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잃어버린 1년, 이젠 못 버텨".. 막노동하다 쓰러진 노래방 주인의 사연

심민관 기자 2021. 1. 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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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환갑인데 먹고 살려고 막노동까지 나섰다. 그러다 갑자기 뇌졸중이 와서 이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 됐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에서 노래방을 운영 중인 곽노경(59)씨는 지난해 12월 29일 아침 눈을 떴지만 말을 한마디도 뱉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 때문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몇 달째 막노동 일을 하다 결국 병을 얻은 것이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노래방을 비롯한 여러 업종이 집합금지 대상이 되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고초를 겪고 있다. 한 때 두 곳의 노래방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곽씨 역시 이제는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조선비즈는 지난 12일 뇌졸중 치료를 받고 퇴원한 그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곽노경(59)씨가 병원에서 퇴원하기 직전 모습(왼쪽), 병원비 내역서(오른쪽). 곽씨는 뇌졸중 치료를 위해 열흘간 병원에 입원했다. 총 치료비만 1600만원이 넘게 나왔지만 건강보험과 실비보험 적용 덕에 실제 치료비 부담은 크게 줄었다. /본인 제공

곽씨는 지난 13년 동안 장사가 잘 된 노래방이 폐업 위기에 처한 건 한 순간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장사는 못 하는데 매달 내야하는 전기료 등 관리비와 임대료가 곽씨의 숨통을 조여왔다. 정부 방역정책에 따라 지난해 노래방 문을 닫은 기간만 총 6개월에 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되면서 노래방이 고위험시설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곽씨는 몸이 아픈 상황에서도 생계 걱정에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취업준비생인 아들과 코로나 사태로 실직한 딸을 두고 있는 가장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감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곽씨는 "몸을 좀 추스린 뒤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곽씨는 두 곳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다 보니 코로나 사태에 따른 비용 부담도 두 배로 떠안아야 했다. 두개 점포 임대료와 전기료 등 관리비를 합하면 매달 500만원 이상이 고정적으로 지출됐다.

지난 1년간 은행 대출을 받아 어렵게 버텨왔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버거운 상태가 됐다고 한다. 한 곳당 1억원 정도인 노래방 권리금도 포기하고 차라리 폐업이라도 하려고 알아봤지만, 코로나 시국에 노래방을 인수하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곽씨는 "그냥 가게를 정리하려고도 해봤지만, 노래방 시설을 철거하고 가게 인테리어를 원상회복 하는데 점포당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 결국 포기했다"며 "장사를 못해 매출은 없는데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 때문에 죽고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1년간 지속되면서 빚을 내 생활을 하는 것도 한계가 왔다. 곽씨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만 했다. 고령의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을 쓰는 것 밖에는 없었다. 젊은 시절 태권도 5단에 한국권투연맹 프로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로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던 곽씨는 주저없이 막노동 일에 뛰어들었다. 하루 일당이 13만원으로 센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곽씨는 "방역 지침 때문에 가게 문을 열 수 없어 11월부터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인력시장에 나갔었다"며 "공사판도 일이 많이 줄어서인지 일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새벽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몸이 녹초가 됐지만 가게 걱정 때문에 잠이 안와 술을 마셔야 겨우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

곽노경씨가 작년 9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본인 제공

답답한 마음에 곽씨는 작년 9월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 정치인들이 나서주면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곽씨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없었다. 곽씨는 "그동안 노래방 업주 뿐 아니라 모든 자영업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생존을 위한 고난을 겪고 있지만 우리들을 대변하는 정책은 멀게만 느껴졌다"고 했다.

곽씨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재난지원금 계획과 노래방 등 집합금지업종에 대한 영업재개 방침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것도 좋지만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잠시 문을 열었다가 코로나가 확산되면 다시 문을 닫게 하고, 밤 9시 이후에는 장사를 못하게 하는 영업재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곽씨는 재난지원금 형평성 문제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그는 "정부가 아예 장사를 하지 못한 노래방과 영업시간 제한만 받고 장사를 할수 있었던 음식점과 구분을 두지 않고 동일하게 3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며 "돈을 벌지 못한 업종에 대한 차등지급이 없는 점은 아쉽다"고 했다.

끝으로 곽씨는 "(자영업자에게) 자꾸 빚을 내서 버티라는 것은 이젠 안 된다"며 "정부가 나서서 한전을 설득해 전기요금 인하를 유도하고, 건물주들과 직접 중재라도 해주는 방식으로 뭔가 임대료 경감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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