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칼럼] 경세가 김종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한용 2021. 1. 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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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칼럼]
김종인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더불어 잘 사는 경제’와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는 뿌리가 닿아 있다. 코로나 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정책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정상화 대책’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ㅣ정치부 선임기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책 전문가로 경륜과 역량을 갖춘 정치인이다. 그가 정치에서 손뗐던 지난해 3월 <영원한 권력은 없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프롤로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생에 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신의 발자국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가 지나갈 적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투 자락을 잡아채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다.”

독일 통일을 이룬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했다는 말이다. 짤막한 인용에도 겸손과 내공이 배어 있다. 에필로그도 인상적이다.

“계속해서 급발진하고, 미끄러지고, 전복되고, 화재가 발생하는 차량을 두고 언제까지 그것을 운전자의 잘못이라고만 말할 건가. 그것은 분명 차량의 결함이다.”

“정치에도 창조적 파괴,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50년 정치인생을 통틀어 말하는 대답이다.”

절박감과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렇게까지 말했던 김종인 위원장이 총선에서 패배한 야당의 대표를 맡아 정치를 재개했다. 의아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치 재개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광주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강령에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을 넣었다. 정강·정책에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명시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 예산안 통과에 협력했다.

김종인 위원장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완만하지만,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4·7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이길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 김종인 위원장은 요즘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12일 ‘시비에스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타난 김종인 위원장은 무척 속상한 표정이었다. 보궐선거만 끝나면 사라지겠다고 했다. 진행자가 이유를 물었다.

“엊그제 내가 루비오의 공공선 자본주의 책을 나눠줬더니 어느 기자가 나한테 전화를 하면서 의원 중에서 당을 좌클릭 하려고 그런 거 돌렸냐는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심한 사람들하고 내가 뭘 하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김종인 위원장의 이념과 정책 노선을 좌파로 의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있다. 이른바 보수 신문 논객이나 유튜버 중에도 김종인 위원장을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종인 위원장은 가인 김병로의 손자다. 가인이 저승에서 통곡할 일이다.

색깔론뿐일까? 국민의힘을 살리려는 그의 노력을 ‘노욕’으로 깎아내리는 시선이 당 안팎에 꽤 퍼져 있다. 정초에 어느 논객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려면 국민의힘 밖에 경선 무대를 설치해 모든 비문재인 후보들이 참여하는 통합 경선을 해야 한다고 훈수하면서, 김종인 위원장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영향력과 대권욕’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런가? 정당이라면 선거에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뒤에 단일화가 필요하면 하면 된다. 정당의 기본을 대표의 노욕으로 모는 것이 이른바 보수의 현재 수준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막판 정치인생이 점점 누추해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 재개로 인해 입게 된 상처니 누구를 원망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정치도 입문보다 퇴장이 훨씬 더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체성에 충실하면 된다.

그는 13일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 진단 및 수권정당 국민의힘 부동산 정상화 대책’을 발표했다. 임대차 3법 개정을 촉구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해 기존 도심을 고밀도‧고층화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내용의 타당성을 떠나서 제1 야당 대표가 정책 대안을 제시한 것 자체가 바람직하다.

김종인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더불어 잘 사는 경제’와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는 뿌리가 닿아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정책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선거 전문가가 아니다. 4·7 재보선 승패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에게는 선거보다 경제위기 극복이 훨씬 더 절박하다. 경세가 김종인의 경륜과 역량이 필요한 때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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