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선원 억류' 장기화 우려

김지은 2021. 1. 1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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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1차관 이란 방문 마치고 카타르행
이란, 동결 자금중 10억달러 활용 방안 요구
미국 쪽과 협의 필수지만 당장 협의 어려워
최종건(가운데 왼쪽) 외교부 1차관이 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가운데 오른쪽) 이란 외무장관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억류된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조기 석방 등을 위해 이란을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흘 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선박 나포 문제는 ‘기술적 사안’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하며 이와 별개로 한국 내 묶인 이란 자산 문제는 당장 해결돼야 한다는 이란의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선원 억류 사태가 길어질 분위기다.

13일 외교부에 따르면 최 1차관은 지난 10~12일 2박3일 동안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부 장관,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외교차관, 압돌나세르 헤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 카말 하라지 이란 최고지도자실 외교고문을 비롯해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과 법무차관 등과 잇따라 만나 한국 선박과 선원을 억류하고 있는 데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조속한 억류 해제를 요구했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 4일 걸프 해역에서 해양오염을 이유로 한국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를 나포했다.

이란 쪽은 최 차관과의 면담에서 줄곧 “한국 선박 억류 건은 해양 오염과 관련된 기술적인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외교부는 이란 쪽이 “공정하고 신속한 사법 절차의 진행과 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선원들에 대한 인도적 대우 지속 제공 및 영사 접견권 보장” 등을 약속했다고 설명헀다.

다만 한국 쪽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억류 선박의 ‘해양 오염 관련 기술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이란 쪽이 (선박을) 억류한 이유가 제시돼야 국제법상 위반이 되는지,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정무적 평가 분석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이란 쪽이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거나 정보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국제법 위반 사례다 아니다 판단 내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란을 방문했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1일(현지시간) 압돌나세르 헤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최 차관의 이번 방문에서 주요하게 논의된 다른 축은 한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 원화자금 70억달러의 활용 방안이었다. 이란은 지난해 ‘코백스 퍼실리티’(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를 통한 백신 구매에 원화자금 이전을 요구했고,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제재면제 특별승인을 받고 관련 준비를 한 바 있다. 하지만 백신 구매 비용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압류 가능성을 우려한 이란 쪽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외교부 안팎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란은 이번 최 차관 면담에서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걱정할 것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라’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핵심은 우선 동결 자산 가운데 ‘의미있는 액수’를 활용할 수 있도록 조처하라는 것으로, 이란 쪽이 요구한 금액은 10억달러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한국이 미국의 제재를 이유로 원화자금을 부당하게 동결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란 쪽에 대해 한국과 미국 금융시스템이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원화자금 활용 극대화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 쪽이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원화자금의 원활한 활용 방안 모색을 위해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미국과의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일각에서 “협의할 미국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전해진다. 이에 정부는 오는 20일 조 바이든 신임 행정부 취임 이후 미 재무부가 이란 핵협정(JCPOA) 복귀를 고려해 대이란 제재에 발목잡힌 동결 자금 문제도 전향적으로 접근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미 재무부의 경우 과거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로 2005년 북핵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을 무위로 돌렸던 사례처럼 미국 행정부의 외교 정책과 항상 보폭을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연일 한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해온 이란 정부는 12일(현지시각)에도 이란 외무부 브리핑에서 “이란은 전부터 동결된 우리 자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접근에 불만을 표시해왔다”며 “한국 내 이란 자산 동결 문제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란 정부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락치 외교차관에게 한국 방문을 초청한 최 1차관은 카타르 방문 일정을 마치고 오는 14일 귀국한다. 현재 ‘한국케미’ 선원들은 선박에 억류된 상태이지만 영사 접견을 통해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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