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흥분한 '서학개미'들에게

김원장 입력 2021. 1.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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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살면서 강산이 두번 반 바뀌는 동안 우리가 자산시장에 흥분하고, 자본에게 털리는 패턴이 거의 똑같습니다. 이 글은 그 기억을 정리한 것입니다.*

“너는 취업하니? 나는 투자한다!”

바야흐로 자본투자의 시간입니다. 트위터나 페북에 자신의 투자수익률을 캡처해 보여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어제는 수익률 75% 돌파를 뽐내며 “내가 하루 종일 고민해 고른 종목인데, 이게 왜 불로소득인가?” 라는 트윗도 봤습니다)

수 십, 수 백%를 넘나드는 수익률을 보고 있으면, 자본투자를 하지 않은 사람은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는 매일같이 주식투자를 하지 않은 대중을 질책하는(?) 영상이 올라옵니다. 그리고선 과학적 투자비법을 화려하게 설명합니다.

데이비드 아인혼(그린라이트 캐피탈)이 증시 거품을 우려하는 글에서, 최근 자신의 헤지펀드 채용 웹사이트에, 자신을 ‘2월부터 지금까지 40%의 투자수익을 창출했다’고 소개하는 14살 소년이 지원했다고 하더군요.

시대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세레머니는 철 지난 드라마처럼 늘 되풀이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맨날 잊어버립니다.

이런 돈의 잔치가 가져올 결말을 예상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과거 돈잔치의 끝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1.
99년, 그때도 연준(Fed)은 돈을 참 많이 풀었습니다. 90년대 말 아시아 경제위기 여파를 뚫어야했고, 사실 시장경제는 2000년이라는 새 연도 표기(Y2K)가 무서웠습니다.

무엇보다 WWW(World Wide Web)이 등장했습니다. 인터넷이 한방울만 튀겨도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지금 테슬라 주가가 10배가 올랐다는데, 그때 퀄컴은 2,500%가 올랐습니다. (통신주가 너무 급등하는데 연합뉴스가 그때는 ‘연합통신’이였습니다. 그래서 통신주로 상장하자고~)

99년 한해 미 증시엔 547개 사가 상장열풍에 올라탔습니다. 지난해 미 증시엔 480개 기업이 새로 상장됐습니다. 참 많은 부분이 ‘데자뷰’ 입니다.

빚내서 주식투자도(미국의 신용거래 잔고는 800조에 육박합니다/2020년 11월), 버핏지수(GDP대비 시가총액)나, 주가이익비율(PER)이 불안불안 한 것도 닮았습니다.

그때도 개인투자자들이 최선봉에 섰습니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주식 온라인 거래를 많이 해서 뜻밖의 세계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서학개미라고 하는데, 미국은 로빈후드라고 하더군요. Robinhood라는 주식거래 앱을 주로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가장 큰 공통점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 2000년 이후 굴뚝산업은 온라인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됩니다. 구글이나 아마존같은 거대기업이 자라났습니다. 20년이 지나 마을 주차장엔 전기차가 등장했고, 식당도 호텔도 죄다 앱으로 찾습니다(에어비앤비의 시가총액이 힐튼과 메리어트를 합친 것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진짜로 산업프레임이 바뀌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분기 미국에선 '모델3'가 영원한 1위‘캠리’를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린 세단이 됐습니다. 실제 테슬라는 타는 부부가 남편이 툭하면 자율주행 버튼을 눌러 무섭다는 트윗을 본적도 있습니다(석유로 가는 차, 너는 이제 끝이야!).


그런데 2000년 3월 주가는 폭락합니다. 미국 증시의 40%, 시총 8조 달러가 날아갔습니다.

그때 미 증시를 상징하던 야후(Yahoo)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말 전세계 증시는 테슬라가 S&P500 지수에 편입된다고 축배를 들었습니다. 야후도 99년 S&P500에 편입됐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 야후는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 지금 테슬라는 4분기 연속 흑자라는 댓글이 분명히 달릴 겁니다)

드라마 한편만 더 살펴보죠.

2.
2001년, '상상도 못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뉴욕이 공격당합니다.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연준은 다시 기준금리를 1%까지 끌어내립니다(이때부터 언론이 big cut이란 말을 쓴 것 같습니다). 돈이 다시 빠르게 풀렸습니다. 그러자 랠리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에너지 가격부터 홍콩의 그림시장까지 안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이머징 마켓에 불이 붙고, 미국의 주택시장은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 불은 2006년에야 겨우 불길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얼어붙었습니다. 금융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우지수는 순식간에 다시 반토막이 났습니다.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자산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집값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7년 연속 집값이 내렸습니다. 2014년 영종도에선 새 아파트 입주자들이 자신들이 분양받은 가격보다 30%나 할인받아 입주하는 입주자들을 막기위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한 50대 입주자는 너무 억울해 그 자리에서 분신해 숨졌습니다(저는 주택 시장의 부침을 설명하는 다큐를 만들 때 쓰려고 그 영상을 갖고 있다가 어느날 다 부질없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때 ‘하우스푸어’사태로 손실을 본 수많은 한국의 집주인들이 책임을 따진다면 결국 그린스펀이나 어쩌면 오사마 빈라덴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자산시장은 이렇게 복잡하게 외부변수에 얽혀있고 시장은 그래서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중 가장 전망하기 어려운 게 ‘가격’입니다. 왜냐면 가격에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무런 이유없이 계속 바뀝니다. (건축가나 의사보다 경제학자가 훨씬 더 뜬구름 잡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경제학이 그래서 우울한 학문입니다)

그런데도 자산 가격이 한 해 크게 오르니, 언론과 유튜브에는 온갖 전문가들이 등장해 시장을 전망하고 가격을 예측합니다. 다음에는 ‘주식투자 안하면 가난해진다’는 카페가 생겨났고, ‘일주일 열공으로 차트 분석하기’ 사이트까지 등장했습니다(진짜 공부해서 주가를 예측할 수 있다면, 경영대나 경제학과 교수들이 전세계 자산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야지요. 제가 아는 경제학자분들 대부분 그냥 그렇게 삽니다...)

그러니 자산시장의 내일을 전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제 주변의 진정한 금융전문가들은 미래 가격에 대해 답답할 정도로 늘 말을 아낍니다.

오직 분명한 건 2가지입니다. 그런데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시장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껍데기’라는 것과 이 잔치가 끝나고 겨울이 찾아오면 가장 늦게 흥분한 사람들이 자본의 재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프상으로 보면 늘 가장 많은 대중이 그 랠리에 참여했을 때가 고점입니다. 그 고점을 지나면 이제 롤러코스터의 시간입니다. 거의 모든 전투가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이 패턴은 너무 비슷해서 어느 시대의 자산거품이나 위기에 대입해도 거의 일치합니다. 새로운 산업군이 등장하고(네덜란드는 당시 지구에서 가장 산업이 발전한 곳이였습니다), 특정 자산에 사람이 몰리고, 큰 수익이 나고, 지나는 사람들이 이를 부러워하고, 새 시대에 대한 거대한 믿음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들이 투자에 뛰어들고, 자산가치는 폭등하고, 그리고 위기가 찾아오고, 언론은 어리석은 시장참여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상처가 겨우 치유됩니다. 그런데 그때쯤 우리는 오래전 우리가 저질렀던 그 실수를 잊어버립니다. 자, 이제 다시 흥분할 시간입니다.

3.
마지막 사례는 100년은 된 기억입니다. 그때도 뉴욕의 증권사 플로어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있으면 인간은 이를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특히 그들이 몰려 다니면서 큰 돈을 번다면 더 그렇습니다. 주가는 자고 나면 올랐습니다. '진짜' 새시대가 열렸습니다.

상자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RCA라디오’라는 희한한 플랫폼이 등장했고, 거리엔 자동차가 흔해졌습니다. 공장엔 전기가 들어왔고, 린드버그란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22년 6천만 대가 팔린 RCA라디오는 28년 8억대가 팔렸습니다. (그때도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음껏 비웃었습니다)

29년 대공황 직후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 증시 폭락을 알리는 신문기사.


하지만 29년 10월 29일 대공황이 찾아왔습니다. 110달러를 넘었던 RCA라디오의 주가는 3년뒤 2.5달러까지 폭락했습니다. 대서양 해저케이블이 불통되고, 전화주문도 멈춰섰습니다. (111달러에서 48달러까지 폭락한 화이트미싱사의 주식을 배달하는 소년은 1주당 1달러를 받고 배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누구는 위기가 계속되고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지속되기 때문에 이 랠리가 더 갈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과거 닷컴버블 때처럼 연준이 갑자기 금리를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연준은 기준금리를 5.85%까지 끌어올렸습니다. 90년 이후 일본 증시의 급락도 JOB가 금리를 3번이나 급하게 올린 뒤부터 시작됐습니다)

실제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툭' 올리진 못할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그저 가정일 뿐입니다.

시장엔 수많은 변수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시장경제의 역사 이후 늘 그랬던 것처럼 '상상도 못한'일이 터집니다. 살다 살다, 지구가 바이러스로 멈춰 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때와는 다르다',‘아직 더 오를 이유가 많다’는 경제신문들의 주장도 너무 믿지 마십시오. 하락장세가 찾아와도 금새 반등할 것이라는 주장도 너무 믿지 마십시오.

닷컴 버블 이후 고점을 회복하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가파르게 오른 니케이지수는 아직도 1989년 당시 고점을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가 투자를 안하니, 지금 그 모양 그 꼴로 사는거야” 그런말 하는 친구는 가급적 멀리하십시요.

최근 버블을 우려하는 뉴욕타임즈의 칼럼에서 바클레이즈의 한 애널리스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위대한 마에스트로가 지휘합니다”(You have this grand maestro up in the front that’s conducting the orchestra). “거장이 멈출 때까지 연주는 계속 될 것입니다” 연준(Fed/제롬 파월)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계속된다면 이 랠리는 계속 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에도 ‘마에스트로’로 불리던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의장(Alan Greenspan)은 87년 블랙먼데이부터 아시아 금융위기를 잘 봉합했습니다. 99년 2월 타임지 커버에는 ‘지구를 살린’ 영웅으로 그린스펀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수백만 채의 주택이 압류됩니다. 집을 잃은 미국인들이 ‘내가 망한 이유’로 그린스펀을 지목합니다 (결국 그 노신사는 청문회에 불려가 자기반성을 할 때까지 똑같은 질문공세를 받았습니다).

미국의 주택위기는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집니다. 저금리와 유동성, 재정확대, 새로운 산업의 출현, 대중의 광기와 자산시장의 급등, 그리고 ‘나도 저 쉽게 돈버는 행렬에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되풀이 됐습니다. 그런데 딱 11년이 지나고, 우리는 또 똑같은 줄거리의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이 파티가 끝나고 나면 대중들은 누군가를 탓하고, 정부는 제도를 정비하고, 언론은 대중의 광기를 탓할 것입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참으로 부질없는 짓입니다.

참, 2009년 새해, 타임지는 위기를 불러온 주범(원인) 12명(가지)를 꼽았습니다. 그 위기를 불러온 네번째 주범으로 타임즈는 ‘그린스펀’을 지목했습니다. 10여년 전에 자신들이 ‘지구를 구했다’고 표지에 실었던, 바로 그 사나이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뭘 잘 잊어버립니다.

99년 2월 타임지

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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