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볼까 [오십, 길을 묻다 (36)]

2021. 1. 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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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귀농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 접어두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볼까 하는 생각부터 복잡해져 가는 도시생활이 지긋지긋해 그려보는 꿈까지.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가끔 귀농을 생각했다. 50대에 이르니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19 때문에 멀리 나다니지 못한 지 오래돼 불쑥 시골이나 풍경이 그리워질 때는 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내 생각을 실제 귀농했거나 귀농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듣는다면 비웃을 것 같다. 농사가 얼마나 고단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데 철없는 소리 한다고 하지 않을까. 텃밭을 가꾸는 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귀농은 당연히 비할 바가 아닐 거다.

홍천강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강태공 / 경향자료


나이 들수록 주경야독에 끌리는 이유

이런 귀농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게 한 책이 지리학자 최영준이 2010년에 내놓은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이다. 부제는 ‘역사지리학자 최영준의 농사일기’다. 1990년대의 10년과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일주일의 절반은 서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머지 절반은 홍천강변에서 농사를 지은 저자가 틈틈이 적어둔 일기를 모은 것이다.

먼저 관심이 갔던 건 홍천이란 지역이다. 홍천은 경기도 양평과 가평에 잇닿아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유명한 스키장이 있는 곳이다. 이제까지 스키를 타 본 적이 없지만, 스키장 주변에 있는 펜션에는 가족과 함께 놀러 간 적이 있다. 팔봉산에서 가까운 홍천강 상류 주변에는 괜찮은 펜션들이 많았다. 아침 강안개가 피어나는 풍경이 특히 아름다웠다.

바로 이 홍천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만나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산수리 논골마을이 이 책의 무대다. 최영준은 일기 앞부분에서 주경야독의 꿈을 펼쳐 보인다.

“밭 아래로 넓게 퍼진 강변의 모래밭, 넓고 잔잔한 강 그리고 앞에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짙은 녹색 산은 마치 안동 풍산의 병산서원 주변과 흡사한 경치라는 느낌이 든다. … 주위 풍광에 어울릴 만한 글방을 하나 짓고 들어앉아 낮에는 논밭을 다듬고 밤에는 글을 읽으며 살고 싶다.”

젊은 시절에는 도시가 좋았다. 아직까지도 도시를 완전히 떠날 엄두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1년 절반 정도는 주경야독을 하면 어떨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게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 대부분의 내용도 서울과 홍천을 오가며 주경야독을 하는 생활을 담고 있다.

50대에 들어서며 삶이 바뀌고 있는 것도 이런 주경야독에 더 끌리는 이유다. 이제까지 내 일은 가사를 떠맡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사는 줄어들고, 머잖아 집은 빈 둥지가 돼 허전할 나이가 됐다. 어차피 밤에 책을 읽고 글을 쓸 거라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는 시골이 낫지 않을까.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이 내 시선을 끌었던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최영준의 태도다. 일기에 주로 적어둔 것은 날씨, 자연, 농사, 가족, 홍천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정치적 사건을 다룬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게 오히려 눈에 띈다. 몇차례 치러진 대통령 선거도 두어 번 정도만 언급되고 있다. 저 멀리 바람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 뉴스를 적게 보게 된다. 오히려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사람과 생활에 관한 뉴스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엇을 보고 읽고 느끼는 걸까.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일까. 생각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독서 목록들도 달라진다. 딱딱한 사회과학 저작보다 따듯한 인문학 책들이 더 좋아진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에서 내가 발견했던 것은 삶에 대한 최영준의 감각이다. 삶에 대한 감각이란 삶의 중심 가치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다. 최영준은 홍천이라는 시골에서의 주경야독을 그 중심 가치로 선택한 셈이다.

시골 생활에 대한 감상과 현실은 달라

한길사
이 주경야독에서 ‘야독(夜讀)’은 익숙한 것일지라도 ‘주경(晝耕)’은 내게 낯선 것이다. 최영준은 농사와 시골생활에 대한 감상적인 생각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한겨울 홍천강변에 내리는 엄청난 눈에 대해, 한여름 일상생활을 성가시게 하는 수많은 벌레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전달한다. 농사를 짓는다는 게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임을 최영준은 생생히 기록한다. 20년의 일기를 최영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손바닥에는 두툼한 굳은살이 박였고 손등에는 주름이 진데다가 손톱에는 비누로도 잘 닦이지 않는 얼룩이 남아 있다. 때때로 학문하는 사람들을 만나 악수를 하다 보면 내 손에서 느껴지는 거친 느낌에 놀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늘 땅을 파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팔뚝에는 노동의 흔적이 배어 있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을 다 읽고 나서 귀농은 내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어릴 적부터 도시에서만 살아왔기에 폭설에도, 벌레에도, 노동에도 자신이 없다. 도둑이 든 이야기는 무섭기도 했다. 최영준은 마흔아홉에 홍천에서의 주경야독을 시작했지만, 오십을 넘은 내가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영준의 일기가 여운을 남기는 까닭은 뭘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최영준의 생활은 농사와 공부에 대한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관찰은 밖에서 보는 시선이다. 내부의 시선에서 보면, 거기에는 자연에 순응하고, 노동을 제공하며,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분주한 일상의 연속이 진행되고 있었다.

도시에 있거나 시골에 있거나 삶은 비슷한 거다. 그런데 최영준의 선택은 자신이 원했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내게 짙은 여운을 남긴 것은 바로 최영준의 용기였다. 지리학자였으니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최영준이 몰랐을 리 없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최영준은 산골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행복을 찾았고 또 만났다.

도시 출신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연이 좋아진다. 단지 보는 것을 넘어서 자연을 느끼고 호흡하며 함께하고 싶다. 일주일 내내 또는 절반은 아니더라도 하루 정도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보는 건 어떨까.

주말농장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무척 부러웠다. 오십을 넘으니 거창한 새해 소망을 품기가 민망해진다. 2021년 올해는 주말 텃밭을 가꾸고 싶다는 작은 용기를 품어본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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