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파워인물]최재원 충북도 축산시험장장 "토종 칡소 살려 대한민국 0.1%축산브랜드 도전"

한덕동 2021. 1. 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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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종개량·맛차별화로 위기맞은 칡소 복원 고삐
5년내 사육수 배 이상 확대, 전문판매장 개설도
출하장려금 확대·칡소 별도 등급제 적용도 추진
"토종 유전자원 보존은 선택 아닌 필수 과제"
최재원 충북위생동물시험소 축산시험장장이 12일 시험 축사에서 칡소의 유전적 특징과 기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칡소의 얼굴과 목덜미에 칡덩굴같은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다. 한덕동 기자

“이 녀석들이 덩치는 작지만 다부지고 성깔도 있어요. 일반 한우와 같은 우리에 넣으면 금세 대장이 된다니까”

12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 자리한 충북도 동물위생시험소 축산시험장. 어슬렁대는 칡소의 생육 상태를 살피는 최재원(52) 축산시험장장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마치 기특한 아이를 바라보는 아비의 눈길 같다. 지역 최고의 칡소 전문가다운 설명이 이어졌다.

“혈통이 좋은 칡소는 특유의 검은색 줄무늬가 선명해야 하죠. 힘 좋고 줄무늬가 뚜렷한 수컷은 품종 개량과 증식을 위한 씨수소로 선정해 단독 축사에서 기릅니다. 사람으로 치면 1인실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셈이죠”

최씨와 칡소와의 인연은 꼭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당시 축산 연구직으로 공직에 입문한 그가 맡은 첫 업무가 바로 칡소 복원 사업이었다.

칡소는 수천 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 한 토종 한우다.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 등장하고, 고려 수의학 전문서적인 우의방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칡소는 검은 줄무늬가 칡덩굴처럼 몸을 휘감고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무늬가 호랑이와 비슷해 호반우(虎斑牛)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요의 얼룩송아지,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나오는 얼룩백이(얼룩빼기가 표준어)가 바로 칡소다.

우리에게 친숙했던 칡소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멸종 위기에 처한다. 일제가 한우를 황갈색 한가지로 표준화하는 심사제를 시행해 다른 색깔의 품종을 도태시켰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토종 한우를 살리자는 움직임은 1990년대 들어서야 움트기 시작했다.

충북도는 1996년 ‘향토 새 옷 입히기’란 특수 시책으로 칡소 복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는 1998년 전국 최초로 동물유전자 은행을 설립해 칡소 유전자원과 보존 기술을 확보하는 등 국내 복원사업을 주도했다.

연구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좋은 혈통의 유전자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전국적으로 100마리도 채 안될 만큼 칡소 개체수가 희소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복원 초기 4~5년간은 우량 종자를 구하러 전국 축산농가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며 “순수 혈통이라고 해서 가보면 젖소 혼혈같은 잡소인 경우가 허다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수정란 이식법이 보급되고, 씨수소 동결정액 공급으로 조기 증식이 가능해지자 농가들도 칡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칡소 사육농이 늘면서 2008년 충북에서는 ‘칡소영농조합법인’이 출범했다.

2009년에는 ‘충북 토종가축보존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칡소를 체계적으로 증식ㆍ보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동시에 ‘호반칡소’라는 충북 고유의 상표까지 출원하면서 복원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순탄하게 부활하던 칡소는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개체수가 줄면서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한 때 4,000마리까지 증가했던 전국 개체수는 현재 3,000마리까지 급감했다. 충북 지역도 800여 마리까지 늘었던 것이 최근엔 470마리까지 줄었다.

사육이 줄어드는 것은 한우보다 수익성이 떨어져서다. 칡소는 일반 한우에 비해 몸집이 작고 1등급 출하율도 떨어진다. 개체수가 적다보니 근친교배가 많고 품종 개량이 더뎌진 탓이다. 농가들에 따르면 칡소의 마리당 평균 소득은 한우보다 200만원 이상 적다고 한다. 한우와 키우는 방식이 똑같은데도 수익률이 떨어지니 사육을 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충북도가 칡소 판로 개척을 위해 2009년 출원·등록한 '호반칡소'상표. 도 축산시험장 제공

이번에도 충북도는 변곡점을 맞은 칡소 복원 사업을 되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결국 승부는 상품성에 있다고 보고 지난해에 ‘칡소 브랜드 활성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칡소 특유의 생태를 연구하고 개량해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것이 골자다.

소의 해를 맞은 올해 도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생명과학을 접목한 품종개량 연구에 고삐를 죄고 있다.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최 축산시험장장은 “칡소는 지방산을 구성하는 올레인산 함량이 높아 맛이 고소하고 희소성도 있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칡소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을 점쳤다.

축산시험장 측은 판로 확대를 위해 도내 칡소 개체수를 5년 안에 1,000마리까지 2배 이상 늘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사육 두수를 늘린 뒤엔 전문 판매장을 열기로 했다. 칡소 농가에는 마리당 30만원이던 출하장려금을 올해부터 100만원으로 올려 지원하고 있다.

칡소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멸종 위기의 가축에 별도의 등급을 적용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현재 한우 등급제는 마블링(근육 내 지방)함량 위주로 구분한다. 일반 한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블링이 적은 칡소가 불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최 축산시험장장은 “토종 가축 복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라고 했다. “유전자원은 보존하기는 어렵지만 소실되는 것은 한 순간”이라고 종 복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아직 불완전한 칡소 부활을 위해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며 “칡소 만의 특수성과 희소성을 살려 ‘대한민국 0.1% 축산브랜드’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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