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칭찬한 쿠팡, 2명 뽑으면 1명이 '탈팡' 왜?

장상진 기자 2021. 1. 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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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직고용, 주5일, 52시간제
쿠팡 택배 근로의 속사정

‘택배법’으로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개인 사업자’ 신분인 택배 기사에 대해서도, 그와 계약하는 기업이 종업원과 마찬가지로 안전·보건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노동계에서도 ‘택배 기사를 일반 노동자와 똑같이 처우해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그 모범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온라인 상거래 기업 ‘쿠팡’이다. 작년 10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직고용을 활용하고 있는 쿠팡 등의 사례를 참고해 택배 종사자들의 주 5일 근무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쿠팡에 소속된 ‘택배 노동자’는 일반 택배 기사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 통계와 수치, 그리고 인터뷰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쿠팡에서는 작년 11월 한 달에만 전체 배송 직원의 8%가 넘는 1400명이 퇴사했다. 사진은 경기도 파주의 한 주택가에서 택배가 가득 실린 쿠팡 차량에서 배송 기사가 상자를 내리는 모습. /오종찬 기자

◇3000명 뽑지만 1400명 그만뒀다

쿠팡은 작년 10월 정부에 택배 사업자를 신청하면서 낸 보도 자료에서 “쿠팡이 배송 인력의 근무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직고용, 주 5일, 52시간으로 쿠팡발 택배 산업 새 표준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쿠팡은 배송 인력인 ‘쿠팡맨’(또는 ‘쿠친’)에게 연봉으로 최대 4800만원을 지급하고, 연 15일 이상 연차 휴가를 보장한다. 근무 시간도 주 52시간을 넘지 않는다. 일반 택배 기사들이 자기 차량으로 배송하는 것과 달리 쿠팡은 회사 차와 기름값을 지원한다.

그런데 정작 퇴사가 줄을 잇는다. 13일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작년 11월의 경우 1455명이 쿠팡을 떠났다. 불과 한 달 동안 전체 직원(1만6967명)의 8.6%가 사표를 낸 것이다. 쿠팡은 그 달에만 3048명을 새로 뽑았다. 쿠팡 노조 관계자는 “수도권 쿠팡맨 75%가 1년을 못채우고 퇴사하는 걸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택배 회사인 CJ대한통운 소속 택배 기사의 작년 연간 이직율은 2.2%였다.

실제로 본지와 인터뷰한 전·현직 쿠팡맨들은 “지금도 수많은 쿠팡맨이 탈팡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탈팡’이란 쿠팡을 그만둔다는 쿠팡맨들의 은어다.

◇“좋은 회사지만 일 잘하면 손해, 못하면 압박”

쿠팡에서 배송 기사로 2년간 일하다 이달 택배 기사로 전직한 A(31)씨는 ‘쿠팡은 어떤 회사였느냐’는 물음에 “각종 복지 제도를 누릴 때면 ‘내가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뿌듯함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만둔 이유에 대해 “똑같은 시간 일하는데 일을 잘하는 직원 입장에선 택배 기사보다 수입은 적고 노동 강도는 세다”고 했다.

쿠팡맨은 주 5일, 하루 10시간씩 근무한다. 퇴근 시각이 되면 배송 물량이 남아 있어도 멈추고 퇴근한다. 하지만 1인당 처리해야 할 물량은 급증하고 있다. 쿠팡맨들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는 13일 아침에도 “배송지가 200세대 이상 할당됐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200세대'는 택배 업계 기준으로 300~400상자 정도 분량이다. 이 정도를 배송하면 CJ대한통운 기준(상자당 800원)으론 하루 24만~32만원을 벌 수 있다. 주 5일 일하면 연(年) 6300만~8500만원이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로 물량이 급증한 작년 기준, CJ대한통운 택배 기사의 평균 연 소득이 8300만원이었다. 하지만 쿠팡맨 월급 체계에서는 인센티브를 더해도 연봉 4800만원을 넘기 어렵다. 쿠팡이 채용 포스터에 직접 적은 최대 금액이다.

◇실적 압박에 10명 중 7명 “휴게 시간 없다”

쿠팡맨은 입사 직후 월급 230만원(연 환산 2800만원)에서 시작해 ’레벨업'이라 불리는 승급을 통해 급여가 높아진다. 수습 3개월을 거쳐 2년을 채워야 정규직이 된다. 레벨은 성과에 따라 올라간다. 근무시간 내 배달을 완료하지 못하는 일이 잦으면 레벨 상승이나 정규직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쿠팡은 ’50분 근무 10분 휴식′을 보장한다지만 쿠팡 노조 조사에선 10명 중 3명만 “휴게 시간을 갖는다”고 답했다.

쿠팡은 작년 택배 기사 사망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를 자사 홍보의 기회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작년 10월 하순 택배 기사 사망 사고로 택배사들이 잇달아 대국민 사과를 하자, 쿠팡은 곧바로 “주 52시간 직고용으로 택배 사업의 새 표준을 만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 기사의 과도한 업무로 논란을 빚을 때마다 쿠팡은 ‘우리는 다르다'는 식으로 홍보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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