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패배' 가까운 탱킹, 과연 성공 전략일까

2021. 1. 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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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아메리칸리그가 처음 창설된 1901년 밀워키 브루어스라는 이름이었고, 이듬해부터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로 뛰다가 1954년부터 볼티모어로 연고를 옮긴 뒤 ‘오리올스(꾀꼬리)’라는 이름으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철인’이라 불리던 칼 립켄 주니어의 팀이었다. 2016년 김현수(LG 트윈스)가 볼티모어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약팀’은 아니었다. 그해 볼티모어는 89승 73패로 가을야구에 올랐다.



이듬해부터 볼티모어는 팀 운영 전략을 바꿨고, 2018시즌부터는 아예 성적을 포기한 채 ‘리빌딩’에 들어갔다. 2018년 볼티모어는 무려 115패(47승)를 당하며 압도적인 꼴찌가 됐다. 2019년에도 108패를 했고, 코로나19 때문에 60경기만 치른 2020시즌에도 승률이 0.417(25승 35패)밖에 되지 않았다. 2021시즌은 나아질까? 볼티모어 마이크 엘리어스 단장은 “언젠가 우승 스위치를 켤 때가 오겠지만, 올해는 아니다. 물론 즐거운 결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22시즌에도, 볼티모어는 이길 생각이 없다.

몇몇 팀이 탱킹 전략으로 우승 차지

우승은커녕 ‘올해도 100패쯤 할 것 같아요’라는 팀이 존재할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는 이를 ‘전략’의 하나로 삼는다. 3~4년 정도 팀 성적을 곤두박질시킨 뒤 신인 드래프트에서 유리한 위치를 얻는다. 좋은 선수를 뽑아 성적과 상관없이 경기 경험을 쌓게 하고, 그때그때 즉시 전력 선수를 가을야구 경쟁팀에 팔면서 젊은 유망주들을 데려와 차곡차곡 모은다. 젊은 유망주들이 성장해 실력 발휘를 할 때가 오면, 우승을 위한 기회로 삼는다.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의 특급 FA도 데려오는 등 아껴뒀던 돈을 한방에 쏟아부어 우승 트로피 사냥에 나서는 전략이다. 성적을 뚝 떨어뜨리면서 유망주들의 성장을 기다리는 전략을 두고 ‘탱킹(tanking)’이라고 부른다. 텅텅 비운다는 뜻이다. 선수 숫자가 많지 않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뽑는 게 팀 성적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주는 미 프로농구(NBA)의 전략이었다. 이 전략이 야구로 옮겨왔고, 몇몇 팀이 성공했다. 2015년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이 전략으로 성공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시카고 컵스가 비슷한 전략을 써서 108년 동안 이어온 ‘염소의 저주’를 끊었다. 2017년 휴스턴의 우승도 마찬가지였다. 휴스턴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평균 100패를 기록하며 ‘탱킹’을 했고, 2015년부터 전력을 끌어올린 뒤 2017년 대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탱킹 금지 다양한 아이디어 제안

김하성과 계약한 샌디에이고는 2016년 94패를 시작으로 탱킹에 들어갔고, 2019시즌까지 90패를 넘긴 뒤 2020시즌부터 ‘윈 나우’에 들어갔다. 2021시즌에는 에이스들을 수집해가면서 대권 도전에 나선다.

탱킹은 내일을 위한 준비처럼 보이지만 ‘고의 패배’에 가깝다. 이길 뜻이 없는 팀을 응원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매일매일 열리는 야구를 보면서, 몇년 뒤 이뤄질지 모르는 우승 가능성을 기다리는 일은 차라리 고문이다. 탱킹 전략을 쓰는 팀 입장에서는 정당한 전술일지 모르지만, 리그 전체로 따지면 팬들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최악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지금 이기려는 팀과 지금은 이길 생각이 없는 팀이 만나면 승부의 의외성이 사라진다.

메이저리그도 탱킹에 대한 고민이 많다. 돈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에 대해서는 ‘사치세’라는 명목으로 일종의 벌금 제도를 만들었지만, 대놓고 돈을 안 쓰는 팀에 대해 제재가 마땅치 않다. 선수노조는 일부러 돈을 쓰지 않는 몇몇 구단에 대해 ‘소송’을 걸었다. 일종의 무임승차라는 주장이다. 반면 탱킹이 정당한 전략이자 전술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현재의 부진에 따른 매출 감소는 감수하겠다는 게 구단의 입장이다. 몇년 동안 손해를 보더라도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커다란 결과를 남기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구단주들의 계산이 기저에 존재한다. 매년 아등바등 우승권에 따라가느니, 보다 효율적 투자를 하는 게 낫다는 계산이다.

그럼에도 탱킹은 확실히 리그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자칫 메이저리그라는 산업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 경기가 재미없어지면 팬들도 사라진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지난 1월 6일, 탱킹 금지를 위한 몇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현재 규정의 빈틈을 이용한 탱킹전술에 대해 일종의 벌칙을 부과함으로써 이를 제한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드래프트 방식의 변화는 가장 우선시되는 조건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방식은 하위권 팀에게 우선권이 부여된다. 리그 전력 균형을 위한 선택인데, 탱킹은 이를 악용한다. 일부러 성적을 떨어뜨려 높은 순위의 드래프트 권리를 얻는다. NBA는 이를 막기 위해 ‘추첨제’를 도입했다. 꼴찌가 1순위를 갖는 게 아니라 하위 팀이 서로 다른 비율로 1순위 권리를 갖는다. 꼴찌를 했어도, 뽑기를 잘못하면 1순위 권리를 얻지 못한다. 메이저리그 역시 추첨제와 같은 드래프트 제도 보완이 탱킹의 유혹을 막을 수 있다.

사치세의 반대인 연봉 총액 하한제도 도입도 고려된다. 현행 사치세는 연봉 총액이 2억1000만달러가 넘을 경우 넘는 금액분에 대한 사치세가 벌금 형태로 부과된다. 대신 낮게 쓰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다. 최지만이 뛰는 탬파베이의 2020시즌 연봉 총액은 겨우 2800만달러였다. 디애슬레틱은 연봉 총액 하한선으로 1억2000만달러를 제안했다. 너무 안 쓰면 거꾸로 벌금을 매김으로써 최소한의 투자를 하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예 승률에 따른 ‘벌칙’을 매기는 안도 제시됐다. 계속해서 너무 못하면, 제재를 가하는 식이다. 못하고 싶어 못하는 게 아니라는 저항이 예상되지만, 강제 압박이 필요할 정도로 탱킹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3년 연속 90패 이상이면 드래프트에 제한을 둔다는 식이다. 반면 연속해서 수년간 좋은 성적을 내는 팀에게는 사치세 부담을 줄이는 등 인센티브가 주어질 수도 있다. ‘전력 균형’과는 배치되지만 탱킹 금지를 위한 장치로 작동할 수는 있다. 아예 축구처럼 ‘승강제’를 도입하는 게 어떠냐는 극단적인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시대는 바뀌고, 야구도 바뀐다. 돈으로 성적을 사던, ‘돈야구’를 걱정하던 시대에서 어느새 돈 안 쓰는 걸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모두가 살려면, 모두가 같은 곳을 봐야 한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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