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강등' 김여정..대남비난 담화로 역할·위상 여전 과시(종합)
대남·대미외교 기대 낮추며 핵심 라인 입지 낮아진 연장선 분석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의 공식 직책이 이번 제8차 당대회를 계기로 잇달아 낮아져 주목된다.
김여정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 제1부부장이었으나 1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남 비난 담화를 발표하면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직함을 사용했다.
지난 11일 8차 당대회 당 지도기관 선거에서는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를 내주고 당중앙위 위원으로 물러났다. 당중앙위 위원은 당내 주요 전문부서 부부장에게 주로 부여되는 직위다.
직책상으로만 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임에도 당내 공식적인 서열은 더 낮아진 것이다.
김여정은 전날 김 위원장이 새로 구성된 당 중앙 지도기관 성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할 때도 네 번째 줄로 밀려났다.
김여정 옆에서 늘 함께 다니던 같은 직급의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이번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및 조직비서로 선출돼 서열 3위로 초고속 승진한 것과도 비교된다.
김여정은 지난해 당내 서열 1위 부서인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을 꿰찬 후 대미·대남 메시지를 직접 던지곤 해 이번 당대회를 통해서도 당내 공식 직위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빗나갔다.
그러나 김여정의 공식 직책이 비록 낮아졌다고 해서 정치적 위상과 역할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여정이 최고지도자의 여동생이자 김정은 집권 이후 국정 전반을 보좌하고 함께 협의하며 오른팔 역할을 해온 만큼 직급이 낮아졌다고 해서 정치적 위상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김여정이 당대회 기간에 올해 첫 담화를 발표하고 북측 열병식을 정밀추적했다는 남측 합동참모본부를 비난한 것은 그가 직위나 직급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대남 정책 전반을 관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지난해 여러 번 대남 담화를 통해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남북 간 통신선을 단절하고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르기까지, 대남 압박 공세를 사실상 선두지휘했다.
또 김여정은 지난해 7월 당시 제기됐던 연내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일축하는 담화를 직접 내고 미국 독립절 기념행사가 담긴 DVD를 요청하는 등 대미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미 관계에서 직접 김 위원장의 '입'역할을 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여정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대미외교 정책도 두루 관장할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앞으로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가 출범하면 김여정 본인 명의의 담화로 미국에 견제구를 던지거나 유화적 메시지를 날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더욱이 북한이 공개한 당대회 폐막식 사진에서 김여정은 당 부부장임에도 여전히 주석단의 2열 자리를 고수해 정치적 위상을 과시했다.
김여정은 새 지도부가 선출되기 전 집행부 성원으로 주석단 2열 세 번째에 자리했다가 인선 후 여덟 번째 자리로 다소 밀리기는 했지만, 당 부부장 직책만으로 앉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이에 따라 김여정이 앞으로도 정책 전반과 국정 운영 등 모든 것을 관장하는 조직지도부의 부부장 직책을 맡아, 김 위원장의 국정 전반을 보좌하며 리베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도 김여정의 공식 직위가 하락한 것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대미·대남 라인의 지위가 전반적으로 약화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경색국면의 남북 및 북미 관계에 대한 기대를 버린 듯 이번 대회에서 대남·대외부문 핵심 인사들의 직위를 낮췄다.
노동당 안에 처음으로 대남담당 비서와 국제비서 직책을 아예 없앴는가 하면 김영철 전 대남담당 부위원장을 통일전선부장으로, 대미외교 핵심 인사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당중앙위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했다.
대신 국제부장에는 김일성·김정일 통역사 출신인 대표적인 중국통 김성남을 앉혀 대중국 외교에 집중할 속내를 드러냈다.
특히 김여정이 이미 2019년 정치국 후보위원에 한 번 강등된 사례가 있어 이런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은 큰 기대를 했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대미·대남 핵심 인사들을 대부분 해임하거나 강등했는데, 김여정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치국 후보위원에게서 해임됐다가 지난해 4월 복귀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 위원장이 대내외 시선을 우려해 김여정의 직위를 강등했다는 분석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맞지 않는다"라며 "그럴 거였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대미·대남 정책 방향의 흐름에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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