 오표기는 판매와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공식코멘트까지 한 상황이다.
그런 영향 덕에 야후포털 상단에는 일주일째 이 맥주의 사진과 기사들이 포진돼 있다. 해당기업인 삿포로맥주와 패밀리마트는 이 제품들을 절대 폐기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중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특히 삿포로맥주는 회사 차원에서 '식품손실 삭감'을 위한 대처를 하고 있다고 홍보하면서 지난 2019년 일부 제품의 유통기한을 9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한 부분도 강조하고 있다. 역시 위기는 또 다른 기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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