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가, 약촌오거리 살인 누명 쓴 피해자에 13억 배상해야"

정희영 입력 2021. 1. 13. 15:03 수정 2021. 1. 2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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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여동생에게도 각 2억5000만·5000만 배상
재판부 "시대 상황 고려해도 과학적이지 않은 수사"
박준영 변호사 "수사 담당자 사과하면 대가 받을 것"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A씨가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A씨는 사건의 최초 목격자였으나, 수사기관으로부터 체포와 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하며 범인으로 몰렸다. 이 사건은 영화 '재심'의 소재로도 다뤄졌다.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판사 이성호)는 A씨가 국가와 수사기관 담당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A씨에 13억원, 어머니와 동생에 각각 2억 5000만원과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위자료 20억원 등에서 이미 지급받은 형사보상액을 공제한 금액이다. 담당 검사와 형사에게도 대한민국과 함께 A씨에 2억6000만원, 어머니와 동생에게는 각각 5000만원과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대한민국 소속 익산경찰서 경찰들은 영장 없이 A씨를 불법구금하고 폭행해 범인으로 몰아세워 허위 자백을 받고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어 "객관적으로 부합하는 증거가 없음에도 부합되지 않는 증거들에 자백을 일치시키도록 유도했다"며 "사회적 약자로 무고한 A씨에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전혀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수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같은 불법행위가 다시는 저질러져서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할 막중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는 원상회복되거나 결코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나 달리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위자료를 정했다"고 덧붙였다.

수사 검사에 대해서도 "검사는 진범의 자백진술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다른 자료가 있는데도 경찰의 불기소 취지 의견서만을 가지고 불기소 처분을 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재심을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는 "사건에 어떻게 문제가 있는지를 낱낱이 밝혀내는 게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또 "수사 담당자에게는 사과만 한다면 국가만 상대로 소송하겠다 했는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A씨에게 사과한다면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기여한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는 "국민이 믿어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어 "한 번도 이 사건 경찰 수사기록이 법원까지 가지 못했다.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 2000년 8월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사건 발생 사흘 뒤 인근 다방에서 배달일을 하던 A씨를 범인으로 보고 검거했다. A씨가 입은 옷과 신발 등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은 정황증거만으로 진행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 받은 뒤 2010년 출소했다.

2003년 경찰은 살인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고, B씨를 수사해 자백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이 진범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기각됐다. 기소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A씨가 광주고법에 신청한 재심이 받아들여지며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광주고법은 2016년 A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경찰이 A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구타와 감금 또한 자행됐다고 판단했다. 재심 직후 검찰은 B씨를 구속 기소했다. B씨는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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