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이름의 무게를 덜어낸다는 건 [인터뷰]

우다빈 기자 2021. 1. 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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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 사진=넷플릭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 차인표라는 이름 석자를 듣는다면 누군가는 젠틀한 신사 이미지를 떠올릴 테다. 또 누군가는 선행의 아이콘을 언급할지도 모른다. 물론 신드롬을 만든 검지 손가락 제스쳐 역시 빠질 수 없다. 세월이 흘러도 차인표는 고고하고 우아한 남배우로 대중에게 남아있다. 그런 그가 데뷔 이래 최고의 변신을 꾀했다. 옷과 함께 무형의 프레임을 벗어던진 차인표는 어쩐지 시원한 얼굴이다.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차인표'(감독 김동규·제작 어바웃필름)는 대스타였던 배우 차인표' 전성기의 영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혜성처럼 등장한 차인표는 잘생긴 재벌 2세 캐릭터의 정석을 선보이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외모 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가죽 재킷, 색소폰 연주 등 여심을 저격하며 안방극장을 공략했다.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차인표가 2021년, 55세 나이에 그야말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차인표만의 '고상한 멋'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이야기에 충실했던 한 배우만이 남는다.

차인표 / 사진=넷플릭스 제공


과감했고 또 획기적이었던 시도 덕분일까. 넷플릭스 공개 직후 '차인표'는 한국 TOP 10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작품에 참여한 소감으로 차인표는 "2017년에 있던 캐릭터다. 낡고 오래됐지만 영화 속 세계는 신선하고 보지 못했던 것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스릴이 있었다. 우리의 도전이 너무 희화화돼 끝나면 어떡하냐는 부담감도 있었다. 다행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관심을 많이 받았다. 의도한 대로 성취가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동규 감독은 차인표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20년 넘게 간직했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대스타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이를 두고 차인표는 사실 5년 전 시나리오를 거절했던 사연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거절했던 이유에 대해 "대본 속 차인표가 극심한 정체기를 겪고 있다. 이를 보고 '왜 굳이 내가 더 나를 망가뜨려야 하냐'는 생각에 거절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점점 영화 속 상황이랑 비슷해지고 있다. 영화를 할 기회도 많이 안 생기더라"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어 "대본이 지금의 현실을 투영한 것 같다. 상업 영화계에서 투자 되는 배우가 있고 잘 안 되는 배우가 있다. 지금 제가 그런 범주에 있다. 사실 사람이 부족한 면이 있으면 다른 쪽으로 채워진다. 전체적으로 저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속상하진 않았다. 남들과 경쟁할 나이가 아니다. 제가 갖고 있는 단점을 소재로 코미디를 유발할 수 있다면 너그러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서 여유로운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김동규 감독이 표현한 '차인표' 속 차인표와 실제 차인표는 꽤 간극이 있다고. 이에 "김동규 감독님이 저를 모르는 상태에서 대본을 썼다. 제가 굉장히 씁쓸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가족들이 미국에 갔고 쓸쓸하게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 사실 저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서도 "대중들에게 받았건 자신이 쌓았건, 이미지 안에 갇혀있는 모습이 많이 공감됐다. 실제로 제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 나를 오랫동안 옭아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는 성격이 급해서 행동을 먼저 하고 판단을 한다. 제가 갇힌다면 빨리 나왔을 것"이라 설명했다.

차인표 /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렇다면 극중 유난히 공감 갔던 장면은 무엇일까. 차인표는 매니저 아람(조달환)과 싸우다가 '밥 벌어먹는 것도 내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이라 말하는 장면을 꼽으며 "저 뿐만 아니라 대중 연예인이 갖고 있는 비슷한 마음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미지 안에 활동하는 것이 연예인이다. 공감이 많이 됐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 구출되는 장면이 가장 까다로웠다. 나이가 들어도 (노출이) 창피했다. 당시 100여 명이 현장에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제가 뭘 입고 나오는지 몰랐다. 제가 빨간 팬티만 입고 나오니 다들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직도 생각난다"고 복기하기도 했다.

"부여받은 이미지로 오랫동안 살면서 얻는 게 굉장히 많았다. 한 연예인으로서 대체 안 되는 캐릭터가 생겼다. 이면을 본다면 편안함 속에 들어가서 이미지를 즐기며 너무 안주했다. 그러는 동안 변하지 않으니 팬들이 떠나게 됐다. 떠난줄 모르고 계속 안주했다. 이게 아니라는 걸 알고 위기 의식을 느낄 때 '차인표'를 만나게 됐다."

특히 '차인표'는 실제 차인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새로운 장르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출자로도 활약한 만큼 자신의 소신을 작품에 투영하지는 않았을까. 이에 대해 "참여하려면 참여했을 수도 있다. 이건 '내가 맞고 이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영화가 안 만들어졌을 것이다. 김동규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몹시 실험적인 장르였다. 현실과 허구를 모호하게 오가는 세상을 만들어 현실의 인물을 배치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의 본인이 아닌 제3자가 관찰한 해석의 인물이다. 이것은 실험적이고 굉장히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대본을 놓고 바꿔달라고 하면 장르를 파괴하고 훼손하면서 다큐멘터리가 된다. 그 지점에서 조심하려고 노력했다"고 가치관을 드러냈다.

출연작을 모두 기억한다는 그는 1994년 데뷔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차인표는 인기의 절정을 달렸던 때를 회상하며 "만약에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연극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리 바쁘고 인기가 있어도 기본기를 쌓고 훈련을 하고 싶다. 바쁜 스타들이나 배우는 야구선수처럼 시즌, 비시즌이 없다. 끊임없이 대중에게 노출되고 이미지가 소비된다. 야구선수처럼 시기를 구분짓는 삶을 살고 싶다"며 희망사항을 밝혔다.

이어 "데뷔하고 10년간 열심히 일을 했다. 중국에서도 일을 하고 미국에서도 일을 했다. 이후 7, 8년을 봉사활동을 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니까 치열하게 경쟁하던 것에 동떨어졌다. 새로운 사람이 많이 등장했고 제가 나이를 먹었다. 주어진 역할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보다는 메시지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업계에서 나이가 든 사람이 해야 하는 역할은 젊은 이들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배 연기자 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또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차인표'는 터닝포인트라며 애정을 드러낸 차인표다. 과거 자신이 고정된 이미지를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게 한 발자국 나선 것. 그는 보는 이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장르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차인표에게 현장은 '같이 공존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곳'이다. 나이를 떠나서 각기 전문가들이 모여 영화를 만드는 장소에서 본인이 수용될 수 있는 실험의 장이었다. 배우로서 소신을 밝힌 차인표는 창작자의 길을 걷는 중이다. 그는 아직 지칠 때가 아니라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창작, 제작을 하고 싶다. 김동규 감독의 실험적인 세상은 여기서 중단하지 않고 본인의 세계관을 확장하길 바란다는 생각이 든다. 또 출연할 수 있다면 영광일 것 같다"며 '차인표'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했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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