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오언, "아직도 리버풀 팬들은 맨유 자식이라고 말해!"

신동훈 기자 2021. 1. 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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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오언(41)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리버풀 팬드르이 야유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내놓았다.

2009년 자유계약 신분(FA)가 된 오언은 또 리버풀 복귀를 노렸지만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관심을 보내자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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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 신동훈 기자= 마이클 오언(41)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리버풀 팬드르이 야유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내놓았다. 

오언은 이른바 '원더 보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했다. 10대 후반 시절 혜성처럼 등장해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궤멸한 뒤 득점을 넣어 붙은 별명이었다. 1997-98시즌 리버풀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36경기에 나와 18골 4도움을 넣으며 본격 활약을 시작했다. 1998-99시즌에도 30경기 18골을 터뜨리며 활약을 이어갔다.

2001년엔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EPL서 28경기 16골에 성공한 오언은 팀의 잉글랜드 FA컵, 유럽축구연맹(UEFA) 컵(현 유로파리그), 잉글랜드 풋볼리그(EFL)컵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꾸준히 폭발적인 득점력을 펼친 오언은 2004년 레알 마드리드로 전격 이적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못하며 벤치로 밀리자 EPL 복귀를 시도했다.

리버풀이 1순위였으나 당시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오언은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나 리버풀 때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으로 인한 스피드 저하가 결정적이었고 레알 시절 자신감 추락도 원인이었다. 2009년 자유계약 신분(FA)가 된 오언은 또 리버풀 복귀를 노렸지만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관심을 보내자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오언의 등번호는 7번이었다. 리버풀 팬들 입장에선 자신들을 대표했던 스타가 라이벌 팀의 7번 유니폼을 입고 활약을 펼치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오언은 이에 대해 2018년 영국 '오프더볼'과 인터뷰에서 "맨유에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리버풀로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라이벌 팀에서 뛰는 것에 각오는 되어 있었다. 나는 가장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이는 그냥 직장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오언은 2010-11시즌 EPL 우승을 달성하는 영광을 누렸다. 2012년 스토크 시티로 떠난 오언은 2013년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오언은 리버풀의 레전드 제이미 캐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안필드로 갈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엄청난 야유가 나를 맞이했다. 남몰래 눈물도 흘렸다. 이혼을 한 느낌이었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 컸지만 지금도 상처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여전히 리버풀을 사랑한다. 그러나 길을 걷다 리버풀 팬들을 만나면 아직도 '맨유 자식'이라고 말한다. 나의 행동에 대한 인과응보라고 생각하지만 10년간 가슴 아팠고 지금도 쓰라리다. 이 상처는 평생 낫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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